8. 교육의 전문가, 교사
내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위해서, 가정에서는
-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지켜보고 알아가는 일부터 해야하고
- 부모를 보여주며 내 아이를 청취하는 시간이 일상이 되게 하며
- 아이에게 원-포인트 레슨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이전 글에서 두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신경써서 들여다봐야 할 곳은 바로 학교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곳을 보내는 시간이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강사로 각각 10년 전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강사의 관성으로 학급을 운영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잘 가르치는 교사는 가장 많이 아는 교사이고, 가장 많이 아는 교사가 가장 많이 가르칠 수 있으며, 많이 가르쳐야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잘 가르치는 교사는, 가장 많이 아는 교사이지만 그걸 뱉어내지 못해 안달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어린이에게 필요한 만큼 배우도록 한 후, 조금 더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주는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실에서의 태도와 자세를 주시하게 됩니다. 학부모 한 분과 상담하다가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항상 수업 시간에 쉬고 있다고. 가만히 어린이들을 지켜보면, 수업 시간에 유독 집중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또 학원을 가야하는 어린이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다 못한 학원 과제를 하느라 교실에서 쉬는 어린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학부모께도 묻습니다. 아이들은 학원에 왜 다닙니까. 학교 평가를 잘 보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평가는 누가 출제합니까. 교사가 출제하지 않습니까. 그럼 교사는 어떻게 평가 문항을 출제하겠습니까. 자신이 수업 시간에 강조한 것들을 출제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학교 수업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학원에서 시험 대비 한답시고 몇 백 문제를 풀어보면 뭐한답니까.
그러나 학부모님들은 학교에 오셔서 친구관계만 잔뜩 묻고 가십니다. 학교의 역할을 축소하여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학부모님들께 항상 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시킬테니, 집에서는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사랑만 해 주시라고.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반대로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간혹 현장 교사들도 반대로 생각하는 듯 한 경우를 봅니다. 공부는 집에서 시키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친구랑 잘 어울리고 다투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정서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첫 번째입니다. 어른들도 신경쓰이는 일이 있으면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멍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며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집에 가면 부모님이 닥달하고, 혼내고, 야단치고, 잔소리하면 그 어린이와 청소년이 쉴 곳은 어디겠습니까. 차라리 (흔히) 사춘기라고 하는 어린이/청소년이라면 낫습니다. 시원하게 반항하고 마음에 쌓아두진 않을테니까요. 괜시리 무기력하고 어쩐지 수동적이며 주눅들고 우울하게 매일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간혹 봅니다. 중학교 가면 더 많아지고, 고등학교 가면 더더 많아지는 그런 무기력함에 가둬진 청소년들. 쉬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고 싶은 것 참고 공부하면 대학교 가서 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어'라는 말로 자녀를 설득하려 들지만, 이런 설득은 '라떼는 말이야~'의 가정 버전일 뿐입니다. 어른들도 싫어하는 그런 경험을 어른들도 자녀에게 일상으로 베푸는 셈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교육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정말 전문가는 학교에 있습니다. 교과 이론과 교육학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육 전문가. 어찌보면 교사는 너무 조심스러워 하기 일쑤입니다. 옆반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들은 바 있습니다. 학부모님께는 적절하게 상담해라. 아이들 학원 보내지 마라, 믿고 맡겨라, 격려하고 응원해라, 그런 말씀 드리지만 결국 나중에 뒷감당해야 하는 것은 학부모이다. 너는 1년 보면 그만이지 않느냐. 그 말씀도 맞습니다. 학부모님께 드리는 제 조언이 담임교사로 지내는 1년짜리 조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삐딱하게 생각해보면, 사교육 강사들 중에는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대학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대학에 보낸 학생들이 수십 명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저는 사교육 강사로 일하면서도 그런 말을 엄두에도 두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학원이라면, 아무리 실적이 있어 보여도 배제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실적 후 후불로 지불하시거나. 그런 강사라면 아마도 실적도 과대포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교육 강사도 엄밀하게 말하면 학교 교사들만큼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교사가 조심스러운 것은, 만의 하나 실패할 경우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교사 중에 그러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우리는 교실에서, 모든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발달에는 개인차가 있고, 교실은 그런 개인차를 존중하여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청소년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학원이 그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교육은 결국 '실적'의 압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학생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끌어당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간혹 학부모님들이 그걸 원하실 때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고생하면,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편안하니까, 라면서.
부모님은 교육의 전문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케이스가 적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자신의 학창시절, 그리고 하나 혹은 둘 뿐인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엄친아, 엄친딸 같이, (일류대학 입학이라는)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퍼져나가는 무용담들, 온통 워너비 이야기들뿐인 자녀교육서까지. 조금만 더 눈을 돌려보면, 그 아래에서 허우적거리는 너무 많은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무수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사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오셔야 합니다. 궤는 다르지만, 저희 둘째 담임 선생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한 시간 동안 격정토로(!)를 하신 이후로, 저희의 둘째에 대한 가정에서의 케어가 비로소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 둘째가 담임 선생님의 마음에 입힌 상처 이야기를 한 시간 가까이 들은 후 저희 부부가 내렸던 결론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가 저렇게 말하고 저런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무언가 알지 못하는 마음의 고민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치료할 곳은 집에서 더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허용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습니다.
학부모로써, 저희 첫째 담임 선생님께 이런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희는 아이가 원치 않는 사교육을 시킬 생각이 전혀 없고, 아이도 학원 같은데 다닐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할 곳은 학교 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공부 시켜주세요. 저희 아이 담임 선생님의 그 난감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2학기 상담 신청하였을 때 저희 첫째에게 '이번 상담에도 아빠 오시니?'라고 물어보셨다는 일화와 함께.
부모가 교육의 전문가라도, 자녀 공부는 못 시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해야할 일은, 전문가에게 자녀의 교육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전문가는 바로 학교에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