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교사] 4. 특별한 조언
제 부모님은 삶이 너무나도 바쁜 분들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친구들을 꽤나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항상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꾸리셨고, 함께 어울리셨고, 쉽게 도움을 베푸셨고, 그래서 망한 친구분들의 돈을 대신 은행에 갚아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려우실 때는 어머니께서 벌이에 나서셨습니다. 진입장벽이 그나마 높지 않은 음식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의 그리고 가족을 놓고 힘껏 사셨습니다. 덕택에 저희 삼남매는 부모님과 무얼 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여러 선택의 순간에 부모님의 조력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딱 한 번, 제 첫 대학 입시에 부모님의 뜻이 강력하게 반영되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고 싶어했고,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위한 진학을 원하셨습니다. 결국 이도저도아닌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다섯 학기를 마친 후 학업을 그만둔 것은, 아마도 제게 이도저도 아닌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인생 대부분의 결정이 제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운이 좋았다 싶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의 순간, 저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없었고, 물어 볼 용기도 내지 못했으며,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잘 모른 채, 어려운 결정을 해 왔습니다.
지금은 더 한 듯 합니다.
제가 여러 선택을 하던 시기에는, 공동체를 이룰만한 많은 관계망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교회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경건함을 외피에 두르고 있던 관계망이었던지라 세상의 위험으로부터조금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동기 선후배와 학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초중고 시절을 공부만 하던 동료 선후배들인지라, 이루어진 관계 속 여러 모습들이 섣부르진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서툴고 순수했던 시절.
지금 제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은, 누릴 수 있는 관계망이 극도로 협소합니다. 아니, 제 자녀들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저희 첫째와 둘째 딸은, 학교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오롯이 관계의 전부입니다. 다행히 막내 딸은 어린이집에서 맺은 관계가 부모로까지 확장되어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하였지만, 그나마 꼴랑 넷이 이루는 관계망입니다.
어른들과의 관계망은 더 협소합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친구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하던 친구 하나는, 친구가 집에 없어도 들러 밥 한 끼라도 얻어먹게 해 주시는 그런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대학에 붙었던 날, 비록 자기 자식은 떨어졌지만 제 합격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던 그 어머님의 넉넉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지금은, 그런 관계망은 없습니다. 제 교실에서 만나는 모든 어린이들은, 외딴 섬같이 존재하며, 어떤 관계망도 누리지 못합니다.
그 어린이들의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하나, 많아야 둘인 자식을 키우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늘상 부딪힙니다. 더 많은 정보가 데이터망을 타고 부모님에게 도달할 수록, 도대체 내 자녀를 어떻게 케어해야할지 더더욱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공부 하나 바라보고 자녀를 타이트하게 키우는 부모님은 조금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어느 순간, 부모의 타이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녀의 반발이, 단호하던 부모의 양육 방침에 균열을 냅니다. 다툼과 혼란의 시간이 부모와 자녀 사이를 감싸고, 부모도, 자녀도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교사는 이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못내 외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친절한 학부모님들사이로 간혹, 드린 호의가 부가의 의무로 둔갑하는 일들을 겪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교사도 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사가 일껏 베푼 친절을 무기로 휘두르시는 학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언론 지상을 울릴 때마다 교사는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뭐,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까. 내 자녀가 조금이라도 모자란 대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로 봉투가 준비되었던 적도 있으니까요.
네. 교사에게 봉투를 건네던 것은 한참 전 이야기이며, 학부모를 통해 심적 고통을 겪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흔치 않은, 과거의 일들이 여전히 학교 안팎의 많은 행동들을 제약하는 것은, 아마도 모두가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교사의 조언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다양한 관계망이 날줄과 씨줄처럼 제 주위를 감싸며 얽혀 있던 당시에도, 조언과 조력이 더욱더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른 채로 그저 지나갔습니다.
지금 우리 교실에 앉아있는 어린이들에게도, 그 어린이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에 적절한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 그들의 삶에 필요한 조언의 순간은 지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 중학교 때의 선생님들은 다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제가 어린이를 벗고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이 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아마 더 나은 성장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순간에, 이 분들을 찾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만큼의 관계는 안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특히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담임교사라면, 아마 조금 더 나은 관계망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린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기회를 가집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며,어떤 것을 어려워하며, 어떤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봐 온 것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적절한 시간, 적절한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8월, 졸업생 하나를 집 근처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는, 뜬금없는 이유로집 앞에 와서, 저녁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다가 돌아갔습니다.
이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확신이 필요했던 듯 싶었습니다. 목표없이 어쩌다 대학을 왔는데, 막상 오고나니 자신과 딱 맞는 전공. 그러나 대학이 가진 네임밸류가 조금 떨어지다보니 닥치는 걱정. 네임밸류보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내심은 있는데, 확인이 필요했던 듯 싶습니다. 자신의 결정에 마침표를 찍어 줄 조언. 다행히(!) 제가 간택되었다는 생각이, 아이를 돌려보낸 후 가졌던 생각입니다.
지금은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 전공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너의 생각이 맞다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제가 6학년 때 봤던 이 아이는, 중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다닐 때, 그래도 1년에 한 두 번은 함께 얼굴 보았던 이 녀석은,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일을 하면 더 잘 할 아이라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내년 초에 군대를 간다고 하니, 군대 다녀오면 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 아이의 생각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가볍게 허그할 때, 제 조언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용기내어 볼 생각입니다. 지금 제가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님들은 적절한 조언과 조력이 필요한, 외딴 섬같은 존재들입니다. 특히 우리 어린이들은, 졸업한 이후로 더 큰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말한 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곤 합니다. 많은 이들의 말을 들어봐라, 그리고 참고하고 숙고해라. 하지만 결국 선택은 너가 하는 것. 선생님의 조언대로 굳이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저 말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이에게 조언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그저 늘상 제 교실의 어린이들을 잘 보고, 그들에 공감하며, 그들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스탠바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은 이 혼돈의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어린이들이, 청소년들이 기대고 물어볼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