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교사] 2. 특별한 태도를 가지다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던 94년도는, 그 때만 해도 우리 사회는 한 번 고용되면 정년에 도달할 때까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더랬습니다.
그런 흐름은 대학가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의 선배들은 졸업과 함께 별 어려움 없이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이번 학기에는 학고가 나왔네, 간신히 면고(학사경고를 면하였다)를 하였네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입학하여 다닌 과는 단과대학 중에서도 가장 점수가 높았던 과로, 매년 단과대학 수석과 차석이 나왔던 과였습니다. 한 해 선배 형은 입학할 때 단과대학 차석으로 입학하여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는데, 1학년 1학기 때 학사경고를 받아 4년 장학금 혜택이 말소되었다는 어처구니없을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편하게 뇌까리곤 하였습니다.
그런 터라 저희 동기 선후배들은 별 어려움 없이 수업을 제끼곤 하였습니다. 단과대학 건물 앞에는 십여명 둘러 앉으면 딱 적당한 너비의 잔디밭이 길게 있었는데, 부지런히 수업을 가다가 거기에서 누가 술자리라도 벌였으면 그 날 수업은 제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무더기가 두 세 무더기가 되어 밤새 술자리가 이어지곤 하였지요. 간혹 대형 강의 수업에는 대출(대리출석)이 횡행하였는데, 300명짜리 대형 강의에서 조교가 출석부를 때 한 사람 이름에 여섯 사람이 대답하였다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뭐, 한 사람이 여남은 명의 동기들 출석을 각기 다른 톤으로 부르는 것도 무용담 같은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교대에 가서도, 제게는 그 때의 생활이 낭만처럼 남아 있었기에, 당연히 편한 마음으로 출석을 대하고자 했습니다. 수강변경기간까지는 당연히 수업을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고, 결석 3분의 1선만 지키면 되겠지 생각하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새 학교 생활을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대생들은, 독하더군요. 서른 명 조금 넘는 저희 동기들은 도통 수업에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열이 펄펄 나는데도 아픈 몸을 부여잡고는 수업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기겁을 하였습니다. 뭐, 강의실에서 앞자리부터 채우는 것은 정말 경악할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가 일반대학을 다닐 때는 뒷자리부터 채우는 것이 ‘국룰’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교대 1학년 1학기 때, 곤히 자던 새벽 세 시에, 갑작스런 통증에 화들짝 놀라서 깬 적이 있습니다. 왼쪽 귓속이 바늘로 찌르는 듯 너무 아파 어쩔 줄 모르는데, 와이프가 옆에서 자다 깬 목소리로 ‘응급실을 가봐’라고 해서 차를 몰고 아픈 귀를 부여잡고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거진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진료를 받고, 중이염이라는 말을 듣고, 약을 처방 받고, 새벽 다섯 시 넘어 집에 돌아온 후, 아홉시 1교시 수업에 들어갔었습니다. 아픈데 수업도 못빠지는 처지. 안 아파도 수업 빠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런 차이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대학인데, 왜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을까. 물론, 요즘 일반대학은 제가 다닐 때와는 또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음주하는 문화 자체가 사라졌으니... 저는 일탈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대학의 존재 목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교대생들이 학교 생활에 임하는 태도가 다른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곤 하였습니다. 제결론은, 아마도 교사가 될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였습니다.
교생 실습은 그런 태도를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1학년 2학기 참관 실습은, 수업도 하지 않는 한 주 간의 참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서 제일 뒤에 앉은 채 바른 자세로 지도교사의 수업을 참관하며, 학급 구성원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 바른 자세, 더 바른 태도, 더 바른 마음가짐. 교사는 어느 순간엔가 내 학급 어린이들의 거울이 됩니다. 내 학급 어린이들을 직접 맞이하면서, 이 어린이들이 자연스레 담임의 말과 행동, 태도와 마음가짐을 닮아가고 배워가는 것을 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은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신혼여행을 호주로 다녀왔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기간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시내 한 가운데에서도 자연스레 무단 횡단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질서를 어기는 것이 아닌, 보행자가 먼저 존중받는 태도. 결국 교통 규범은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에, 보행자의 무단 횡단 같은 것은 항상 익스큐즈 되는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정해진 규칙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교사가 된 후 가장 먼저 바꾼 습관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전 습관이야 그 전에도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보행 습관이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습니다. 차 없으면 차도도 사람 다니는 길이지, 라는 생각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반 어린이들 보지 않는 곳에서 나 먼저 질서를 지켜야 교실에서 질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반듯함을 유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교실 어린이들과의 생활이 더 단정해졌습니다.
저는 학년이 시작하는 첫 날, 저희 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언하고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교실과 수업 시간에 사적인 통화는 물론이거나와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학교와 교실에 너희가 머무는 순간에는 너희들과의 배움과 생활에 집중할 것이다. 너희도 잠시 스마트폰은 넣어두고, 학교에 가지고 오거나 하는 일 없이 선생님과 함께 교실 배움과 교실 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어떻게 단 한 번도 안하겠습니까. 저도 내내 수업하다가 잠시 찾아오는 전담 시간에는 연구실에서 슬쩍슬쩍 스마트폰도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저 또한 아이들에게 단언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애쓰는 교사입니다. 교사가 먼저 그만두지 않으면서, 혹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그만 두라고, 실행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다보니 금새 스마트폰을 닫고는, 주제일기를 본다던지, 다음 시간 배울 내용을 들여다 본다던지 하는 일로 돌아서곤 합니다.
그래서 학부모 상담 때도 자녀의 스마트폰 때문에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께 위와 같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부모님께서 집에서 카톡카톡카톡 하시는데, 자녀들에게는 너희도 커서 다 할 수 있으니까, 또는 엄마 아빠는 되지만 너희는 하면 안돼, 같은 이야기를 백날 하셔도 씨알도 안 먹힌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고단한 일이기에,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몸에 밴 태도는 아이들이 보이는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얼마 전부터인가, 저희 막내 딸이 두 발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즘 한참 밤 자전거를 타며 무료함을 달래는데, 저희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어 건너기. 작은 삶의 태도를 변화하는 일은, 특히 우리의 주 고객들이 아직 순수하게 말과 행동과 삶을 건네는 존재들이라는 것에 미루어보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어느 날 불현듯, 고민 하나가 생겼습니다. 어디 집합 연수를 가는데, 원격 연수를 듣는데, 나는 어떤 태도로 이 연수에 참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내 교실에서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하는 말은, 배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루하고 재미없고 잘 모르겠으면 솔직하게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잘 모르겠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합 연수를 가서 ‘지루하고 재미없고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 할 수는 없지요.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다른 강사분이 강의하시는 것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 학급에서, 우리 반 어린이들이 그런다면, 저는 분명히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을테니까요. 우리 반어린이들에게 내가 당하였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나도 어디 가서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집중하여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 지루하고 졸리며 재미없는 배움에 꾸역꾸역 참여해주는 우리 반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말입니다. 물론, 많은 선생님들의 강의는, 큰 도움이 될 때가 더 많긴 합니다만.
많은 선생님들께서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맞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사니까. 우리의 주 고객들은 우리 교사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받는 존재들이니까. 1년 간 잠시, 어린이들을 맡아 함께 배우고 생활하지만, 그 어린이들에게 1년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 오래, 더 깊이, 더 친밀하게서로를 지탱하는 1년이니까요. 어찌보면 많은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우리 반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니 좀 힘들고 지치고 피곤해도, 어쩔 수 없죠. 열심히 해 볼 밖에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