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초등학교에서 뭘 배운거니?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초등수학을 말하다
10. 초등학교에서 뭘 배운거니?
비슷한 이야기로 언론에서 많이 소개되는 것이,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기본적인 수학 실력이 없어서 대학에서 가르칠 수 없다, 는 대학 교수’님’들의 푸념어린 목소리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공부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더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배워야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우는 것 중 어떤 것들은 일부의 대학 공부에서만 쓸모가 있더라. 그런 것을 배울 필요는 과연 무엇일까.
제가 배우던 5차 교육과정에서는 문과에서 미적분을 배웠습니다. 물론 저는 미적분을 잘 하였고, 덕택에 내신과 수능에서 어드벤티지를 경험하였습니다. 대학 진학 후 과외를 하면서도 항상 입버릇처럼 ‘미적분은 배워야 수학을 하는 것이지’라고 말하곤 했고, 특히 교육과정 개정과 함께 미적분이 문과에서 빠졌던 시기에는, ‘미적분을 배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수학적 사고는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며 학생 배움 수준의 저하에 개탄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시 슬그머니 문과 범위로 들어온 미적분에 대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미적분을 사용하지 않는 학과에 입학한 대학생들에게, 고등학교 다닐 때 미적분을 배우게 하는 이유는 뭐지?
‘대학수학능력평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법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도, 수리영역 - 요즘은 수학영역이라고 하나요? - 평가를 준비하면서 미적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른 과는 몰라도, 제가 공부했던 법학과에서는 강의 중에 혹은 공부하면서 미적분을 사용할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영문학과에서도 아마 재학 중에 미적분을 활용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문과 계열 학과 중에서 미적분을 필요로 하는 학과가 있는데 그 과에 진학할 수도 있으니 고등학교 때 배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면 저도 되묻고 싶습니다. 그럼 대학교 해당학과에서 가르치면 되지 않는가.
일반대학은 교양필수, 교양선택, 전공기초, 전공필수, 전공선택 등의 과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양 과목은 단과대학별로 편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영대학 교양필수 과목으로 미적분기초 과목을 개설하면 될 일입니다. 대학생들을 직접 지도하시는 교수님들께서 함께 논의하셔서, 교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의 기초가 되는 내용을 기초과목으로 강좌 개설하면 될 일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수학적 사고의 과정으로 미적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면 저도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문이과 미적분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의 과정이 필요한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가. 첫머리에 나오는 무한소/구분구적 개념을 넘어서고 나면, 이후 기나긴 미적분 과정은 온통 프라임과 인테그랄의 적용과 활용입니다.
알고리즘을 잘 적용하는 것이 수학적 사고는 아니잖습니까. 대부분은 그저 개념으로부터 나온 몇 가지 방법을 잔뜩 꼬인 문제 상황에 퍼즐처럼 끼워 맞추는 풀이의 연속일 뿐입니다. 물론, 그 과정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그것을 수학적 사고의 본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엽적인 사고일 뿐이며, 수학 과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고를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수학 교과는 ‘도구 교과’로써의 위상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학 시간의 배움이 계속 상위 과정에 종속된 채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과정 전체의 흐름은 하위 과정을 기반으로 상위 과정이 확장 편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나선형 교육과정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하위 과정에 대한 기초 확인 없이 상위 과정을 다루는 과목은 없습니다. 예컨대, 초등학교에서 삼권분립과 국민주권을 배운 후, 중학교에서 다시 배울 때 다시 삼권분립은 뭔지, 국민주권은 뭔지 또 배웁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있게 다루죠.
그런데, 수학은 다릅니다. 분수의 나눗셈을 가르칠 때, 그 하위 과정인 자연수의 나눗셈은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말하곤 하죠. ‘이그, 5학년 때 뭘 배운거니?’
교육과정 상의 수학과 성취기준 내용이 너무 많이 줄고 있다며, 이러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수학을 배우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수학은, 대학 교육을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까, 아니면 수학적 사고를 통하여 수학의 재미와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까.
물론, 능숙하게, 익숙하게 잘 풀어가도록 안내하고 지도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중학교에서도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느 날, 중학교 선생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수학의 재미와 흥미를 알려주는 교육과정 운영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참 듣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제게 반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중학교 수학 선생님들은 답답해 해요.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와야 할 것을 도무지 몰라서 입버릇처럼, 초등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배운거니, 라고 푸념하곤 한다더라구요'
그 때는 반문해야 할 말이 딱 막혔더랬는데, 이제는 저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럼 중학교에서 가르쳐주시면 되죠. 그럼 되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언제 진도를 나가요. 그러면 다시 말씀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진도가 뭐가 중요한가요.
진도가 뭐가 중요합니까. 고등학교 가서 수학 공부를 잘 하려고 중학교 때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까? 아니면, 수학적 사고가 주는 매력을 느끼고, 수학의 흥미와 재미를 느껴서 수학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하도록 만들기 위해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까.
거꾸로,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한다고 채찍질 당하는 학생들 중에,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잘 하는 듯 하나, 호기심과 흥미 없는 연습 중심의 수학 문제 풀이는 학생에게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할 수 없으며, 결국 수학 배움의 매력을 잃어버린 채 수학을 피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제가 6학년 담임을 8년째 하면서 한 240여명 정도의 학생들을 만난 바,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한다면서 학원에서 서너시간씩 배우고 어마어마한 과제에 시달리는 학생 가운데 최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아이는 거의 - 라고 읽고, 전혀라고 해석한다 -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기억에 남는, 수학을 잘 하면서도 흥미와 호기심을 꾸준히 가진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다녀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의 배움을 계획하고 핸들링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생이었습니다.
대학교에 가서 쓰기 위한 목적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 자체에 목적을 둔 배움을 이어간다면, 적어도 '초등학교 때 뭘 배운거니?'라고 물을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각각 다른 학생들의 발달과 성장을 존중하는 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어른들보다,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더더욱 실패를 기다려주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수학 시간에, 그런 어린이들에게 발맞출 수 있는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운영합니까? 수학 부진아는 어쩔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리 생각 속에 이미 학생들이 배워야 할 과정을 정해두고 그 곳을 향해 채찍질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덜 배워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않아도 좋은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성취기준에 도달하는 방법은 진도를 빼는 것 말고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교사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못하면,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어야 합니다. 이전 학년에서 뭘 배웠는지 묻는 대신에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