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 아는 것, 아닙니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4. 다 아는 것, 아닙니다.
2013년 담임하던 아이 중에, 20문제짜리 단원평가 보면 3~40점 정도 나오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항상 밝고 경쾌한 아이,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 특히 수학 시간이 되면 주눅드는 것이 느껴지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2학기 ‘분수와 소수의 나눗셈’ 단원평가를 본 후의 일입니다. 이 아이의 풀이과정을 복기하다가 깜짝 놀랄 일을 겪었습니다. 아래는 당시 아이의 풀이과정을 재현한 것. 당시에는 분수와 소수의 혼합계산이 6학년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문제를 풀렸더랬습니다.
혹시 이 아이의 풀이 중에 어디가 문제인지 찾으셨나요? 네. 이 아이는 모든 과정을 다 능숙하게 풀이한 후, 제일 마지막의 50/10-38/10의 계산을 12로 쓰고 말았습니다. 아, 단순한 실수인가보네, 라고 넘기기에는 이 아이의 평가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계산이 이런 방식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수의 덧뺄셈이 안되는.
제가 담임하던 아이들의 문제 풀이 과정을 되짚어보면, 지금 저와 배우는 과정에서는 큰 어려움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대신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의 아이들이 선수학습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내곤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수학과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누적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배웠던 것에 대한 확인에는 굉장히 인색하게 구는 것이 또 특징이기도 합니다.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인 분수의 나눗셈과 소수의 나눗셈을 배워가다 보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6학년에 새로 나오는 과정이 아니라, 3학년 때 배웠던 나눗셈의 원리, 그리고 나눗셈의 세로셈 알고리즘 사용 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재 교과용 도서는 분수의 나눗셈을 자연수 나눗셈 또는 분수 곱셈으로 바꾸어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소수의 나눗셈은 자연수의 나눗셈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결국, 6학년에서 수와 연산 과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연수 나눗셈의 방식을 능숙하게 구사하여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예시인 교과용 도서는, 선수학습 과정을 확인하는 단계로 단원 초입에서 수학익힘책의 한 쪽짜리 문제 모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며, 실제 운영을 위한 지도서 등에서는 이의 운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안내할 뿐입니다.
사교육에서는 더합니다. 오로지 선행학습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초점을 둘 뿐, 선수학습 과정을 되짚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전 과정을 되짚는 것이 학원비를 결제하는 학부모에게는 그리 큰 임팩트를 주지 않는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선 배움을 되짚는 과정입니다. 이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이해한다면 더더욱 필요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닥다리 이론이지만, 피아제 이론이 아직도 아동의 이해를 위해 유용한 까닭은 발달과 성장의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아제 이론에서 주목할 장면은, 구체적 조작과 형식적 조작입니다. 보통 만 11~12세,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사이에서 아이들의 발달이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 피아지는 이를 형식적 조작기라고 말합니다. 형식적 조작기를 수학적으로 이해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알고리즘의 이해가 가능한 시기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과정은 너무 이른 시기부터, 너무 많은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연수 곱셈의 세로셈 알고리즘과 자연수 나눗셈의 세로셈 알고리즘이 대표적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이 곱셈과 나눗셈의 세로셈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알고리즘의 이해가 필요할까요? 네. 필요합니다. 이해는 어느 순간엔가 한 번이면 족합니다. 단번에 이루어지고, 이해는 기능을 영속적으로 강화할 것입니다. 즉, 잊어버릴리 없도록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눗셈을 배우는 과정에서, 기능은 너무 빠르며, 이해를 이루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립니다. 즉, 아이들의 발달에 맞추어 한 번 더 이해하는 과정 - 아예 이해할 시기에 이를 때까지 배움을 지연하면 더 좋겠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두드려 보고자 합니다 - 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6학년 교실에서, 나눗셈의 세로셈 알고리즘을 원리로써 이해하도록 하는 배움의 전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방법적인 접근 만을 안내하는게 고작일 뿐. 이 아이들 중에 다행히 기능으로라도 익히는 아이가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많은 아이들은 기능의 반복적 설명으로는 한계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아마 교실과 교실 바깥에서 이미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자연수 나눗셈의 세로셈 알고리즘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어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6학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니, 접근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해에 기반한 기능의 안내가 필요하며,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중학교 1학년 때)가 바로 그 시기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의 결정 중에 가장 현명한 것으로 꼽을 만한 일 중 하나가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있었습니다. 중 2 겨울, 동네 속셈학원으로 수학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 저는, 이미 무리수가 끝난 학원 커리큘럼 덕에 곱셈공식과 인수분해부터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배운 후 학원 테스트를 치루었는데, 다른 아이들의 테스트 결과가 90점 이상(가장 낮은 아이가 87점)이었던 것에 비해, 제 점수는 52점에 불과하였습니다.
제 점수에 조금 실망한 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 결과, 중학교 1, 2학년 문제집을 꺼내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학생이니까 때마다 철마다 샀던 수학 문제집. 하나같이 깨끗한 상태로 집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걸 그 방학 때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1학년 것을 다시 풀어보는데 한 달, 중학교 2학년 것을 다시 풀어보는데 한 달.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올라가던 시점에서, 그 학원에서는 가장 수학 잘 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비록 동네 속셈학원이었지만.
물론 제일 좋은 것은 학생 스스로 선수학습 과정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이를 되짚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선 글에서 두드렸던 것처럼, 학습이 부진하다고 해서 지나간 과정을 다시 ‘시킨다면’ 아이들은 이 때문에 자존감에 훼손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내가 더 잘 하게 되어서 남들보다 더 먼저 배우는 것을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렇게들 선행학습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현명한 대처할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학습을 위해 특히 선수학습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는 방식의 교육과정 운영은, 특히 초등학교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선수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이 스스로 선수학습 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며, 교실에서는 그것을 아이들 스스로 원할 수 있도록 배움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실의 배움은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수학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뒤에서 두드리겠지만, '놀이의 탈을 쓴 수학 학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은 그 과정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며 매력적입니다. 수학 본연의 깊은 맛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향신료와 양념칠을 하여 요상한 맛을 내도록 만드는 것은, 교사와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 뿐입니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초등학교 6년 간의 수학, 마음만 먹으면 중학교에 가서 한 달이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학 학습에서 겪는 진정한 문제는, 학습 과정에서 겪는 너무 많은 실패와 좌절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열패감입니다.
아이들의 실패와 좌절을 강화하는 방식의 교육과정 운영을 벗어버리려면, 아이들의 선수학습을 꼼꼼하게 되짚는 일을 현명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인생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자라던 어느 시기엔가 조금 느슨하게 대하고 조금 덜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쓰기를 조금 게으르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잠시 수학을 잘 못 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계속 꼬리표로 남아 아이의 진급 과정을 따라다닌다면, 특히 초등학생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까요?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무엇보다도 형식적 조작기에 진입하기 전 아이들을 위해서, 선수학습 과정을 체계적으로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배움과 연계하여 나가는 방식으로, 지금의 선형 교육과정 형태를 벗어버리고 나선형 교육과정의 방식으로 편제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구체적으로 두드려 볼 생각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