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4.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신을 믿는 것으로부터
9년째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지만, 요 근래만큼 바쁜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바빠서, 학교에 출근해서 집으로 퇴근할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헤아려 볼 겨를도 없습니다.
온라인 개학의 여파입니다. 그저 휴업이 계속될 때는, 제 앞가림만 신경쓰면 되었지만, 이제 온라인 개학을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하니, 학교에서 맡은 일도 신경써야 합니다. 학년부장에, 과학정보예체능부장. 특히, 온라인 수업 준비를 ‘도맡아’ 하는 것이 가장 신경쓰이는 일입니다. 덕택에 분에 겹도록 신기술(!)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아이폰을 연결헤서 3인 Zoom을 시연했던 일은, 보드게임을 산 후 같이 할 사람 없어 혼자 3인플을 하곤 했던 그 이후 처음으로, 흡사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김봉두 놀이’를 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온라인 개학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 국민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혹 졸업생들을 본 것을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D
지난 2019년에 담임하였던 아이들을 졸업시키던 시점에, 그 동안 드문드문하였던 옛 아이들과도 소소하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았던 터,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렵사리 몇몇 아이들과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제 고2 올라가는 아이들, 이번에 스무 살이 된 아이들, 그리고 이번에 졸업시킨 아이들도 시간 날 때 하나 둘 이전 근무 학교 근처에서 만나거나 혹은 지금의 학교에 들러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혹은 잠시 담임 얼굴을 보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는 이제 중 2가 된 아이 둘이 학교를 찾았습니다. 실은 옛 담임이 학교로 부른 것인데, 오늘은 이 아이들 중 하나의 이야기를 두드려 볼까 합니다.
이 아이는 성취욕구가 굉장히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욕구는 주로 인정욕구로 드러나는 아이였습니다.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고, 방송반에 지원하기도 하고, 무언가 다른 사람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바라는 아이.
그러면서도 학년 초에는 성실해 보이는 모습을 참 좋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배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과제도 충실하게 수행하였으며, 모둠 활동에서도 항상 적극적인 아이. 그런데, 학기가 지날 수록 예상 외의 모습도 곧잘 보여 주었습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지각이 잦다는 것. 9시까지는 교실에 와야 하는데, 항상 9시 5분, 1교시 시작하기 직전에 오는 적이 많아졌습니다. 오는 아이를 재촉하여 전담 수업으로 보내던 기억이 납니다.
배움일지도, 저희 학급은 아이들이 배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배움일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정말 배운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빽빽하게 채울 때도 있는 반면, 어떤 때는 제출도 안 한 채로 그냥 지나칠 때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지나치는 날이 많아지는.
그런데, 저희 반에서 조금 색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년 초에는 그다지 주목할 일이 없던 아이 둘이, 배움의 장면에서 주목받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학생이기 때문일까요. 학교 현장에서 배움으로 주목받는 것만큼 임팩트 있는 일이 없는 듯 합니다. 물론, 근래의 학교는 석차가 나오거나 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아이들을 단원평가 등으로 줄세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배움의 순간과 성취에 집중할 뿐. 그런데 그 순간에 함께 집중하는 두 명의 아이가 서서히 아이들에게도 주목받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이 두 명의 아이들과 좋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던 이 아이에게도 자극이 되었나 봅니다.
그 자극이, 졸업 이후 이 아이의 문자로 이어졌습니다.
두 아이는, 둘 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하나는 아예 생각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학원 프레셔에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학원을 그만두고는 평안과 안온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좋은 배움을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잘 집중하는 아이들은 바로 학원 프레셔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부모 상담에서도 자주 말씀드리지만, 아이들이 교실에서의 배움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실 바깥에서의 배움이 너무 많고 길기 때문입니다. 교실 바깥에서 배울 만큼 배운 아이들은, 교실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교실에서 쉬는 아이들은, 교사가 이야기하는 중요한 내용, 교사가 꼭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어하는 내용, 평가로 연결될 내용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교실에서의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타성에 젖습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많은 학부모님들의 워너비가 되지만,내 아이가 그 아이들처럼 되지 못할 때, 학부모님도, 그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스트레스가 끝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듯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좀 샜는데, 어쨌든 학원 없는 아이 둘이 - 물론 학원 없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 교실 배움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이었고, 아마 그래서 이 아이도 졸업 후에 제게 문자를 보냈던 듯 합니다.
학원이 너무 힘들어서, 학원을 그만 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문자.
제주도 여행 중에 이 문자를 받고는, 바로 어머니와 통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졸업 전에, 이 아이에게도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 터라,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리면서, 아이가 해 볼 수있도록 믿어주실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마침 어머니께서도, 그러잖아도 아이가 그런이야기를 하길래, 선생님께 문자드려보라고 하셨다며, 아이가 학원 없이도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말씀 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빚이 생겼습니다. 굳이 지지 않아도 되는 빚인데, 1년간 담임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배움에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 지게 된 빚.
지난 1년간, 이 아이는 학교에서 학급 임원도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한 두 달에 한 번, 이 아이와 위 두 아이, 셋이 학교에 와서는 선생님 잔소리도 듣고, 보드게임도 하고, 같이 떡볶이도 먹고, 그렇게 관계망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2학년에 올라오는 시점에서, 이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이 생겼습니다.
졸업한 후, 이 아이들의 수학 학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묻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는 묻도록 하고 있고, 그래서 때때로 묻는 문자가 문항 사진과 함께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진도가 멎어버렸습니다. 1학년 2학기 때, 스스로 하는 공부의 진척이 더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번은 제게 물었습니다. 1학년 2학기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데, 1학년 1학기 것부터 다시 해야겠는데 어떠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밥먹고, 차 마시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어.
이 아이의 집이 아마 이번 가을에 이사를 할 예정인가 봅니다. 도통 자신없어하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아이인데, 자기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서 전학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밥 먹고 차 마시는 동안 여러차례 반복하였습니다.
왜 전학가는 것이 겁이 나는가 하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의 기색이 안 좋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구의 기색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부터 찾습니다. 혹시 내가 쟤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나?
친구의 기색은, 집에서의 원인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친구, 또는 학교, 때로는 직장에서의 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불만족 때문일 수도 있고, 간혹 어제 먹은 고기가 속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은 모두 제외한 채, 원인을 내게서부터 찾는 것이죠.
만나는 사람 모두의 낯빛을 살피고, 기색을 신경쓰며, 행동 거지를 곁눈질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전학가는게 신경쓰이고 겁이 나지.
사실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경험해 보면 압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지만, 모두가 나를 알고 내 이름과 모습을 기억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사실 나의 존재는 군중 속의 일개일 뿐임을.
인정욕구도 이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합니다. 인정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를 제대로 갖추고 싶은 생각들로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 수 밖에.
이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나란 존재, 그렇게 주목받는 사람이 아냐.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너무 신경쓸 필요 없어.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기색이 안 좋아보인다면, 혹시 내 말, 내 행동, 내 모습이 영향을 주었을까, 애써 넘겨짚어가며 생각할 필요 없다고. 내가 그렇게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줄만큼 굉장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늘 상기하라고.
그리고, 진짜 그 사람에게 내 말이나 행동, 모습이 영향을 끼쳤다면, 그 사람이 반드시 말하는 순간이 올거라고. 너, 기분 나빠. 그런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섣불리 그 사람의 기색을 넘겨 짚지 말라고. 그래서 너가 가진 평화를 깨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연습해 볼 순간을 하나 알려 주었습니다. 아마, 가까운 친구인데 분명히 남다른 때를 경험하게 될 때가 올거라고. 절대 멘탈 흔들리지 말고, 나 때문이 아니야, 어제 잘못 먹어서 속이 안 좋은 걸꺼야,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생각하라고. 그렇게 무사히(!) 보낸 후,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의 기색을 살피라고.아마 백이면 백, 평소와 다름없이 나와의 친분을 뿜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거라고. 결국 지난 번 그 기색이 예외인데, 우리는 그 예외를 변화로 받아들이면서 관계에 생채기를 내는 것이라고. 그러니 감정의 면모를 자꾸 기억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믿는 것. 그러니 1학년 1학기 수학이 어려운 까닭에 거기서부터 막혀서 정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관계의 파고 속에서 타인의 감정과 기색과 모습과 행동 거지 하나하나에 흔들려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지금까지 해 온 성실함과 올바름을 믿는다면 모두 다 별 것 아닌 것들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순간을 믿는 것이죠.
알아 들었을까요? 글쎄요. 다음에 또 만나서 확인해 보면 알겠죠. :)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