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個讀者, 獨立書店] 책, 권하는 공간
제가 (아마도) 제일 처음 찾았던 독립서점은 제주도의 (지금은 오프라인 매장은 폐점하고, 온라인 영업만 한다고 하는) 라이킷입니다. 2017년 초, 라이킷을 찾아가면서 가졌던 기대감과, 라이킷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대감은 낯선 곳을 찾을 때의 그 풍부한 감정이었으며, 당혹스러움은 그 곳의 어디에서 동의하고 공감해야할지 몰라 느끼는 낯섦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의 이런저런 독립서점에서 사장님, 운영자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이 낯섦의 정체를 조금은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독립서점을 시작하게 될까. 아마도 가장 첫 동기는 ‘책을 좋아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하고, 집을 서재로 꾸미고, 서점에서 망중한을 즐기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기회가 닿았을 때 서점을 한 번 꾸며볼까 꿈꾸어 볼 수 있겠죠.
혹은, 무언가의 목적에 책이 들러붙는 경우도 있을 듯 합니다. 이번에 갔던 책방 한 곳은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게스트들이 조용히 편하게 쉬면서 아침 조식도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을 서점으로 꾸미셨습니다. 물론, 이 또한 책에 대한 호감을 발판 삼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책방을 선보이는 분들이 과연 서가를 무엇으로 꾸밀 것인가 생각하면 아마도 자신의 선호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독서인이라면 마땅히 선호를 갖고 있으니까요. 작가 중에서도 누구, 분야와 범주 중에서 어떤 것 등등등. 혹은 올바름에 대한 견해가 서가에 반영되기도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 서점에서는 이런저런 책이 있어야 돼, 같은?
라이킷을 처음 찾았을 때 들었던 그 낯선 감정들. 잔뜩 기대하고 열었던 유리문 속 따뜻한 색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찾아든 그 당혹감의 성질을 추측하자면, 서점 운영자 분이 좋아하여 비치한 범위와 일개 독자인 제가 좋아하는 독서의 취향이 서로 비켜선 때문이 아닐까.
라이킷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었던 많은 블로그 글과 이런저런 관련 글들에서는, 라이킷의 큐레이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던 바, 그저 아담하고 예쁜 작은 서점이라고 생각하고 갔던 라이킷. 그 곳에 발을 디디고 나서야 비로소, 이 곳의 정체성을 독자의 시각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이킷의 정체성은 #여성, #그림책, 그리고 #제주도 정도의. 그래서 서가를 좌우로, 앞뒤로 살피던 동공의 흔들림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선 그 느낌.
거칠게 표현하자면, 조금 편한 마음으로 책과 공간의 주인을 만나러 간 곳에서 취향을 강요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여어, 만약 그렇게 불편했으면 다음엔 안 가면 되잖아. 그러나 아쉬운거죠. 일개(一個) 독자로서 가지는 아쉬움. 분명히 그 공간의 무언가는 내게 말걸기 위한 무언가의 접점이 있을텐데... 그래서 또 한 번의 기대를 갖고 또 한 번의 발걸음을 하였지만... 그 때도 결국 공간의 존재들과의 접점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어디에선가 두 지향점이 수렴하는 점이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평행한 듯 보이는 운영자와 독자가 지향하는 지점으로의 날카로운 선.
만약, 서점의 장소가 (제주도 식 표현으로) 육지였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 해방촌의 고요서사를 방문하는 발걸음은 방문자의 발걸음이지만, 제주도의 한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발걸음은 보통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불리울 듯 합니다. 제주도라는 위치가, 지리적 단절감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행지로 여겨지니까요.
그래서 책방 소리소문의 모습은 제주도라는 지리적 특성과 함께, 흘러가는 여행자의 발걸음도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의 큐레이션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간은 모두 여섯 곳.
넓은 분야를 아우르면서도 너무 퍼지지 않도록 잘 큐레이팅 되어 있는 메인 서가와 한 사람의 작가에 몰두할 수 있도록 - 제가 갔을 때는 스콧 피트제럴드의 공간이었습니다 - 꾸며진 필사를 위한 책상이 한 공간에 구획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공간 하나에는 운영자의 강력한 큐레이션이 조금 다른 두 가지 색채로 빛나고 있었고, 카운터 공간은 운영자의 색깔을 조금 죽이고 세상의 목소리를 담은 서가 하나가 넉넉한 품새로 독자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창과 시야를 가진 공간은 넓은 마음을 가진 존재인 아이들이 넓고 큰 책들을 만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 - 에 더하여 조금 색다른 큐레이션이 펼쳐진 원형의 탁자 - 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홀의 매대 하나와, 그리고 이제는 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함게 떠나다가 그제서야 만나는 출입구 옆 아늑한 공간 하나까지. 여섯 곳의 공간이 아홉 가지 색깔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서점에서 오래도록 일하셨다는 운영자 분의 경영관과 함께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가진 운영자 분들의 선호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서, 마음 한 켠의 묵직한 무언가를 육지에 두고 온 여행자로 하여금 큰 고민과 갈등 없이 운영자의 큐레이션을 따라 다양한 작가와 저자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공간. 그래서 일개(一介) 독자 주제에 오랜 시간 운영자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방 소리소문을 찾은 후에는, 그 전까지 해오던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굳이 태깅할 필요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일개 독자를 만족시키면서도, 강력한 목소리로 새로운 도전을 권하는 공간. 조금 지쳤다면 내 만족에 머무를 수 있고, 조금 달려보고 싶다면 운영자 분의 권유에 손 내밀어 계산하면 되는 공간.
독립서점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하는, 그리 많지 않은 갈림길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한 번 걸어볼까 걸음할 수 있는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