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딸 이야기] 7.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지난 번, 중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이야기를 두드렸더랬습니다. 시험 두 주 전 쯤 아이에게, 시험이란
"학교 생활의 성실함을 평가하는 것"
이면서
"몰아서 평가하기에 직전에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
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1등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의 배움에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가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 말을 건넨 후,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사흘 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다가, 시험이 두 주 남은 월요일에 교과서를 주섬주섬 꺼내어 들고 나오더군요. 그래서 교과서보다는 문제집이지, 라며 바로 문제집을 한 권 사 들고 왔습니다. 시험범위는 연립방정식과 일차함수. 그 때 부터 매일 한 시간 정도씩 문제집을 풀더군요.
아빠는 옆에서 스탠바이하며 지켜보다가 조금 막혀하면 안내하고 알려주고... 그런데 1학년 배움이 잘 안 되어 있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군요. 한 주 정도 지났는데, 이제서야 연립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는 정도. 그렇게 한 주 더 지나니 아이는 시험 범위의 3분의 2정도 되는 문제집을 딱 한 번 정도 풀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치룬 기말고사는 22점.
아이는, 문제를 풀 수 있을 듯 보여서 계속 풀었는데, 나중에 보니 주관식까지는 가지도 못했고 시간이 다 끝났더라, 고 말하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으니, 오래도록 발목이 잡힐 수 밖에요. 보면서 우리 아이가 평범한 아이로구나, 생각했고, 애썼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두 주, 하루에 한 시간 씩, 도합 열 다섯 시간 정도 수학 공부를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되새기기에는 많이 모자라겠네?
조금 더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안내한 것만으로도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통해서는 따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통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 이 정도를 안내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 때는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도록 하였습니다.
방학을 시작하면서 2학년 2학기 문제집을 하나 골랐고, 지난 주 아빠가 합숙연수를 다녀올 때까지는 그저 있다가, 아빠가 돌아온 지난 주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닷새동안, 적게는 30분, 많으면 두 시간 반까지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시간은 도합... 일곱시간 반 정도?
그 동안 아이는 직각삼각형의 합동과 피타고라스의 정리 - 무리수를 배우기 전인데 피타고라스가 나오네요... (쿨럭) - 삼각형의 내심 성질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이 공부를 시작하기 참 싫어합니다. 그런데 막상 하고 앉아 있으면 나쁘지 않게 풀어냅니다. 아빠도 아이를 억지로 앉혀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 얼마 전 아이에게 건넨 이야기가 저를 도와줍니다.
너의 하루를 되새겨보자. 너가 하룻 동안에 하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들으면서 그림 그리다가, 그네 타러 갔다가, 도서관 갔다가, 또 그림 그리다가, 그네 타러 갔다가, 피아노 학원 갔다가, 도서관 갔다가, 그네 타러 갔다가, 그림 그리는 것이잖아. 아빠는 나쁘지 않다고 봐. 하고 싶은 일 하는 거니까. 그런데, 결국 이 모든 일은 여가 생활이잖아? 여가는 뭐니. 한 걸음 더 성장한 사람이 그 성장에 대한 기쁨과 어려움, 힘듦과 행복을 끌어안고 누리는 휴식아니니? 그런데 너의 삶은 지금 휴식 뿐인거야. 그림 그리는 것 생각해보자. 그저 그리니, 아니면 더 나은 성장을 목표로 하면서 그리니. 3년째 그림 그리는 것을 하지만, 아빠 봤을 때는 너의 성장을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빠는 그림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적어도 여가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무언가 너 자신을 성장하도록 하는 삶의 부분도 너에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성장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그저 더 두었어야 하는가 스스로에 대한 미심쩍음도 있습니다. 아이 혼자 잘 할 수 있고, 잘 해 나갈텐데 괜시리 섣부르게 개입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어쨌든 첫째 아이에게는 이제 부모로서의 개입을 시작하게 된 듯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찡얼거릴 때 한 마디 툭 건넵니다.
"하루에 세 시간 성장하고 스물 한 시간 여가를 보내는데?"
실제로 무슨 세 시간이나 공부를 하겠습니까. 오늘도 나갔다 들어오면서, 세 시간 수학 풀자, 그랬더니 한숨을 쉬고는 오늘은 안 하면 안 되냐는 둥, 두 시간만 하자는 둥, 우는 소리 찡얼거리는 소리 하다가 결국은 앉아서 한 시간 반 풀고는 지금 자기 방에서 (음악 들으면서) 그림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시작은 하였지만, 제대로 하게 할 생각까지는 아직 없습니다. 중학생에게 하루 한 두 시간 정도의 학습이라면, 저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 푸는 것을 보아도. 지극히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아빠가 굳이 선제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서 문제집 윗 부분의 내용 보면서 스스로 잘 이해하던지, 받아들이던지 하면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 혼자 공부할 때에는 절반 이상 틀려서 답안지 보면서 일껏 이해해서 풀었는데... 아빠, 이건 뭐야? 라고 하루에 두어번 정도 물어보는 듯 싶고, 아빠는 답안지가 되어 아이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할 때까지는 썩 내켜하지는 않지만, 어제 같은 경우에는 술술 풀리는 경험을 통해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경험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에게 썩 다행스러운 것은,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누가 무언가를 억지로 시켜서 했던 경험이 적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십 수년 동안 과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키면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해도 집중력있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억지로 무언가를 해 본 경험이 없으니, 해도 집중력있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듯 합니다. 물론 음악도 듣고, 유튜브 채널도 맞추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문제 상황에서 정신을 놓지는 않더군요.
그러고보면,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 저희 첫째 아이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르겠지만... - 섣부르게 강요하는 그것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기왕에 아빠가 아이를 붙들고 앉게 되었으니, 목표는 꾸준하게, 입니다. 하루 두 쪽이라도 꾸준하게. 그리고 실패 상황에서의 낙심이 오기 전에 안내하고, 성공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성공이 당연한 귀결임을 주지시키면서 아이가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