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업무/학년
업무/학년
교사의 전문성은 어디로 향하는가. 업무? 학년?
교직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학년 연구실에서 선생님들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나이스 업무를 해 보고 싶다, 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뚱딴지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왜냐고 물으셨고, 저는 업무 전문성의 취지에서 답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배워두면 나이스 업무의 전문가가 될 것 같다는 답이었고, 그 때 제 이야기를 들으시던 선생님 한 분께서 약간은 시니컬하게, 그럴 필요 없다시며 결국 학교 업무는 누군가 맡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이니 굳이 거기에서 전문성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햇수로 7년차, 교직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맡아보니 그 선생님의 말씀이 더도 않고 덜도 않고 학교 업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맡아도 다 할 수 있는 것. 학교 업무.
학교 업무라는게 무언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것을 생산해낼 수 있는 영역이라기보다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가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학정보부장으로 4년쯤 지내보니, 이 쪽 업무도 하나같이 법과 규정에 따라 교육기관에서 반드시 갖춰두어야 할 여러 절차를 시기에 따라 해 가는 것일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차년도 업무분장을 하는 시점에서, 선생님들의 선택은 흔히 불리우는 기피업무를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어떤 업무가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업무인가, 를 이리저리 둘러보시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각각의 업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텐데요,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학교폭력담당업무가 가장 난이도 있는 업무로 여겨지는 듯 하구요, 자치 관련 업무도 이것저것 신경 쓸 일 많아보이는 업무로 여겨지는 듯 합니다. 학교운영위원회, 방송 업무, 청소년단체 등등등, 가만보면 루틴한 상황을 가지는 업무들이 아닌, 변수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업무들을 조금 덜 선호하게 되는 듯 싶습니다.
그러면서 결정되는 업무에 따라 담당하는 학년(혹은 교과전담 유무)도 함께 결정되는 모습을 같이 봅니다. 업무가 과하면 학년은 조금 '쉬운' 학년으로. 혹은 이런저런 업무를 다 피하고 싶으면 학년은 조금 과중한 6학년 쯤으로. 학년 선택은 업무 선택에 부수하여 결정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선생님들의 주된 생각은, 다양한 학년을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의 교직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것인 듯 합니다. 이제 햇수로 7년째인 제게, 정말 많은 선생님께서 '이런저런 다양한 학년을 경험해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은 '1학년을 해봐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화된다는 장점이 있겠지요.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겠구요. 혹은, 조금 편한 학년에서 쉬면서 재충전도 할 수 있겠지요. '4학년을 해 봐야돼. 애들이 착착착 얼마나 예쁘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보면 그냥 힐링이 돼'. 물론 요즘은 4학년도 무서운 4학년이라는 말을 듣는다지만 어쨌든.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그런 말씀을 들으면 당연히 '다른 학년도 한 번 경험해 봐야지' 생각을 했었는데, 교사 전문성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요즘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업무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다면, 교사의 전문성은 무엇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가. 짧은 생각에, 교사의 전문성은 교육과정 운영에서 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취기준 분석의 전문성, 교육과정 계획과 설계의 전문성,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준에 맞으면서 학생들의 배움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교수-학습 활동에 대한 전문성, 학생의 성취기준에의 도달 여부를 성취수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평가의 전문성, 그리고 학생 개개인의 발달과 성장에 맞추어 학생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학급 운영 전문성까지.
담임하는 학년을 1년 단위로 바꾼다는 것은, 이런 교육과정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을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하는 시기에, 1~2년 정도 한 개 학년을 했다고 해서 학년 교육과정 운영의 전문성이 높아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동 발달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같은 학년(군)을 오래 경험해 본다면 조금 쉬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교사가 키워야 할 전문성은, 학년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업무에 부수하여 학년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년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덧 일곱 번째의 6학년 담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6학년 교육과정 운영과 학급 운영의 전문가인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아직 택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고, 학급 운영에 대한 노하우와 데이터가 조금씩 쌓여가면서, 그래도 새롭게 맞이하는 학급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싶은 것입니다.
지금 수준에서 가장 짜증날 일은, 내년에는 4(혹은 6학년이 아닌 어느 학년이라도)학년 담임을 해보지? 라는 말이 될 듯 합니다. 물론, 새로운 학년을 담임하더라도 한 두 달이면 금새 적응해서 그 학년 만의 매력에 홀딱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같은 학년만을 고집스럽게 담임하는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미련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교사가 업무와 학년 운영에 있어서 어떤 전문성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업무도 학년도 둘 다 그냥 닥치면 하게 되겠지, 라는 생각은 넘어서야 할 듯 보이고, 기왕이면 학년 교육과정 및 학급 운영에 대한 전문성을 추구해 가려는 모습을 꾸준하게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