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4. 아이들의 발달이 제각기 다름을 인정하기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모여 앉은 교실은,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초등학교 4학년 수준부터 중학교 2학년 수준까지 제각각의 모양새로 모여있는 공간입니다. 즉, 발달은 개인차를 가집니다. 보통 남자 아이들은 발달의 여지가 조금 더 남아있는 상태로 6학년을 맞이하구요, 여자 아이들은 많이 자란 모양새로 6학년을 맞이합니다.
제 6학년 때는, 그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그냥저냥 흘려보냈었던 듯 싶습니다. 그 당시에 중요했던 사건의 조각들만 몇 가지 기억이 날 뿐,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은 아마도, 또래보다는 조금 덜 성장한 상태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그랬기 때문에, 저와 같은 교실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겁결에 처음 맡았던, 그리고 처음부터 제대로 맡았던 그 때의 6학년 교실에서는 그런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한 교실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특히 학습적인 측면에서 모두 다 큰 성취에 도달한 모양새로 중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랬습니다. 덕택에 모두를 타이트하게 쪼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급에서 가장 잘 하는 아이 - 보통은 여자 아이 - 를 기준으로, 나머지들이 모두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아주 타이트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해를 경험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떤 아이는 이미 훌쩍 자라서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어떤 아이는 아직도 제 나이보다 어리게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런 모습의 아이들이, 제 어릴 적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하였고, 그렇게 제 시절을 되돌아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저 발달하고 성장하도록 응원하고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 첫째 아이도 그렇습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여자 아이지만, 제 생각에는 또래 여자 아이들의 평균적인 모습은 아닌 듯 싶습니다. 다른 여자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보이그룹을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며, 여러 드라마 등에 나오는 이상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지만, 저희 큰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큰 아이는 조금 더 자라고 성장하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도 그런 기다림이 필요하며, 특히 남자 어린이들의 경우, 대체적으로 여자 어린이들보다 발달과 성장이 조금은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동전 뒷면에는 방치라는 글자가 쓰여져있다는 사실을 흔히 간과합니다. 기다린답시고 그저 손놓고 앉아있는 교실 안에서 누군가는 그저 방치된채로 시간을 허송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실은 저의 초등학교 시절이 그렇게 방치된 가운데 놓여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초등학교 -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였죠 - 6학년 시절에는 한 학급에서 60명이 넘게 생활하였습니다. 저희 반만 해도 남자 36명에 여자 26명, 도합 62명이었으니까...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그 크기의 공간에서 예순 세 명이 벅적벅적거렸으니, 과연 담임교사가 하루에 한 번씩 제 이름이라도 불러주셨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한 학급에 30명 남짓의 인원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이들을 유심히 보아낼 수 있는 상황. 이런 속에서도 자칫하면 어떤 아이는 하루에 한 번, 담임교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학교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발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다리는다는 말 뒤에, 담임교사의 말을 더 잘 귀담아 듣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해내는 어떤 아이들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낼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담임교사가 정말 이것저것 여러가지 다양한 배움의 층위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말의 의미가 방치가 되지 않도록, 한 시간의 배움 속에 모두가 이 수업 시간에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인가. 아이들의 발달 편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공간이 바로 6학년 교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층위는, 활동의 층위와 연계되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배움의 시간에 아주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소하게 얻어내는 즐거움은 자칫하면 안 즐거움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배움 활동의 즐거움이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배움의 본질은 소소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활동이 신날 때, 아이들은 총체적으로 즐거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총체적 즐거움은 아이들에게 오늘의 학교에서는 무언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즐겁고 신났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고,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이어지다가 어느날 문득,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의 발달의 계단을 한 계단 더 올라왔음을 삶으로 느끼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 아이를 움직이는 힘은, 이렇게 쌓인 즐거움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활동만 있는 수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뜻 모를 의미없는 활동만 껍데기에 두른 수업은, 발달의 다른 편에 서 있는 아이들을 무료하고 심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배움이 없는 체험이 가져오는 그 무료함과 공허함. '재미없는 수업'보다는 그게 낫다고 생각하니 그걸 더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아이들도 활동 속에 꽉 찬 배움을 맛볼 수 있는 수업을 누구보다도 좋아합니다.
모두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것, 그것은 부모와 교사의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할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강제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재미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수업 이외의 상황에서 다양하게 준비하여 소개해주는 것도 좋은 방편입니다. 어쨌든, 학교에 오는 것이 즐거워야 하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아이의 다양한 발달과 성장을 인정하면서 그 가운데 조금씩 배움의 동기를 키워갈 수 있도록 교사가 더욱 더 노력하여야 하는 공간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