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원의 방식
학원의 방식
학원의 방식은 대동소이합니다. 시스템 상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학 과목의 예를 들어보죠.
학원에 가면, 아이들은 강의를 듣습니다. 강의는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학생들을 상대해야하기 때문이죠. 직접교수법을 사용한 강사 중심의 전달 강의. 아이들은 강의를 듣습니다. 강사의 표준(으로 제시된) 문제 풀이를 한 두 문제 보고, 아이들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풀어볼 시간을 가집니다. 다 푼 아이들이 나오면, 강사는 다 푼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보니 못 푼 아이들에게는 과제를 부여하고 다음 표준 문제를 풀이합니다. 또 아이들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풀어볼 시간을 가지게 되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 후, 아이들은 가정에서의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다음 시간, 아이들은 숙제를 해 가지고 오고, 강사는 답을 불러줍니다. 1번에 뭐, 2번에 뭐... 아이들은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과도한 과제인 탓에, 아이들이 답을 베낄 수도 있으니 답안지를 미리 걷어서 가지고 있는 것이죠. 덕택에 검색 포털의 질문글 중에는 문제집 답안지의 일정 부분을 구하려는 학생들의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문항을 카메라 어플로 찍어서 아예 풀이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이들은 강사가 불러주는 답에 따라 자신의 문항을 채점하고, 질문 시간에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질문합니다. 이런 저런 아이들이 손을 들지만, 교사는 모든 문제를 다 풀어줄 수 없습니다. 강의 시간이 정하여져 있고, 진도를 나가야하며, 혹은 그걸 일일이 풀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도 몰라? 같은 말이 나오는 순간이죠. 그렇게 질문 시간이 지나가면 강사는 다음 진도를 위해 표준 문제를 다시 풀기 시작하고, 또 아이들은 풀어가고 과제를 부여받고 그렇게 강의가 끝이 납니다.
이렇게 진행하다보면, 빠르면 교재 한 권이 2~3달 만에 마쳐지기도 합니다. 그럼 학원에서는 비슷한 난이도의 교재 한 권을 다시 골라 풀이합니다. 같은 과정을 다루는 심화 교재 한 권을 고르는 곳도 있습니다. 뭐, 대동소이합니다. 비슷한 난이도의 교재 한 권을 풀고 심화 교재로 나아가거나, 교재 두 권을 풀고 심화 교재로 나아가는 것이죠. 어떤 곳은 세 권의 교재를 풀고 심화로 나아가기도 한다던데... 어쨌든, 그렇게 두 권 또는 서너 권의 교재를 풀고 나면, 다음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선행 학습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1) 과도한 과제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에 대한 예시를 한 번 들어보고자 합니다.
2014년에 졸업시킨 아이의 어머니께서 2015년 1학기 중반 쯤 학교에 찾아오신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연년생인 동생을 제가 담임하던 덕도 있겠지만, 어쨌든 오셔서 동생 이야기보다는 누나 이야기만 토로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작은 이번에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수학 학원에서 어마어마한 과제량을 부여 받았다는 것으로부터였습니다. 아이는 이 과제를 성실하게 다 수행하였고, 덕택에 중간고사를 앞둔 2~3주간 다른 과목 공부는 미루어두고 수학 학원 숙제에 매진하였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과제를 하면서 잠들지 못하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는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한 그런 마음을 가지셨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시험이 끝난 다음에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열심히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였고, 시험을 앞둔 2~3주간은 정말 수학 학원 과제에 치여가면서 벅찬 과제를 다 수행하였는데, 수학 점수가 77점이 나온 것입니다. 아이도 실망하고, 어머니도 안타까와하시고... 그래서 학원에 전화를 한 번 하셨다고 합니다. 뭐, 아마도 안타까움을 공감받고 싶으시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이런저런 안타까운 마음을 들은 학원 원장의 한 마디가 어머니를 굉장히 분노하게 하셨다고 하더군요. 학원 원장 왈,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았나봅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찾으셔서 토로하신 것도 그런 것입니다.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다른 과목은 제쳐두고 수학만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을 자기는 내내 보아왔는데, 어떻게 학원 원장이 우리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과도한 과제가 하는 일은 학생이 열심히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됩니다. 너무 과도한 나머지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 됩니다. 너무 과도한 그 과제를 꾸역꾸역 한 아이들 중에 그 덕택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성적이 향상된 아이는 열심히 한 학생이 됩니다. 시킨 것은 학원이니, 학원이 그 공을 가지게 되죠.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 공은 학원에 있지 않습니다. 과제를 한 것은 학생이요, 과제를 하도록 아이를 강제하는 것은 학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학원에서는 문자만 하나 띡 날릴 뿐입니다. 아이 과제가 형편없네요. 집에서 관리해 주세요. 부모는 아이에게 일갈합니다. 학원 숙제가 이게 뭐니. 아이들은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부모의 성실함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 아래에서 그 과제를 꾸역꾸역 해 갑니다. 학원이 하는 것은 별게 없습니다. 과제를 내주고, 학부모를 움직이고, 안하면 학생 탓, 하면 학원 덕이 되는 셈이죠.
이 때, 위의 사례와 같은 아이들이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학원의 답은 명쾌합니다.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데 사실, 학원의 입장에서는 다른 답을 내리기도 쉽잖습니다.
2) 학원이 문제집 갈이를 하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학원은 한 권의 기본 교재를 해결하고 나서 동일 과정의 다른 기본 교재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재라고 해서 그 문제의 질과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교육과정에 대한 해결로 제작된 문항이기 때문에, 문제집을 이리저리 사도 그 문제의 수준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으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다시 과제로 부여받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게 없습니다. 할 줄 아는데, 또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니...
그럼 학원도, 학부모님도,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헷갈리거나 실수할 수도 있으니 또 풀어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위해서 알고 이해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한 문제도 아니고 몇 십 문제, 몇 백 문제를 해야하는 일처럼 하기 싫은 일이 없습니다. 이건 학생의 흥미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기제가 됩니다.
당연히 해야하는 일은, 한 번 훑어보았던 교재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으며, 해결하지 못한 문항을 다시 한 번 풀이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교재를 한 번 푸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알고,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아내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게 과제를 찾아낸 후에, 그 과제를 중심으로 알아가고 이해해가며 해결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러면, 교재 한 권을 끝낸 후에 그 교재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으며, 해결하지 못한 문항을 다시 한 번 풀이하도록 하면 될텐데, 왜 학원은 그것을 못할까요.
첫 번째로, 그것을 하려고하면 아이들의 진도율을 개별 관리해야 합니다. 교재를 첫 번째로 풀 때, 아이들은 개인차를 드러냅니다. 누군가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으며, 해결하지 못한 문항이 별로 많지 않고, 누군가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각자의 편차를 가지고 모여 있는 한 강의실 안에서, 만약 각자의 성취 수준대로 과제를 내주면 새로운 인력 - 아르바이트 생이든지, 강사보조라든지 - 이 필요하고 수익률이 작아집니다. 획일적으로 과제를 부여하려고 해도, 서로 해결해야 할 문항의 수 차이가 있다보니 누구에게 포커스를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스무 쪽 푸는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항이 열 문항인 학생과 백 문항인 학생이 한 교실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학원의 상황입니다. 각자의 과제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차라리 두 번째 교재를 고르는 것입니다. 포커스가 해결 과제가 많은 아이에게 맞추어지는 셈이죠.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해결할 과제가 적은 학생은 지루함을 이겨가며 불필요한 과정을 한 번 더 수행해야 하는 것이고, 해결할 과제가 많은 학생은 해결이 필요한 과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맨땅에 다시 헤딩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과정을 끝내고 나면, 심화 교재를 고릅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심화 교재. 가만히 그 문항들을 분석해보면, 무늬만 현재 과정일 뿐 실제로는 선행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항을 내려 가지고 온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무늬만 수학 문제일 뿐, 이리저리 문항의 의미를 얼마나 배배 꼬아 두었는지 교사도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석 문항인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다음 학년에 가서 배워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화 교재를 사라고 하는 순간, 학부모와 학생은 착시를 겪습니다. 아, 잘 하나보다. 할 수 있어야 잘 하는 것입니다. 하는 것만으로는 잘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과도한 과제와 문제집 갈이는 학생과 학부모, 심지어는 학원 자신의 눈속임을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개별적인 관리가 필요한 학생에 대해서, 학원의 수익성을 위하여 그 개별 관리를 포기한 채 획일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눈속임.
3) 그렇게 아이의 개별적 과제 해결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 채 과도한 과제와 문제집 갈이를 반복하면서 학생은 어느 순간에 현재 학교의 학습 진도보다 조금 앞서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선행학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원에서 선행학습은 필연적입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 선행학습은 문제를 확대할 뿐입니다. 과도한 과제와 문제집 갈이를 통한 학습 진도 진행은, 학생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해결해야 할 문항에 대한 해결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 대한 완전학습에 도달하기는 커녕 빈틈을 숭숭 남긴 채 다음 과정으로 아이들을 이끌 뿐입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교 현장에서는, 학원 진도는 중 2인데, 6학년 과정 풀이는 완전은 커녕 꼭 알아야 할 문항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단원평가는 80점인데, 학원 진도는 중학교 1학년 2학기를 진행하는 아이들. 많습니다. 현재 진도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선행 학습이 웬 말입니까.
예전에 과외 교습으로 만났던 학생 하나가 기억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원에서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배웠다는데, 저랑 만난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중학교 2학년 과정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던 그 아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쿨럭쿨럭)
저희 반 아이 하나가, 위의 이야기를 대강 듣더니, 제가 다니는 학원은 답안지를 걷어 가지도 않고, 채점도 답안지 보면서 스스로 하게 해요, 라고 말하더군요. 자기 학원은 좋은 학원이라며.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뭐하러 학원을 다니냐.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되지.
요즘 학원 시스템도 그래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전통적인 직접 교수법에 의한 전달식 강의가 학생과 학부모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학원도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 여 년 조금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는 자기주도적 학원 시스템입니다.
학원은 학생들에게 문항을 나누어줍니다. 학생은 그 문항을 받은 후, 힘 닿는데까지 풉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후, 클래스를 관리하는 강사에게 가지고 나갑니다. 그러면 강사가 문항 풀이를 본 후, 디딤 과정을 제공해 줍니다. 완전히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문항을 풀기 위한 소스를 던져주는 것이죠. 아이는 자기 자리로 가서 다시 그 소스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다시 해결한 문항과 해결하지 못한 문항을 가지고 나가고 강사는 또 디딤 과정 제공. 그런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아이가 마침내 문항 전체를 해결하면 하원합니다. 전통적인 학원 시스템을 벗어버린 이 시스템. 능력 있는 클래스 관리 강사만 있으면 됩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던 다 해결할 수 있는 강사의 역량.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생들은 이런 클래스 관리 강사 같은 능력 있는 도구를 교재를 살 때 같이 획득합니다. 교재 뒤 붙어있는 해설지. 학생들이 해설지를 읽는 방법만 익히면 굳이 학원에 가서 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해설지를 읽고 이해하면 될 뿐. 이것은 학부모도 자녀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려운 방법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는, 아이에게 하려고 하는 동기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그 동기가 학원에 다닌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전통적인 학원 시스템은 획일화 된 학생 관리 때문에 있던 동기도 갉아 먹는 경우가 태반이며, 자기주도적 학원 시스템은 동기 부여가 되어 있는 학생이 굳이 가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시스템입니다.
더 큰 눈속임은, 학원이 학생을 가려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