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과 내 재구성의 의미와 필요성
교과 내 재구성은 교육과정 재구성의 꽃이다
1년 동안 교실에서 교사가 수행하는 교육과정(커리큘럼)을 구성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교과 내 재구성의 방식과 교과 간 재구성의 방식, 그리고 탈교과 재구성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중 현장에서 익숙한 방식은 교과 간 재구성의 방식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뒤에 두드리겠지만, 문제기반학습(Problem Based Learning, PbBL), 프로젝트학습(Project Based Learning, PjBL) 등이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며, 현상기반학습(Phenomenon Based Learning, PhenoBL)도 요즘 조금씩 관련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 개인의 역량에 따라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사가 가진 교육철학과 교육관에 더 밀접한 방식은 교과 내 재구성입니다.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는 흔한 교과 내 재구성의 방식은
증배, 감축, 외부강사수업
이렇게 살펴보자면 사실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것이 먼 것이 아닙니다. 교사가 교수-학습 과정 가운데 늘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교육과정 재구성입니다. 교과(용 도)서의 문항을 스킵한다던지, 단원을 바꾸어서 배움 과정을 진행한다던지 하는 일은 현장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실은 이 이상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교사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러나 아직까지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지만, 더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어 과목을 예로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6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말씀 나누어보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관점을 구하는 단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6학년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글의 종류로 논설문을 사용하고 있고, 논설문(주장하는 글)의 관점, 문제상황, 주장, 주장에 대한 근거 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 타당성과 적절성, 주장하는 다른 방식인 연설문, 관점이 담긴 매체인 기사나 뉴스 등을 한 학년 내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학습 제재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면서, 그 앞줄기에 '관점'을 묻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어 제시되다보니 교사들의 제재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까닭을, 저는 개인적으로 '병렬적'인 제재의 배치를 꼽고 싶습니다. 섣부른 추측을 하자면, 교과(용 도)서 집필진이 작업을 병렬적으로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교직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부분인데요. 국, 영, 수, 사, 과 다섯 과목을 평가하기로 하면, 시험 문제를 과목 별로 나누어 각각 출제한 후 이를 가지고 모든 학년이 평가를 치루죠. 혹여 교과(용 도)서도 이와 같이 집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섣부르게 넘겨짚어보지만, 어쨌든 이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교사는 소극적인 문제제기만 할 뿐, 더 적극적인 액션은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사 개인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저는 더 적극적으로, 교사의 역량에 따라 교사 개인이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교수-학습 방법 및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교과(용 도)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교과(용 도)서 집필진이 한 일은,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교수-학습 방법 및 수단을 교과(용 도)서라는 자료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사가 과연, 교과(용 도)서 집필자만큼의 수준이나 실력도 되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마 교과(용 도)서 집필자 분들도 손사래를 치실 것입니다. 교사 개개인의 역량은 훌륭하고, 이를 더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아마 그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사는 학습과 연구를 통하여 이루어 낸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지 - 어떻게 성취기준에 도달하게 할 수 있을지 - 를 고민한 후,
자신(만)의 교육과정(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어야
조금 더 나아가,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수학과 교과(용 도)서에 대한 이야기도 두드려볼까 합니다.
이번 수학과 교육과정 6학년 과정을 보면 학습내용 감축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교육 현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수학의 학습 내용은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많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차 교육과정 아래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했던 저는, 이후 교육과정에서 미적분이 고등학교 문과 학습 내용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미적분 정도는 배워주어야 수학하는 학생이지, 따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장에 와서 보면서, 배움의 양이 과연 학생들에게 적절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때문에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떨어뜨리는 지금의 교육과정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간혹 신문 지상에서는 대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교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는데, 저는 거꾸로, 대학에서 필요한 수학 수준을 왜 고등학교에서 학습시켜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대학수학능력을 갖추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입시험을 대학수학능력평가, 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정말 대학수학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초·중·고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학습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의 교육과정 연계성이 확연하게 떨어지진 않는가에 대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확연하게 교육과정 상의 내용은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꺾는 과도한 내용량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학습량 감축은 마음에 들지만, 교수-학습 내용에 대한 의문은 가지고 있습니다. 6학년 1학기 수학 1단원 분수와 소수의 나눗셈의 예를 들겠습니다.
앞부분에 (분수)÷(자연수)의 계산이 나옵니다. 5학년 때 다루던 것을 6학년으로 올려보낸 내용인데, 학습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이걸 보고는,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았습니다.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를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의 입장에서 한 번 두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곱셈식 사고와 나눗셈식 사고는 그 난이도가 크게 차이납니다. 귤 여섯 개를 곱하기 2분의 1하는 것과 나누기 2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곱하기 2분의 1은, 절반입니다. 귤 여섯 개의 절반. 배수적 사고를 유리수 단위로 확장시키는 것이지만, 곱셈적 사고는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나누기 2는, 둘로 나눈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귤 여섯 개를 둘로 나누었을 때 그 중 하나의 양인 셋. 사고가 복잡하게 이루어집니다. 더미를 똑같게 나누어 - 혹은 똑같이 덜어내어 - 이 중 하나의 양을 간추려야 합니다.
자연수 범위에서는 이것이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은 아이들은 자연수의 나눗셈 문제를 머릿 속에서 자동으로 곱셈식 사고로 바꾸어 해결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리수 범위로 확장된 수체계에서는 이것이 어렵습니다. 자동으로 곱셈화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나눗셈식을 곱셈식으로 바꾸는 과정이 교육과정에서 줄곧 소개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교과(용 도)서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위 내용이 가지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후 중학교 단계에서는 나눗셈이 연산 과정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지점입니다. 유리수의 표현 방식인 분수와 소수도, 중학교에 이르면 모두 분수로 바꾸어 풀게 됩니다. 분수로 바뀐 유리수의 나눗셈 연산은 모두, 곱하기 분수의 역수로 바꾸어 풀게 됩니다. 분수의 곱셈은 약분으로 해결되죠. 연산 과정이 단순화됩니다. 효율적으로 접근하죠. 그런데, 우리 교과(용 도)서에서는 1년 뒤면 사용하지 않을 방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는 개념의 이해와도 무관한 풀이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급기야는 아래와 같이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저깟 방식이 뭐라고, 저 방식 - 분수의 분자 위에 나눗셈을 올리는 - 을 사용하기 위해 '억지로' 분수의 분자를 짝수로 맞추고 있습니다. 아마 나누는 수가 3이라면 분자를 3의 배수가 되도록 맞추겠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만약 첫 식대로 7분의 3 나누기 2에서 나누기 2를 그대로 분자로 올리면, 이는 번분수 꼴이 됩니다. 그걸 방지하려고 하는 과정일텐데, 도대체 이 과정이 중학교 과정과 어떤 연계성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억지춘향격입니다.
더 나아가, 위와 같이 풀이하는 교과(용 도)서의 방식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연산법칙을 차용한 것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를 다시 나타내면 로 나타낼 수 있는데,
교과(용 도)서의 방식대로 바꾼 은 결국, 의 의미를 가지지 않겠습니까?
4÷7÷2를 4÷2÷7로 바꾸는 것. 연산의 교환법칙 방식이죠. 굳이 이런 방식을 교과(용 도)서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꼭 납득당하고 싶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교과(용 도)서의 방식을 따라갈 마음이 있습니다. 다만 저도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을 아이들에게 교수할 수는 없습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직사각형 모델 개념 설명이 저는 더 깔끔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곱하기 분수의 역수로 안내되는 방법까지. 그렇게만 배워도 문제가 없을텐데... 그래서 저는 그 방법대로 새학년의 배움을 안내할 생각입니다. 교육과정 재구성에 있어서 교사는, 연구와 학습을 통하여
교사 자신의 학습 내용으로 아이들을 배움에 도달하도록
그런데, 위 수학 교과(용 도)서의 학습 내용에 대해서, 사교육 종사자 분들의 반응은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과(용 도)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단 아이들이 할 수 있게 만드는 사교육.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바뀐 것에 혼동을 느끼는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새로운 방법으로 연습시켜야겠다는 목소리가 훨씬 큰 것을 우연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교육 교사들은 조금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로서 현장에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성취기준을 근거로 하여 배움 내용, 배움 방법, 배움의 활용에 대하여 교실과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 스스로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배움이야말로, 교사가 가진 역량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교과(용 도)서가 문제야, 라는 이야기를 한숨결에 하면서도, 문제라고 인식한 것에 대해서 교사가 그냥 넘어가 버린다면이는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의미있는 배움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라면, 어떻게 왜 문제인지 이를 교사의 전문성으로 명확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비판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컨텐츠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사교육 종사자 분들과 달리,
교사는 배움 전문가로서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교과 내 재구성이 교육과정 재구성의 꽃인 이유는, 결국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바로 아이들의 배움이며 이 배움의 가장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교육과정 상의 내용체계이고,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이들로 하여금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사가 가진 컨텐츠가 학생 '배움의 내용'으로 연결되는 것
다음 글에서는 이 교과 내 재구성을 도울 수 있는 백워드 설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교과 내 재구성의 예시를 두드려 볼까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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