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딸 이야기] 5. 중학교 첫 시험 이야기
저희 첫째 아이가 중학교 첫 시험을 치룬지도 두 주가 지났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총괄평가라는 이름으로 국수사과영 평가를 치루었지만, 중학교 시험은 또 그 때와는 다른, 앞으로 인생에서 치룰 많은 시험의 원형이 될 첫 시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OMR 카드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을 마킹하고,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동안 치루는 시험이 끝나면 집으로 향해서 다음 날 시험 준비를 하는 그런.
시험을 앞둔 것을 보면서, 아빠는 시험에 대하여는 일언반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시험인데 뭐 준비할 건 잘 해가고 있니? 라는 말 한 두 마디 정도.
시험 전 주 토요일이 되니 역사 문제집을 펴더군요. 작년에 중학교 입학하면서, 역사를 1학년 때 배우는지 2학년 때 배우는지 확인도 안 하고 자기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스스로 사 들었던 문제집. 돌아오는 월요일 시험 과목은 국어, 수학, 역사인데... 가장 문제가 될만한 과목이 수학인데... 뭐 그것과는 상관없이 편한 과목, 만만한 과목을 펴는 것이 아이들 심리이기도 하겠지요. 앉은 자리에서 얼마나 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가다가 푸는 모습 잠깐 보고는 말았죠.
일요일에는, 저녁 전까지 스마트폰 하다가, 도서관 가서 보고 싶은 책 보다가, 돌아와서 그네 타다가, 저녁 먹고 나서야 수학 교과(용 도)서를 펴더군요. 아직 아이는 중학교 수학 문제집 - 과 여타 다른 과목 문제집들이 역사 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 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집을 따로 사서 풀어보는 방식의 공부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직 실감하고 있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학 문제는 제 앞에 가지고 와서 풀더군요. 모르면 바로 물어봐야 한다면서... 그런데 묻는 수준이... 음... 기초적인 지수법칙, 다항식의 곱셈을 묻는데... -2의 세제곱이 6이냐 8이냐, 마이너스 부호가 붙냐 안 붙냐를 묻는 것을 보고는... 한 시간 반 정도 그렇게 풀더니 피곤하다며 잠을 청하더군요.
묻는 아이에게 '넌 이것도 모르냐'라든지, 한숨을 쉰다든지, 오해를 살만한 눈빛으로 쳐다본다든지 하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애썼다고 격려도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 날, 시험을 끝낸 저녁에 잠시 묻긴 했습니다. 잘 봤어? 응, 역사는 마지막 문제가... 국어는 뭐 이해 안되는 문제는 없... 수학은... 음... 아이의 대답을 통해 대강 유추해보건대, 역사는 마지막 한 문제 서술형이 문제였던 듯 싶고, 국어는 그래도 문제는 다 읽어본 것 같고, 수학은 역시나 어려웠던 느낌을 가지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틀간의 시험을 마친 후, 주말에 아이에게 잠깐 이야기 하나 해 주었습니다.
시험은 다른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학교에서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잘 배우기 위해서는 배우는 당시의 자세와 태도가 얼마나 좋은가도 중요하겠고, 배운 후에 그것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두 가지가 다 어우러 질 때 비로소 잘 배웠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평가를 통해서 이것이 잘 어우러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셈이다. 두 가지를 다 갖추려면, 수업 시간의 바른 자세와 태도가 먼저 중요하겠고, 평가를 앞두고 배운 것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겠다.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배운 것을 잘 유지하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조금 더 일찍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번의 수학 과목처럼, 시험 전날 점검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점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좋은 자세와 태도로 수업 시간에 집중하였다면, 평가를 준비하면서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점검함으로써 배운 것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에는 조금 더 시간을 일찍부터 들여 준비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희 첫째 아이는 특목고 욕심이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솔직히.. 대학교를 가야겠다는 목표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중에 가게 될지 안 가게 될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심은, 가지 않아도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왕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것, 아이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도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학원 등의 사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수업 시간의 좋은 자세와 태도를 통해서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배움을 점검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하나 쯤은 알아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닌다면, 총 스무 번의 시험 중에 한 번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앞으로 열 아홉 번의 공교육 시험이 남아있을텐데, 저는 한 번의 시험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배움을 점검하는 노하우를 쌓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중간고사를 마치면서는 점검의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겼으면 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진짜 고민은, 이런 이야기까지 해 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데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여라도 이런 이야기가 아이에게 쓸데없는 압력을 넣는 일이 되거나,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고민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어느 정도의 조언을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괜시리 노파심을 내는 것처럼 되어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의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 울타리로 아이의 인생 보호막을 둘러주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괜시리 아이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만큼 너무 좁게 울타리를 쳐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를 키워 가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울타리를 쳐 나갈 수 있도록 부모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아주는 것이 더 맞는 것은 아닌가, 생각만 많아집니다.어쨌든.
첫째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넨다는 것이, 아이가 커 갈 수록 조심스럽습니다. 기다려야 할 때 쓸데없이 끼어들고, 아이에게 조언을 건네어야 할 때 망설이다가 그 시기를 놓칠까봐,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그저 아이와의 관계망을 계속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요즘은 그 생각 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두드리고 나니, 첫 시험을 잘 치루는 노-하우, 과목별 시험 대비 요령, 시험 기간 타임-테이블 운영 등 기술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남의 집 아이들에게는 목돈 받아가면서 전문가연하며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전수하였는데... 제 아이에게는 이런 것 하나 없이, 그저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뭐가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