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World] 8. 놀이는 권리이다.
놀이는 권리이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빼앗는 - 혹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 가. 여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왜 여가 시간을 저렇게 멍하니 보내는가. 스마트폰이라도 있으면 조금 덜 심심해하면서 보낼텐데.
학생들은 학교 공간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생각해보면, 다섯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됩니다. 아홉 시 등교, 십사 시 반 하교. 물론 학교마다의 편차가 있겠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학교입니다. 초등학교는 특히 학급 담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 중 6학년의 경우에는 각 40분 씩 여섯 시간의 수업 시간을 보냅니다. 이백 사십 분. 네 시간. 나머지 한 시간 반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 차지합니다.
학기 초에 가만히 살펴보면, 새로운 환경에 아직 낮선 상태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와도 약간의 낮섦을 느끼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전 학년 같은 반 친구의 자리를 찾아가거나, 교실 바깥으로 나가 이전 학년 친구를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교실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불안한 시선과 몸짓을 드러내거나, 혹은 멍하니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생각합니다. 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라도 쥐어준다면 조금은 덜 외롭고 심심할텐데.
놀이는 권리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목적 지향적인 아이들이 제일 먼저 모입니다. 보통 그림 그리는 아이들이나 바깥에 공차러 나가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무리를 짓습니다. 그리고 나서 점차로 자기 살 길(!)을 찾아 아이들은 뭉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에게는 너무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복도에서 뛰면 안 돼, 높은 곳에 올라가도 안 돼, 미세먼지 많으니 나가면 안 돼, 때리면서 놀면 안 돼, 시끄럽게 놀지 마 등등등등.
그렇게 생각하면 본질적으로 학교는 제약의 공간입니다. 보호와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금지당한 채 학교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림 그리기 싫고 공 차기 싫어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걸 즐기게 되고 좋아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학교 놀이의 제약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놀이는 아이들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근래들어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읽어야지 마음 먹고 있으면서도 첫 장을 읽다보면 잠들기 일쑤인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와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은 그 중 가장 고전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BS의 탐사보고서인 [놀이의 반란]은 교육과 육아의 일선에 굉장히 큰 반향을 끼친 책이기도 합니다. 덜 읽은 책들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놀이야말로 인간 삶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라고 이 책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Scole가 영어로 학교를 뜻하는 School과 같은 어원인것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가를 목적으로하여 탄생한 학교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학생에게 주어진 여가 시간인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아이들 본위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누구보다 본질적인 삶을 탐색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아이들에게 그와 같이 하고 있지 못함을 드러내는 단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에게도 여가는 권리입니다. 놀이야말로 어른들에게도 휴식과 재충전의 의미가 되어주는 삶의 본질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더 많은 여가를 누려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실제로 즐겁고 행복하게 놀이에 몰두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놀이는 적극적 권리이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놀아봐, 라고 말하곤 하지만 쭈뼛쭈뼛거리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답답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아마 이렇게 답답해 하실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자유롭게 놀아봐, 스마트폰 가지고 놀아도 좋아'라고 한 마디만 덧붙이면 아이들은 아마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놀 것입니다. 다만 어른들은 그 모습을 마뜩찮게 여기겠지요.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런 놀이를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은, 이 많은 제한과 제약을 두르고, 정말 자유롭게 놀 수 있을까요?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롭게 놀아봐'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보면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아니라, 놀이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소극적 권리로써의 놀이는, 아이들에게 놀이의 시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오롯이 아이들의 시간으로 인정하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극적 권리로써의 놀이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잇거리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아이들이 신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희가 어릴 때는 그저 시간만 있으면 너무 즐겁게 신나게 놀곤 하였습니다.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프로그램을 보면, 그 시절 제가 즐겁고 신나게 놀았던 많은 놀이들을 멤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곤 합니다.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다방구, 와리가리, 삼팔선... 비 오는 놀이터에 가면 맨 흙바닥에 물이 고여있는데 그 물 흘러가게 수로를 파내면서 놀이 삼매경에 빠졌던 기억들도 납니다. 그렇게 즐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꼭 이런 상황입니다. 이건 안되고, 저건 하지 말고, 요건 금지고, 죠건 불가능하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자유롭게 놀아봐. 그럼 선생님, 놀 게 없는데요, 라고 푸념하면,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재미나게 놀 게 있을거니까 신나게 놀아봐,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알아서 해 봐. 특히나 놀이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난감한 요구일 따름입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조리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본다고 타박하지 마십시오. 그 많은 놀이 경험을 가진 어른들도, 쉬는 시간만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마트폰 화면부터 반짝이니까요.
적극적 권리를 아이들이 누리기 위하여
어른들이 먼저 자신의 놀이를 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별 것 없습니다. 어른들이 즐겁게 노는 그것들 중 일부를 아이들과 공유하면 됩니다.
저는 제 놀이인 보드게임을 함께 합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한 무리를 붙들고 앉아서 한 20분 신나게 놀곤 합니다. 점심시간에 일대일 면담을 마치고는 아이들 보드게임하는데 들러 붙어서 함께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제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아이들과 즐거움을 공유합니다.
저는 책읽기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제 책 읽는 즐거움을 아이들과 수업 시간에 공유합니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 학교에서 책 읽은 이야기들을 한다고 학부모님들께서 전하시더군요. 교사가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어, 아이들의 즐거움이 됩니다.
자신의 놀이가 아닌, 누군가의 놀이를 그저 아이들에게 던져주듯 제공하면서, 이거 재미있대, 한 번 이거 하면서 놀아봐, 라고 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은 한 두 번 해 보다가 금새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사는 너무너무너무 바쁩니다.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항상 신경쓸 무언가가 다가오고, 해결할 무언가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빨리 쓸데없는 업무가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놀이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놀이하게 내버려 둔 채, 교사가 다른 무언가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까지도 아이들을 신나고 즐겁게 이끌어가고 뒷받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교사가 먼저 자신의 놀이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겠지요.
학부모님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집에서도 똑같이, 아이들이 부모님과 즐거운 놀이를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때론 부모님들도 항변하곤 합니다. 애는 애고, 나는 나다. 그런데, 만약 자녀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어디 애가 벌써부터!, 라고 일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사생활은 간섭당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의 감춰진 생활은 마치 아이들이 죄라도 지을 것처럼 들여다보고자 하는 엄격함. 단지 경험치만 다를 뿐, 아이들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습니다. 이미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보아왔는데요. 자녀와 함께 놀 수 있는 무언가를 학부모님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을 허하라!
여담 하나를 덧붙이자면, 라면파티를 하자고 하는 아이들에게 저는, 교육과정에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단 한 번도 라면파티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과정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아이들과 교사는 즐거운 시간을 덧쌓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배워 도달해야 할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배움 활동을 하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교사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주렁주렁 달린 무슨무슨 안전교육, 무슨무슨 이해 교육, 무슨무슨 특화 교육 등등 해서 잔뜩 배정해두고, 교사가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계획하여 실행할 수 있는 교육 활동 시간으로 사용할 여유는 거의 부여받고 있지 못합니다.
안전교육, 이해교육, 특화교육,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특별한 활동이 정말 필요하다면, 우선 그런 교육을 교과 속에 포함시켜 배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사 역량대로 교사가 계획하여 아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는 시간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교사가 이런 시간들을 아이들의 놀이와 여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