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온작품읽기] 우주호텔
종이 할머니는 결심했어. 쉽게 허리를 구부리지 않기로 말이야. 쉽게 허리를 구부리면 다시는 저 우주 호텔을 보지 못할 것 같았거든.
6학년 담임 생활을 7년째 하면서 벌써 세 번째 교육과정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과용 도서는 교수-학습 과정을 위한 다양한 제재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주호텔]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우주호텔]에서 메이는, 정말로 뽀뽀나를 만나고, 우주호텔을 찾았을까요? 메이의 스케치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이 글은 환상 동화로 읽히거나 아니면 소녀의 상상이 기반이 된 일상 동화로 읽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글은, 환상으로 바라볼 때 더 의미있습니다.
환상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이세계(異世界, the Other World)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환상의 배경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확연하게 벗어난 장소입니다. 일탈이 이 세계(This World)를 비껴가는 것이기에 일상을 전제한다면, 환상은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전혀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우리의 삶을 터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상의 매력은, 온전한 이상(理想)을 일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메이의 스케치북 속 이야기는 이상 속의 일상입니다. 소녀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계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 그래서 아마도 (교과용 도서에서는 편집하였지만) 메이의 이름은 만화 주인공(분명히 [이웃집 토토로]임에 분명한)의 이름일 것입니다. [이웃집 토토로] 이야기의 한 가운데, 사츠키와 메이가 심은 도토리들을 토토로들이 자라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 사츠키와 메이는 도토리가 싹난 것을 발견하고는
꿈꿨었는데, 꿈이 아니었어
라며 노래하고 춤 춥니다. 토토로와 사츠키/메이 자매가 꿈과 현실의 순간을 공유하는 것. [우주호텔]의 시·공간적 배경이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것도 그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메이의 스케치북이 자신의 일상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이 할머니의 지향은 상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땅으로 파고 들어갈 듯이 구부러진 허리를 꼿꼿하게 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주호텔을, 잠시 방기하였던 꿈을 다시 꾸는 종이 할머니의 모습은 실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금 이 땅은 다음 장소를 목표할 수 있는 또 다른 '우주호텔'이 될 수 있습니다.
늙어버린다는 것
매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인은,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향한 목표와 도전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런 상태라는 것. 물리적인 나이로는 더할 나위 없는 청년일지라도, 그가 끊임없는 삶의 도전을 목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늙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물리적으로는 오랜 세월 세상을 벗하여 살아온 삶이라도, 다시 도전하고 새롭게 목표하여 또 다시 달음박질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청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은, 푸르름을 꽃피우고 이파리 돋우는 삶이며, 비로소 열매맺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종이 할머니가 땅을 바라보는 삶은 노인의 삶이었습니다. 노인이라 노인의 삶이 아닌, 더 이상 꿈 꿀 수 없기에 그저 고이고 머무는 삶. 그런데 종이 할머니가 허리를 구푸린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하였을 때, 자신을 먹이고 살리는 땅만을 바라보는 삶을 벗어버리기로 꿈꾸었을 때, 이제 종이 할머니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닌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꽃피우고 이파리 돋우며 열매맺는 삶의 모습은, 관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혹 난 할머니와 정다움을 나누는 삶.
삶의 목표와 도전은 거창한 것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새로운 관계 맺음을 통해서 변화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전이자 목표입니다. 인간이, 관계 맺음을 통한 자기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시작할 때, 고여 정체되기 시작함을 이미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삶은 종이 할머니가 땅에 종속되어버린 삶이나 진배 없습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삶은, 변화를 도전하고 목표하는 삶입니다.
[우주호텔]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인 [6국02-02] 글의 구조를 고려하여 글 전체의 내용을 요약한다, 를 달성하기 적절한 제재글이기도 합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또는 '발단-전개-절정-(위기)-결말'의 4단 구조를 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글의 중요한 사건을 간추리는 활동에 연이어 요약하는 활동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시한 질문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시오, 였습니다. 그에 대한 아이들의 발표를 (문맥만 다듬어) 그저 적었을 뿐인데, 그저 연결하면 내용 요약이 되었으며, 요약을 네 부분으로 나누면 글의 구조를 이루었습니다.
2시간의 수업을, 첫 시간은 글 읽기로, 두 번째 시간은 함께 이야기 나누기로 진행하였습니다. 질문은
1) 글을 읽은 느낌과 감상 이야기하기
2) 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 이야기하기 - 글의 구조를 고려한 요약
3) '하늘을 보는 삶이란 무엇일까?'
세 가지 였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덧. 교과용 도서에서는 원작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원작은 문장마다 줄바꿈을 함으로써 시적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였지만, 교과용 도서는 산문의 형식으로 붙였지요. 느낌이 다르긴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었습니다. 원작에서는 메이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지만, 교과용 도서에서는 그 부분을 설명하는 부분이 빠졌지요. 그것 때문에 교과용 도서가 환상성을 조금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해석의 영역인지라, 그 부분이 없어도 충분히 독자의 몫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원작과 교과용 도서 상의 작품을 다 읽어본 바로는,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둘 다 그 나름대로 독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그 차이를 느끼기는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