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린이의 재미는 다르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13. 어린이의 재미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다.
2014년 초, 경인교대에서 영재 기초 연수를 수강할 때의 일입니다. 박교식 교수님께서 렌쥴리의 영재성 특성 중 '과제 집착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당시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콜라츠 추측' 문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콜라츠 추측은, 임의의 자연수 하나를 골랐을 때,
1) 이 수가 홀수이면, 수에 3을 곱한 후 1을 더하고,
2) 이 수가 짝수이면, 수를 2로 나눈 후,
이 때 나오는 수에 대해 다시,
1) 이 수가 홀수이면, 수에 3을 곱한 후 1을 더하고,
2) 이 수가 짝수이면, 수를 2로 나누는 식으로,
계속 조작해 나가면, 고른 수가 무엇이든지간에 조작되는 수는 결국 1로 향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5를 골랐다고 합시다. 5는 홀수이므로, 3을 곱한 후 1을 더하여 16으로 조작됩니다. 16은 짝수이므로 2로 나누어 8로 조작되고, 다시 짝수 8은 2로 나누어 4로, 짝수 4는 다시 2로 나누어 2로, 결국 짝수 2는 2로 나누어 1로 조작됩니다.
콜라츠는 5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수에 대해, 위 조작을 시행하면 항상 1로 향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수학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이러한 추측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수학자들은 왜 이런 추측들을 하는 것일까요. 수의 추상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며, 수가 가진 규칙성을 엄밀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실 수학 배움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간의 여유가 허락될 때 어린이들과 콜라츠 추측에 대한 활동을 해 보곤 합니다. 콜라츠라는 사람의 추측에 대해 설명한 후, 묻습니다. 콜라츠의 추측대로 조작을 수행하였을 때, 진짜 하나의 자연수도 빼놓지 않고 1로 향할까?
그리고 수를 하나 제시합니다. 27이라는 수는 과연 1로 향할까, 아니면 추측과는 다르게 1로 향하지 않을까?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는데, 정말 한 어린이도 빼놓지 않고 집중하여 콜라츠 추측이 27이라는 수에 대해서도 성립하는지 확인하고자 애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
대부분의 어린이가 끝까지 집중하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1) 영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선행학습을 통해 중등 수준의 수학을 배우는 학생 중에, 한 10분 정도 조작한 후에, '수가 계속 커지는 규칙성이 발견되는데 - 이 때 규칙성은 그저 수가 커진다, 라는 것 말고는 없는 - 27이라는 수는 무한대로 커지죠?'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섣불리 주워들은 수학적 용어를 섣부르게 쓰고는 이후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2) 교실 수학에서 상위 수준의 성취수준을 드러내는 학생 중에, 약간의 시간 동안 조작한 후 '선생님... 답이 없죠?'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이미 수는 1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 후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답해줘 봤자 이후로 자신의 생각과 논리에 갇혀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3) 영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 중에,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 몇 단계에서 1이 나오죠!', '그거보다 하나 큰 단계!', '둘 큰 단계!', '셋 큰 단계!', '에이, 이렇게 하다보면 답이 나오겠지'라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렌쥴리의 영재성 정의에 따르면, 전혀 과제집착력은 없는 아이인 셈이죠.
오히려 성취수준이 높은 학생들 중에, 조작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고, 흔히 말하는 평범한 학생들은 조작에 집중하며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애씁니다.
제가 이 활동을 한 후 가장 놀랐던 부분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과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처음에 콜라츠 추측을 활용했을 때는 방과후학교 수학심화반 수업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재학교 강사로 강의할 때였습니다. 콜라츠 추측에 대한 활동이 일반적인 교실에서는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죠.
그러다가, 몇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실에서 콜라츠 추측을 안내하고 활동하였을 때, 모든 어린이들이 수의 조작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는 제 판단이 섣불렀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몰입하고, 집중하며, 수를 정성껏 조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모두가.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몰입이 깨어지고 집중이 흩어지며 조작은 성글어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많이 배운 학생, 영리한 학생, 성취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인 학생에게서 그런 모습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중간중간 드러나는 소소한 실수에 아쉬워하고 안타까와하면서 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며 주어진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너무 섣부르게, 학생들은 이런 과업을 싫어하거나, 꺼려하거나, 어려워서 피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흥미를 보일 것이라고, 수학적 의미는 옅은 배움 활동을 가지고 오는 것도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활동 중에서, 흥미있어 보이고 재미나 보이는 수학 활동들을 몇 본 경험이 있습니다. 댓글에는, 재미있겠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라고 쓰여져 있지만, 얼핏 보아도 수학 본연의 재미와 흥미는 옅고, 수학을 둘러싼 껍데기의 재미와 흥미만 강조한 활동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통찰의 순간에, 희열을 느끼고 뿌듯해하며 평생의 즐거움의 계기를 삼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가 생각납니다. 다니던 학원에서, 여느 학원들처럼 선생님이 한 문제 풀어준 후, 이번 문제는 너희들이 풀어봐라, 라고 던져준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엑스가 0보다 클 때, 엑스 플러스 엑스 분의 1 이 3일 때, 루트 엑스 플러스 루트 엑스 분의 1의 값을 구하라, 는 문제였습니다. 끙끙거리고 있는데 한 5분쯤 지나니 학원 선생님이 풀어주시겠다고 하고, 저희들은 우리가 풀 때까지 풀어보겠다고 하면서 문제에 매달렸더랬습니다. 결국 30분 정도의 시간을 더 들여서도 풀지 못한 채 학원 수업이 끝이 났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연습장에 끄적끄적거리면서 고민하는데, 불현듯, 아, 이렇게 풀면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풀어냈습니다.
제가 고민한 저 문제는, 지금은 뭐 기본적으로 푸는 인수분해 문제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30년 쯤 지나면 굉장히 새롭던 문제가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저는 저 문제가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틀 뒤, 학원에 갔을 때, 집에서까지 고민해서 문제를 풀어온 것은 저 한 명 뿐이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통찰의 순간이, 수학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것이죠.
수학은 재미없다, 는 편견을 교사가 먼저 깰 필요가 있습니다. 수학 속에서 나오는 재미와 흥미를 어린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수학 속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재미와 흥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수학의 겉을 재미나고 흥미롭게 치장하면, 물론 어린이들은 좋아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어린이들은 교사가 열정으로 제공해주는 모든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교사는 열정을 갖고 활동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활동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그러면 교사도, 학생도, 의미있었다 여기기 쉽지만, 본질은 빠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맛과 향입니다.
수학은 재미있습니다. 수학 본연의 맛이 그렇습니다. 그걸 교실에서 어린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배움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