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초등교사의 여름방학 전 이야기
올해는 1학기 종료일이 -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 9월 2일이 되었습니다. 학기 시작일이 4월 16일이었으니... 여름방학과 함께 1학기 종료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셈이죠. 학생들은 방학에 들어갔지만, 1학기는 아직 남아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짧은 교직이지만, 올해만큼 다이나믹한 경험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2015년에 버금가는. 제 2015년도 꽤나 다이나믹 했었습니다. 학년 시작하면서 분반 조건이 충족되는 바람에, 3월 17일자로 새롭게 반편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메르스가 있어 중간에 휴업을 하였지요. 그래서 그 때도 1학기 종료가 여름방학과 함께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훨씬 다이나믹하네요.
당연히, 온라인 등교 상황이 가장 놀라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 나오지 못하는데, 등교가 이루어지는 사상 초유의 상황. 그마저도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한 교사들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학년 초에는 모두가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학기 만에, 교사들은 자기에게 적절한 온라인 등교 방법을 하나씩은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작년에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배움 형태를 그나마 시도한 경험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배움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의 양적 성장은 이루어졌지만, 온라인 등교가 보여주는 질적 문제점의 부각은 새로운 고민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온라인 클래스에서의 배움은 시스템의 불편함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모양새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클래스의 배움이 학생 개개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였지만, 학생의 생각 하나하나에 적절하게 피드백하고 이를 통해 학생의 질적 성장을 얻는 시스템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피드백을 주고받는 교사-학생 간의 피로도가 쌓이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실 면대면 상황에서 즉시의 피드백을 통해 학생 성장을 실시간으로 이룰 수 있는데, 랜선 대면 상황에서는 이것이 꽤나 불편하게 이루어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사교육 시장에서도 온라인을 활용한 수업이 일방향의 전달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Zoom 등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실제 배움을 위한 교사-학생 간 유용한 교류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사 일방향의 전달 수업 이상은 불가능한 Zoom 수업으로 보이는데도, 이의 효과성이 부각되는 것을 보면서, 이건 과장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거면 그냥 교사가 잘 구성한 강의 동영상 하나를 올려서 학생이 보게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평가 도구를 개발하는게 훨씬 낫지 않은가. 실시한 쌍방향 수업이 효과를 거두려면, 유의미한 쌍방향 - 교사-학생 간 의미있는 배움의 의사소통이 주체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 배움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이야기하면 한 시간 수업이 끝나는 그런 수업이라면, 이는 학생 배움이 의미있게 일어났다고 할 수 없겠지요.
다른 한 편, 온라인 등교는 학생의 질적 편차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거의 한 학기를 마쳐가면서, 학생들의 배움 모습은 다음 네 가지 중 하나의 모습을 띄었습니다.
1) 부모가 타이트하게 관리하여 양질의 배움을 이루어가는 학생
2) 스스로의 성장을 조금씩 이루어가는 학생
3) 온라인 배움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학생
4) 스스로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배우지 않는 학생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2번 학생일 것입니다. 잘 구성된 온라인 배움이, 학생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케이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번과 4번의 경우를 더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4번 케이스의 경우, 맞벌이 가정에서 주로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부모가 집에 없는 틈에, 학생들은 온라인 배움을 위한 디바이스를 이용하여 배움 이외의 활동 - 게임, SNS 활동 등 - 에 몰두하였고, 그래서 배움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부모는 담임 교사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상해하는 그런 일을 적지 않게 경험한 한 학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방학 전에, 아이 몇을 학교에 나오도록 하여 온라인 배움을 검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몇몇 학부모는 자녀 관리를 위하여 학원과 사교육의 시스템에 들여보내는 일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과제물이 제때 제출되지 않아 통화해보면, 학원 가느라고 온라인 배움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학원은 학교의 빈틈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등원 시간을 앞당겨 운영하고, 온라인 등교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버린 셈이죠.
교사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배움이 실제적인 학생 성장을 이뤄낼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학교 배움에 전념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쓸려다니느라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대처해야하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교사는 학생 주도적인 배움을 위한 교육과정 설계·운영 전문가로써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여지도 없이, 그저 학생들의 상황을 관리하는 매니저로써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위 1번 케이스도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관리 아래 자신의 배움을 이어가는 학생의 경우, 배움에 수동적인 자세로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코칭이 큰 계기가 되어 자기 주도적 성장과 발전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부모가 보내야 할 것은 정서적 지지일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 주도적인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필요할 것입니다.
학급살이는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놀이로 함께 즐기던 보드게임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와중에, 과학 실험용 실리콘 장갑을 낀 채로 또는 비대면 보드게임 방식으로 네 가지 보드게임을 즐겨 보기도 했지만, 예년의 스물 몇 가지 씩 보드게임하면서 놀던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만큼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였습니다.
체육이나 음악 등의 예능 활동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체육 수업은 예비교사 실습 국면에서 한 시간 해 보기도 하였지만, 괜한 걱정만 늘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은 가림판을 사이에 두고, 한 칸 씩 떨어져 앉은 채 거리감 가득한 소통과 대화를 나누었고, 쉬는 시간에도 함께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거리감만 확인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담임 교사를 거치지 않을 수 없게 구조화되어, 사회화를 위한 장소로써의 교실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현장체험학습은 취소되었고, 졸업앨범은 간신히 업체 선정을 하였지만 예년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특기적성 활동은, 온라인 등교 상황과 함께 모두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업무량도 줄어든 것이 위안이라면 하나의 위안이 될 듯 합니다.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교실에서의 디바이스를 활용한 디지털 배움의 필요성이 증대하여, 지금까지 정보보안의 명목으로 교실 디지털 환경을 가로막던 규정들이 대폭 간소화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안전교육 또한,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대폭 축소되어 교육과정 운영의 숨통이 트였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그 효용성이 의심되던 이런저런 제도와 절차도 유예되거나 한시적으로 미실시하게 되어 교육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그동안 교육당국이 얼마나 무사안일하게 대처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법령과 규정을 이렇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저 전례를 따르느라 규제가 규제인줄도 모르고 그저 교육현장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가로막고 강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시적 유예 딱지가 붙은 이런저런 절차와 제도에 대해, 이번 온라인 등교 상황을 계기로 한 번 더 돌아보아 교실 현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필요한 업무는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교실 배움을 실제적으로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파악하게 되면서, 교실 현장의 필수적 업무와 부차적 업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재를 토대로 과거의 것을 정리하고 간추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학교 현장은, 온라인 등교를 통해 교실에서 학생들과 면대면하여 배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직까지도 유용한 배움의 시스템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배움은, 획기적인 도구와 패러다임이 나오지 않는 한, 아직 배움의 보조적 기능에 국한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기능하지도 못하는) 에듀테크를 통한 (교실 현장의 상황을 무시한) 미래교육의 (속 빈 강정 같은) 대비 같은 구호 말고, 면대면 배움 상황을 더 가다듬과 효과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합니다.
교실 현장과 유리된 (소위) 교육 전문가들 말고, 이번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자기 교실, 자기 학생들을 지키면서 애쓰고 노력한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배움의 열정을 가득 채울 교실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여름방학은, 외부 연수도 하나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올 1학기는 정말, 몸과 마음을 모두 소진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현장에서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방학은, 그저 쉬면서 재충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난 한 학기를 되돌아보며, 오롯이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국면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학을 보내 볼 요량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