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학 전문성에 대한 착각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9. 수학 전문성에 대한 착각
지난 글에서, 초등학교 교사에게 수학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두드린 바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가 생각하는 ‘수학 전문성’이 무엇인지 덧붙일 필요가 있지만, 이는 차후로 미뤄두기로 하고, 우선은 우리가 ‘수학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실제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온라인 등교가 계속되면서, 일각에서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강화되는 모양새입니다. 온라인 클래스에 업로드한 EBS나 e학습터의 콘텐츠를 보며 배우는 학생들을 보며, 좋은 강사 한 두 명에게 강의를 맡기고 나머지 교사는 학생 관리에 전념하는 방식으로 배움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생의 배움 관리라면 AI가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보며, 교실 바깥의 교실 현장에 대한 오해가 보통 큰 것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온라인 강의가 교실 배움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십 수 년째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강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공무원 선발 준비 모습을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노량진을 아지트삼아 합격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현장 강의의 위력이 그만큼 큼을 의미합니다. 사법고시는 신림동에서, 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었습니다. 사교육 메카로 대치동이니, 목동이니, 노원역이니, 평촌 학원가니 하면서 거점 중심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인터넷 강의가 가진 한계가 그만큼 뚜렷하다는 것이며, 이번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공감이 넓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배움은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점점 학생의 배움에서 정의적 요소가 그 의미를 더하여가고 있습니다. 교실의 배움이, 학생의 정의적 요소를 자극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북돋게 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교실의 수학은 강의력을 기본으로 해야하지만, 특히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강의력’보다’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은 특히 학부모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고 그렇게 과외를 하면서 문제집을 몇 권이나 푸는데도 자녀의 수학 역량이 늘지 않는다면, 수학 역량을 문제 풀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그 생각을 바꾸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학원이 한 학기 과정에서 적어도 두 권, 많으면 심화 문제집까지 네 권을 풀리는데도, 학생들의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정의적 영역의 문제를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마저도 강의력에 기대어 학생을 능수능란하게 가르치는 것이 전문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교육 바운더리에서 주로 통용되는 결과 지향적인 관점입니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같은 관점으로 교실 배움을 이끌어간다면, 교실 안에서도 사교육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을 몇몇 잘하는 아이들의 들러리로 만드는 결과 밖에는 거둘 수 없습니다. 그저 교사가 교단에서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는 ‘쇼’를 하는 것일 뿐, 학생들은 배우지 못하고 교실 바깥에서 교실과 같은 실패감과 어려움을 맛보게 될 뿐입니다.
현재의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 교사들은 인터넷 강의가 가진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온-오프라인의 연계를 통하여 어떻게든 온라인 등교 상황에서의 문제 - 예컨대, 교실 외적 요소로 발생하는 학력의 편차 - 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강의력 중심으로 교실 배움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강의력은 교사 전문성의 한 요소일 뿐, 이를 전부로 여기면서 학생을 만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한참 스토리텔링 열풍이 분 적이 있습니다. MiC(Mathematics in Context)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듯 한 이 흐름은, 2009 개정 교육과정 수학 교과용 도서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단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반적인 이야기의 맥락을 단원 첫 시간에 함께 이야기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도록 하려는 의도는 그러나, 현장에서 굉장히 큰 비판에 직면하였습니다.
2009 개정 수학과 6학년 1학기 1단원 각기둥과 각뿔 첫 시간이 생각납니다. 학생이 하굣길에 제과점을 들렀는데, 제과점의 케잌이 삼각기둥, 사각기둥, 삼각뿔, 사각뿔... 모양인 것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스토리... 스토리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는 것도 아니요, 수학적인 의미를 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다루는 수학 영역 중에는 스토리텔링을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는 요소들이 제법 있지만, 고학년의 배움 요소 중에는 스토리텔링을 갖다 붙이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배우고 알게 된 것을 교실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어린이들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교실 배움을, 또 교실 생활을 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니 그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새로운 것이 항상 최고도 아니요, 간혹 없느니만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 잔뜩 소개되는 신기술들이 지금 딱 그런 모양새입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새로 등장해 여러 교사들이 이를 소유하게 되면서, 자신의 디바이스를 교실에서도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수학적 요소 기반의 앱들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창의과학재단에서는 '알지오매쓰'라는 웹도구를 만들어 현장에 소개하고 있는 상황인데, 실제 현장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상황입니다. 도구의 유용함이 문제가 아니라, 도구 접근성의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수학을 위해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인 종이와 연필 - 칠판과 분필 - 이 있는데, 굳이 디바이스를 구동할 필요가 무엇이겠느냔 의미겠지요. 종이와 연필보다 더 간편하고 손쉬운 접근성을 가진 앱이 나오지 않는 이상, (특히 초등)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여지는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이론이든, 새로운 도구든, 누군가 자꾸 현장에서 시도하는데, 과연 이것들이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 뿐 아니라, 성취기준 상의 일정 성취수준 도달을 도울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에 부딪힙니다.
한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하여 수학적 상황을 스토리텔링으로 드러내는 사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대체로 수학적 상황이 녹아있는 사례가 아닌, 그저 스토리에 수학 연산이 얹혀진 형태가 많았습니다. 즉, 스토리 없이 문제만 풀려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 뭐, 주인공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퀘스트로 수학 문제를 풀게 되고, 푼 이후에는 다음 스토리를 만나게 되는 그런 형태인 것이죠.
저는 이렇게 수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런 수업 형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어린이들은 아마,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 수학 배움의 처음이자 끝인 아이들일 것입니다. 선수학습 과정을 확인하기도 벅찬, 짧은 수학 시간인데, 수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스토리 요소로 시간을 보내는게 과연 교실 배움 뿐인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미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활동이 아닌, 성취기준에서의 배움 요소를 만나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의 수학 배움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소개하고, 이것이 큰 효과를 거두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종이와 연필이 수학적 사고를 보조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로써 기능한지도 벌써 몇 백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수학을 위해서, 초중등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로는 알고리즘과 계산기 이상으로 유용한 도구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이들이 전문가로 인정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문가는 새로운 것이든, 전통적인 것이든, 어떤 것을 사용하든지 간에 교실에서 우리 학생들이 배우도록 만드는 이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