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11. 피드백
피드백
처음 교직에 들어설 때에는 학생 과제에 대한 뚜렷한 목표 없이 관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서기록장, 주제일기장, 수업노트, 필기 등등등.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해오던 것들이었고, 그것에 대한 뚜렷한 문제인식을 가져본 경험도 없어, 그저 교사가 된 후로 이러한 과제를 별 생각없이 내주게 되었습니다.
제 교직 생활에 이런 경험들이 많습니다. 별 생각없이 제가 경험했던 것이라서, 아이들에게도 시켜보고 해보고 했는데, 의외로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 것들. 첫 해, 주제일기를 쓸 때 그랬습니다. 9월부터 담임을 맡게 된 아이들에게 별 생각없이 주제일기를 시작하였는데, 여자 어린이 하나가 주제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쓰고는, 자꾸 제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라면서.
그 때, 그 아이들은 나름대로 힘듦을 안고 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전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문제. 담임 선생님의 탓도 아니요, 아이들의 탓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그러나 묘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어 이를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린 시점에서, 제가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은 그 분대로 도와드리고 - 제가 발령받은 자리인 과학 전담 교사 자리로 가셨지요 -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데... 실은 어떻게 해야할지 막연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경험도 일천하였으니 돌이켜보면 좌충우돌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성적으로 내 준 과제물에서, 학생과의 관계에 대한 단초를 얻었습니다. 아이들과 가지는 끊임없는 의사소통 방식의 하나로써 과제의 역할에 대한 것 말입니다.
그 아이가 묻는 것에 대해서 저도 꽤나 많이 생각해보고 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과제가 만약 일방향적이라면 아이들은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도장 하나 찍어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일방향적인 과제이겠지요.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말을 거는데, 선생님은 그저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알았다고 대꾸하는 것.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과 생각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른채 그저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격이 될 것입니다. 별로 좋아할 것이 없겠지요.
혹은 아이들의 과제에 대한 평가라면? 수학 단원평가를 보았다고 치면, 보통의 교실에서는 채점하고 돌려줌으로써 하나의 맥락을 종결합니다. 조금 더 친절한 교사라면, 평가 후 문제풀이 과정 정도를 제공하겠지요. 다른 과목이라면, 학습지에 도장 찍어 돌려주거나, 참 잘 했구나, 누구누구의 생각이 자랑스러워 보이는구나, 멋진 생각 잃지 말고 살아가렴, 조금 더 힘내보자 등등등의 문구와 함께 되돌려 주겠지요. 이 때, 평가는 수동적인 의사소통 방식이자, 지속성 없는 의사소통의 종결로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물론, 교사가 아이들을 평가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교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기관이며, 어쨌든 현재의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사회화를 이루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평가로 하나의 맥락을 종료해 버리는 것은,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의 교육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교사와 학생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은 아이들의 정체감을 높이는 기제가 될 것이며, 한편으로는 아이들로 하여금 교사의 생각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교사에 대한 능동적인 수용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내의 외투를 벗기려고 시도하는 옛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추위도, 바람도, 눈보라도 사내의 외투를 벗길 수는 없었지만, 따사로운 햇빛이 그 사나이로 하여금 외투를 벗어던질 수 있게 하였지요. 교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햇빛은, 수평적 의사소통입니다.
따라서 과제물이든 평가물이든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에 대한 피드백은, 학생과 생각을 나누는 방법 중 또다른 하나입니다. 저는, 아이가 묻는 것에 대해서 올바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하기 보다는, 그저 제가 가진 생각을 기록하여 주었습니다. 제가 고민하여 본 것이었다면 그 고민의 흔적과 함께, 고민해보지 못한 것이라면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조금은 고민해보게 된 작은 이야기라도. 다만 올바른 것을 이야기하려 하진 않았지만, 올바르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글보다 제가 아이들의 과제에 남긴 글이 더 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아이들은, 그러한 교사의 담론에 대해서 또 나름대로 평가할 기회를 가지겠지요.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보다, 옳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 생각에는 아이들과 교사가 맺을 수 있는 인간-대-인간으로서의 관계 형성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해야하는 교육이 이제는 다른 방향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시대가 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의 경험이 있는 어른들이야 그럭저럭 매체 적응성을 높여가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프-라인 관계의 어려움을 곧잘 표출하는 듯 싶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 비생산적인 활동까지 -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적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들의 관계지향성을 충족시킬만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럴 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몇 되지 않는 어른으로서 - 어떨 때는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 만나는 - 아이들의 관계지향성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줄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일과 시간에 이루어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면담'이라고 할 수 있다면, 학교 테두리 바깥까지 아이들과이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는 기제가 바로 과제에 대한 피드백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 스스로도, 아이들이 해 온 과제를 정말 좋은 과제가 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아이들의 과제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이들과의 일대일로의 소통 창구를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제출한 과제와 평가에 대해 다시 되돌려 받을 목적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