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7. 벗이 되어줄 수 있는 선생님
올해 초, 막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소문이 흉흉하게 들렸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확진자는 열 명 남짓 되던 때, 마침 스무 살이 된 졸업생들 여섯 명이 집 앞에까지 찾아왔습니다. 이 친구들은 제가 학교 옮기기 전에는 매년 두어 번씩 무리지어 찾아와서 같이 교실에서 짜장면도 시켜먹고, 추운 한겨울날 롯데월드 어드벤쳐도 가고, 첫 아르바이트비 받은 것으로 지네 부모님 선물 사 드린다고 선생님 차를 셔틀버스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오늘은 자기들이 쏘겠다며 식당에 데리고 가서는 엔분에 일로 계산해달라며 각자 개별 카드를 내밀어 담임과 직원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녀석들입니다. 그러다가 고 3을 마치고, 결국 저희 집 앞에까지 와서 같이 밥먹고, 저희 집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가기 전에 선생님 이제 제발 그 츄리닝은 그만 입으시라며 바람막이 잠바 하나를 놓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항상 어려워하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로 지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적 자극도, 여러가지 재미난 활동과 체험도, 좋은 친구와의 만남과 생활도 필요하겠지만, 멘토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멘토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부모와, 교사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시거나, 혹은 제한적으로만 생각하십니다. 올 한 해, 나는 교사로서 우리 반 어린이들의 좋은 멘토가 되어 주어야겠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이 받아야 할 관계 속에서의 자극은, 많으면 많을 수록,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온,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의 자극.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할 수 있는 자극 중에서, 많이 간과하시는 부분이 바로, 담임 교사로부터의 자극입니다.
담임 교사는, 아이들과 1년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어른이자, 교육자입니다. 이런저런 아이들을 겪어본 경험도 많은데다가, 무엇보다 교육자라고 하는데에서 비롯되는 소명감이 있습니다. 내게 맡겨진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 좋은 디딤돌 역할을 해 주어야겠다는. 그리고, 자라가는 아이들에 대한 훌륭한 멘토 역할은, 아이와 함께 1년간 생활하면서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아온, 담임 교사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이전에 맡았던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책무를 주는 것을 고려해 보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사의 업무가 늘어난다구요? 저는 아이들이 발달과 성장에 기여하는 업무는, 교사의 업무가 아니라 교사의 소명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죠.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 학교에서의 일은 점차로 줄여나가고, 교사의 책무성이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아이들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제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함께 놀 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 보내는 것이 제 스스로도 너무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의무감이 아니라, 제게도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은 더 자라가야하는 어린 이 아이들이, 제게 물을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미 충분히 보호받고 있고, 대략의 가야할 길이 뻔한 아이들인데, 제게 뭔가 물어볼게 있을까 싶습니다. 그저 지금은, 옆에서 자신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는 것에 만족하겠지요. 저를 찾아온 아이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묻는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교에는 언제까지 있으세요? 다음 학교는 우리 찾아가기 편하게 가까운 데로 가세요.
제가 아이들과 가져야 할 관계망은,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관계일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같이 놀고,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고, 보드게임을 하는 선생님이지만, 아마 이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해나가는 시기에, 혹은 사회의 거친 풍파에 던져진 생활을 시작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이야기나누고 함께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갈 길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럴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책이 어마어마하게 팔리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라도 해 주는 사람도 주변에 없으니까. 그런 말이라도 듣고 싶으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교사들이, 좋은 멘토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아이들이 아프다고 이야기 해 줄 때, 그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면서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디딤돌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제 스스로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재미있구요. 무언가 줘서 - 먹을 것을 사서 먹이든지, 인생의 등불이 되어주는 좋은 조언을 하나 던져주던지, 이런저런 인생 경험을 늘어놓든지 해서 - 돌려보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오는 아이들을 좋아하면서 맞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면 되는 것이겠고, 그러다가 자신이 가진 문제를 상의하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여 가면 - 대화하면 - 될 일입니다. 어찌보면 부모가 해야할 일이구요. 보통은 부모가 그런 일을 해 주시면, 아이들이 다른 곳에 가서 조언을 구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인생의 가장 좋은 멘토가 되어주어야 할, 부모의 대체제이자 보완재일 뿐입니다. 그것이 필요할 때가 있어서, 그것을 교사가 해 줄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요.
맞습니다. 아이들의 어려움과 고민이 나누어져야 할 곳은 바로 가정의 울타리이며, 가족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이 과연 가정에서 쉽게 나누어지고 있을까요?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며, 아이에게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쉽게 아이의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지는 않나요? 아이의 공감과 수용의 여부는 도외시한 채.
실은 교사도 그렇습니다. 아니,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은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뿐이죠. 어른도 그렇잖습니까? 오늘은 스마트폰 좀 그만 들여다보고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지, 하지만 어른은 그렇게 생각하는 바를 잘 실천합니까? 그래서 옆에서 누가 '아, 좀! 그만 들여다보고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라고!'라고 말하면, '아! 그래! 맞다. 스마트폰을 끄고 내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야지'라고 하십니까, 아니면 '너나 잘해'라고 하십니까. 어찌보면 꼰대 노릇 하는 것이죠. 나는 못하는데,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그렇게 해야한다, 라고 말입니다.
꼰대라는 단어를 쓰게 되어서, 실은 걱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참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고, 아이들을 늘 재미있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말입니다. 간혹 어르신들을 뵐 때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 어르신들은 자신이 참 센스있다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잘 헤아려서 함께 놀고 즐길 줄 안다고 생각하시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르신들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고나서, 젊은 사람들은 힘들어 할 때가 많습니다. 저게 뭔 말씀이시지 싶은. 그러면 서로 언밸런스가 납니다. 어르신은 자기만족이 커지고, 젊은 사람들은 어르신과의 괴리감이 조금씩 증폭되고. 그러다가 빵 터지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보이지 않는 투명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잘 알아듣지도 못하게 말하면서, 나 혼자 신나서 나는 잘 하고 있다, 나는 훌륭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같은 착각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결국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비록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의 생각이 항상 내 생각과 우열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어떤 병렬적인 것이다, 라고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물음은 의도가 없어야하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사례는 내심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려 드는 태도일테니까요. 아이들이 제게 하듯이, 저도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됩니다. 한 번 받아들인 것에 변덕부리지 않으면 되구요. 제가 한 말을 스스로 지키면 됩니다. 부모로써, 교사로써 말이죠.
어렵죠. 그러나, 어렵지만 그렇게 살아볼까 싶어 나름대로 잘 되지는 않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멘토가 필요한 우리 아이들에게, 멘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