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왜 수학인가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完]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18. 왜 수학인가
수학이 우리나라 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수포자'라는 용어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알기에는 너무 일러 보이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저는 수학을 포기했어요'라고 말하게 하는 마법의 과목. 흥미와 관심사를 불문한 채 문·이과 선택의 기준이 되는 과목. 그렇기에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모든 교육 관계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과목. 따져보면, 30년 전 교재를 가져다 비교해도 그 세부적인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한결같은 과목. 그래서 30년 전의 교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해도 위화감이 없는 과목.
그리고 여전히, 학생들로 하여금 '무진장 느리고 버그투성이인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 되도록 훈련시키는([틀리지 않는 법], p78)' 과목.
어찌보면 우리는 계속 수포자를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수학을 배우는지도 모른 채.
교사가, 이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학교 현장에서의 수학 교육은 지속적으로 수포자를 확대 재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왜 수학일까요?
수학을 잘해야 대학에 가기 때문... 같은 답이라면, 아주 곤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적지향적인 답이 아닌 수단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이러한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가장 강력하게 수학 교육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을 위한 선행입니까. 수학이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수학 문제 푸는 행위를 좋아했던 저로서는 그 재미 때문에 한 문제를 깊이 있게 풀었지, 다음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둘러서 과정을 진행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학원 진도 때문에 선행을 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수학 학원의 경우, 보통 비용 문제 때문에 한 클래스에 묶이게 되고, 그 클래스는 진도 공동체가 되기 마련입니다. 반은 웬만하면 찢어지지 않고 그대로 묶여서 흘러가고, 보통의 흐름은 한 학기 과정이 아무리 오래 잡아도 4~5개월이면 끝나기 때문에 - 또한 방학특강이라는 진도 빨리 뺄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에 - 하나의 클래스가 보통 같은 진도를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나간 선행은, 특목고 대비반이니, 의치한 반이니, 스카이 반이니 해서 보통은 1~2개 학년을 훌쩍 넘어섭니다.
중 3 때 고등수학을 완성하면, 고등학교 내신 관리가 편해진다, 수능 부담이 준다 등등등 많은 이로운 점을 말하지만, 똑같은 과정을 3년 동안 다시 줄기차게 반복해야 하는 학생들의 수학에의 즐거움과 흥미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수단지향적인 처방에 불과합니다.
수학은 실생활에 유용한 과목이기 때문... 이라는 답도, 사실 설명이 쉽지 않은 답입니다. 교과용 도서에 잔뜩 담겨 있는 실생활 문제 같은 것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2009개정 교과용 도서에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양이 수염 몇 센티미터를 영 점 몇 센티미터씩 잘라 마법의 물약을 만들 때 어쩌구 저쩌구. 2009개정 교과용 도서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던 스토리텔링의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내러티브를 담았지만, 내러티브로서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현실의 수학화가 이루어 진 것도 아닌, 모호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이, 화폐 단위로 덧·뺄셈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보통 백 원 단위, 천 원 단위로 실생활 사용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다만 화폐 단위라도 외국처럼 15달러에서 11달러를 빼면, 같은 실생활 맥락을 도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6학년 비와 비율에서도, 뺄셈 비교와 나눗셈 비교의 구분을 통해 실생활 맥락을 도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형이 만 원 받고 동생이 오천원 받을 때, 형이 동생보다 오천원 더 받는다고 말하지, 형이 동생의 두 배를 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학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추상화되어 버리면서, 실생활 맥락과 큰 수준 차이를 두며 유리되어 버리는 것도 보게 됩니다.
수학은 재미있는 과목이기 때문... 이라는 답이 참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를 입증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학이 재미있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 풀이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언급하곤 하는데,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서의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책이나 영화같이, 주관적인 즐거움일지라도, 상대방에게 설명함으로써 즐거움에 공감하고 동참하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수학의 언어는 번역이나 해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을 즐거움에 공감하게 하거나 동참하게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그렇게 연습을 시킵니다. 조금만 견디면 즐거워져, 재미있어져, 씐나씐나! 그러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 그러다가 힘들어하고 짜증내면 폭력의 언어를 활용합니다. 그것도 못 견디니? 집중력이 떨어지네? 머리가 나쁘니?
수학은 재미있는 과목입니다. 필요한 과목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과목입니다. 이 재미를 알려면,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수학을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줄기차게 초등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두드려 온 이유는, 과연 우리 수학교육이, 재미있는 수학을 배우도록 해 왔는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저 또한 깊이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제 마음대로 학생들의 자존감을 건드려가면서 사교육 현장에서, 공교육 현장에서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만나왔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것밖에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고 윽박지르면서 말입니다.
수학은 재미있는 과목입니다. 제 고민은,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어린이들이 사용하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는 수학의 언어를 잠시 내려두고, 우리 일상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어린이들과 수학의 재미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상한 소재 하나 갖고 와서 거기에 수학적 요소 몇 개 넣은 후, 재미있지? 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많은 교사들이 속는 지점도 이 지점입니다. 그저 활동적이라고 재미있는 것이 아닌데, 활동한다고 실생활이 아닌데, 활기차다고 흥미로운 것이 아닌데. 아마 교사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해 왔던 수고로움 때문에 이를 놓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수학하기 위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두드리고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