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검정 교과서를 바라보는 20가지 시선
얼마 전, 대한민국 관보에 수학·사회·과학 검정 교과서 합격본이 공고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대한민국 관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합격본 발표. 수학은 총 10종의 교과서가 합격본으로 선정되어 내년도 초등학교 3·4학년 교과서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습니다.
10종의 교과서를 모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그 중 한 종류를 선정할 것이고, 지금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 것인가. 몇 가지 기준을 토대로 교과서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수학과 수학교육에 관심을 가진 교사로서, 수학 검정 교과서를 바라보아야 할 스물 다섯 가지 관점을 제안해보고자 합니다.
1. 교과서의 구성은 참신한가? 진부한가? 그저 그런가?
이번 새로 만들어진 수학 검정 교과서는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교과서 개정 작업은 아닙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준비되고 있고, 그에 따른 새로운 교과서는 아마 이르면 2024년부터 선보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은 당연히 국정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2018년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현행 국정 교과서는 약 4년 정도 활용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정되는 교과서는 약 3년 정도 활용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같은 교육과정에 따른 서로 다른 교과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명확한 관점에서 교과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새로운 교과서는 어떻게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해석하였는가. 국정 교과서의 접근과는 어떤 차이점을 두고 있는가.
사실 대부분의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와 별 다른 특장점 없는 구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합격본이라는 말이, 거꾸로 보자면 불합격의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무난한 교과서를 의도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정 교과서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해석한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띕니다. 이러한 지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따라 검정 교과서에 대한 판단의 잣대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2. 단원 도입 부분은 어떠한가?
현행 국정 교과서는 단원을 도입하면서 간단한 활동 또는 스토리텔링 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사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교사는 어린이들이 실생활 상황을 바탕으로 이번 단원에서 배울 내용을 프리뷰할 수 있는 것에 높은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떤 교사는 굳이 이렇게 한 차시 배움을 낭비하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검정 교과서는 다양한 선택지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정 교과서의 흐름을 따라 간단한 활동 또는 스토리텔링 요소를 토대로 말랑말랑한 접근을 꾀하는 교과서도 있으며, 혹은 선수학습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번 단원에서 배울 내용을 프리뷰하기도 합니다.
국정 교과서에서는 선수학습 과정 확인을 익힘책에서 한 페이지 정도로 간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 학년 배움에 대해 일정 성취수준에 완벽하게 도달하였음을 염두에 둔 현행 국정 교과서의 구성은, 막상 현장에서 드러나는 학생 간 편차를 품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단원의 시작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검정 교과서의 다양한 접근도 교사의 기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교수-학습 과정의 흐름은 적절한가?
성취기준을 풀어내는 교과서의 흐름은 단원별, 차시 간, 차시별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국정 교과서의 경우, 내용 요소를 대단위별로 나눈 후 단원별 구성을 하고 있고, 대단위 내용 요소를 잘게 나누어 이를 위계별로 배열함으로써 차시 간 연계를 이루고 있으며, 차시 내에서도 원리-방법-연습/적용의 정형화된 구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2009개정 6학년 1학기 분수의 나눗셈은 '동분모 분수의 나눗셈-이분모 분수의 나눗셈-(자연수)÷(분수)의 나눗셈-대분수의 나눗셈'과 같이 차시간 구성을 하면서 대단위 내용 요소를 위계별로 배치하였으며, 각 차시 내에서는 '원리-방법-연습'의 구성을 이루었습니다. 2015개정 교과서는 이러한 분절적 구성을 약간 뒤섞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차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교수-학습 과정을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가는 이러한 교과서 구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어떤 교사들은 스텝 바이 스텝 방식으로 배움에 접근하기를 목표할 수도 있고, 어떤 교사들은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중시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현장의 교사는 두 지점의 어느 사이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검정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가를 짚어보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4. 문제 상황은 차시 배움을 이끌어가는데 충분히 의미있는 상황인가?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이 들어오면서 현장에서 받았던 비판 중 하나는, '과연 고양이 수염을 잘라 마법 물약을 만드는게 무슨 상황인가?' 같은 것이었음을 짚어보게 됩니다.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 상황을 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수학 내용 요소를 담은 다양한 문제 상황을 차시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상황이 과연 실제적이고 유의미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피자 1/3판', '물 3/4리터' 같은 표현들이 나오면 생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누가 피자를 3분의 1판, 3분의 2판 이렇게 세겠습니까. 아마도, 피자나 물이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소재라서 사용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도 일상생활에서 4분의 3 리터 같은 표현을 쓰진 않습니다. 아직까지 발달 도상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조금 더 실제적인 문제 상황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으면서, 그런 검정 교과서를 구분하는 안목이 교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5. 문제 상황은 완결성을 띄는가?
더 나아가 단편적인 문제 상황은 '문제를 위한 문제'의 역할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문제 상황을 안내하는 것은 그 날 배움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 어린이들은 이를 토대로 수학적 과정에 진입하고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껏 문제 상황을 해석하고 나니, 이어지는 문제는 처음에 주어진 문제 상황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면, 그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헛힘을 쓴 셈이 됩니다.
그 날 배움을 위해 주어진 문제 상황이, 따라서 관성적인지 아니면 배움을 계속 하게 만드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 상황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의 배움이 학원과 다른 것이려면, 문제 상황에 충분히 머무르면서 왜 이러한 식을 세우게 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구조여야 합니다. 어찌 여겨질지 조심스럽지만, 수학에도 서사가 필요합니다.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아니라, 문제 상황부터 답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연결을 지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수학도, 결국은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6. 개념의 설명은 충분하며 위계성을 잘 유지하는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수학 검정 교과서가 해야 할 역할은 성취기준을 해석하는 배움의 1차 가이드라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개념은 명확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안내되어야 하고, 내용 요소의 연결은 위계성을 갖추어 치밀하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서는, 따라서 문제집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간혹, 교과서를 보다보면 교과서와 익힘책과 문제집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교과서와 익힘책 만으로도 충분히 배움이 가능하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익힘책이 있다면 교과서는 익힘책과는 구분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과연 교과서가, 개념은 충분히 안내하면서, 위계를 갖추어 개념을 연결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교사의 전문성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7. 개념에 오류 없이 정확하게 안내하고 있는가?
사실 초등학교 3·4학년군 수준에서는 다루어야 하는 개념의 난이도가 크진 않습니다. 다만, 초등학교 수준이기 때문에 수학적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몫과 나머지를 표기하는 부분이나 대분수 표기 같은 것은 연산할 수 없는, 초등학생용 비수학 기호입니다.
따라서 중등에서는 나머지 정리 A=BQ+R 와 가분수 형태로 배우게 되지만, 초등에서 이와 같이 배울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안내와 설명이 필요합니다. 중등 수준의 수학을 다루기 전에, 어린이들이 배우는 것이 현재 어느 위치인지 파악할 수 있는 안내와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안내와 설명이 빠짐없이 잘 되어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선정의 잣대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8. 원리를 알고리즘으로 안내할 때 친절하고 꼼꼼한가?
모든 교과서는 알고리즘을 안내하기 전에 왜 이 알고리즘을 활용하게 되었는지 꼼꼼하게 안내하고 설명합니다.
예컨대 덧셈의 세로셈 알고리즘을 안내한다면, 보통 수모형 같은 것을 활용하여 실제 다뤄볼 수 있도록 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그래픽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새롭고 효과적으로 알고리즘을 안내하고 있는지, 그 원리는 적절하고 정확한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등과는 다르게, 초등에서 활용하는 알고리즘의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확인하여야 교실 배움이 조금 더 치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9. 문제 수준은 위계성을 띄는가?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심화 문제집을 분석하여보면, 무늬는 심화이지만 실제로는 선행 개념을 알아야만 풀 수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다음 해에 다 배울 수 있는 것들인데, 굳이 이를 풀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심화 문제집을 풀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제진도 문항도 못푸는 것은 이 때 너무 시달려서 그렇습니다.
에피소드가 하나 떠 오릅니다. 과외하던 고 2 학생이 어느 날 문득, 수업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 중학교 2학년 때는 수 원(당시 문과 고 2 생이 배우던) 풀었었는데, 고 2 되니까 중학교 2학년 것도 못 풀겠어요.
검정 교과서에서 제공하는 심화 문항이, 실제 어린이들의 배움을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문항인지, 아니면 무늬만 심화 문항일 뿐 실제로는 선행 과정을 함의하고 있는지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10. 학생들에게 묻는가?
이 부분은 교사마다 확고하게 갈리는 지점인 듯 합니다. 어떤 교사는 왜? 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교사는 그것보다 문제를 풀이하는 경험을 중시합니다.
검정 교과서의 색깔도 이 두 지점에서 약간씩 궤를 달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묻는 교과서와 풀리는 교과서. 한 단원의 진행을 보면서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어떤 교과서가 더 맞는가.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을 붙이자면, 초등 수준에서의 지나친 풀이는 어떤 어린이에게는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배움의 시작은 '왜?'로부터 비롯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검정 교과서는 아마 이 '왜?'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1. 한 시간 동안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다른 교과와 마찬가지로, 수학도 학교에서 배우는 하나의 교과목입니다. 다른 교과를 배우는 과정에서 교사가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교과서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야깃거리를 교과서 바깥에서 채우는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수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깃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언어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추상화하고 기호화하여 수학이라는 언어로 구성하였습니다.
스토리텔링 요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학 교과서 안에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언어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단지 연습해야 할 문제로 꽉 차서 어린이들에게 '풀어'라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교과서가 아닌, 교과서를 이야기나누며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수학 시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정 교과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12.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시공간을 확보했는가?
중등 학생들이 간혹 문제집을 풀고자 하여 적정한 것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문제집은 다 거기서 거기야. 어떤 것을 푸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펼쳤을 때 보기 좋고 풀만해 보이는 문제집을 고르라고 말해줍니다.
어린이가 자신의 생각을 넉넉하게 펼쳐갈 수 있는 여백과, 유려하고 가독성 높은 폰트,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다양한 그래픽 자료까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것처럼, 교과서도 그런 구성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이면, 좋은 질문과 함께라면 더 좋겠죠. 관성적인 질문과 넉넉한 빈 칸이라면, 어린이들은 아마 이 칸을 곤혹스러워 할테니까요.
13. 주어진 문항은 사고를 촉진하는가?
간혹, 보기만해도 짜증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별 의미도 없으면서 가독성은 떨어지고 담고 있는 문제 상황은 별게 없는데 미사여구만 잔뜩 끼어있는 문제들.
다른 의미에서 이런 문제들도 '문제를 위한 문제'일 뿐입니다. 특히 생각을 촉진한다는 심화 문제 중에서, 실상은 독해 문제에 해당하는 경우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우스갯 소리로 '수학 시간에 국어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문항은, 잘못 만들어진 문항입니다.
정말 좋은 문제는, 수학을 잘 하든 못 하든 모두를 감탄하도록 만듭니다. 수학을 못하면 수학을 바라보는 안목이 떨어질 것이다, 는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풀고 싶은 문제를 제공해야 합니다. 수학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어린이도 충분히 사고하게 만드는 문제를 가진 검정 교과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4. 교과서 푸는 것을 보면 성취수준 도달 정도가 보이는가?
어린이들이 교과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기만해도 어린이들의 일정 성취수준 도달 여부가 보이는 교과서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배워가는 과정을 그 때 그 때 평가할 수 있는 교과서라면, 굳이 단원 말미에 단원평가 같은 것을 풀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국정 교과서 체계가 이를 만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유사한 틀 속에 있는 검정 교과서도 아마 위와 같이 활용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과서가 어린이들의 수학적 사고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구성된다면, 교사가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데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원을 마치고 평가를 하고 나면, 항상 잘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이 등장하고, 이 어린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면서 단원을 마무리 짓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단원을 마치고 평가를 치루지 않고, 단원 중간 중간에 현재 성취수준 도달 여부를 바로바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그런 작업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교사가 다양한 어린이들의 다양한 수준에 조금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5. 놀이는 재미난가?
국정 교과서가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놀이 상황을 접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이 놀이는 무슨 의미일까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놀이가 학습과 연결되는 순간, 놀이가 가진 야생의 맛을 잃어버리지만, 기왕 놀이를 학습과 연계짓는다면, 재미있고 의미있게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검정 교과서도 놀이 상황을 많이 포함시켰을 것입니다. 제공된 놀이들이 학습 상황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지, 놀이를 통해 학생들이 수학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이를 살펴보는 것도 검정 교과서를 바라보는 하나의 잣대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16. 수학처럼 눈속임 한 다른 교과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은가?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교과 간 연계를 이루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수학이 부수적이고 다른 교과가 주된 상황을 봅니다.
그러면 어떻느냐, 는 말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상황은 해당 교과에 넣으면 될 일입니다. 수학 교과서인데 수학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담기에도 지면이 빡빡한데, 수학을 그저 다른 교과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황을 담았다면 이는 고민이 덜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미있게 수학적 사고를 촉진하는 상황들로만 교과서가 꽉 차게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17. 프로젝트 활동은 유의미한가?
학생들이 협력하여 하나의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젝트 활동도 실생활에서 수학적 사고를 촉진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무늬만 프로젝트일 뿐, 겉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면 단순한 연산 문제의 합을 이루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혹 문제집 같은 곳에서 '수학 놀이' 같은 이름으로 무늬를 색칠하라고 하면서 몇 십 개의 연산 문항을 주는 경우를 봅니다. 어린이들이 일껏 계산을 다 한 후, 같은 답을 가진 것들끼리 같은 색을 칠하면 캐릭터가 나오든 아이콘이 나오든 하는 문제. 그깟 색칠 놀이를 하려고 몇 십 개의 연산 문항을 계산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프로젝트이고 수학적 사고를 촉진하는 것이며,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18. 사용한 자료들은 신뢰할 만한가?
실생활 맥락이 강조되다보니 수학 교과서에서도 실생활과 관련된 실제 사례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특히 표나 그래프를 배우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은 다양한 실생활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워낙 자료의 신뢰도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므로 아마 검정 교과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시 한 번 다루는 자료들이 어린이들에 적합한 소재이며, 신뢰할만한 자료인지 현장 교사의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19. 교과서만 가지고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는가?
검정 교과서를 준비한 출판사에서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수-학습 자료가 교과서 선정을 위한 홍보 도구가 되기도 하나 봅니다.
다른 교과와는 다르게, 수학은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보다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고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게 더 중요한 교과입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라는 말은 수학 교과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이것저것 교구와 영상물과 구체물을 가지고 와도, 결국 수학은 수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수학 세계 안에서의) 완결성에의 매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수학을 보드게임으로 배웠더니 즐거웠다, 고 말하지만, 결국 그 어린이들 모두가 수학을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진 않습니다. 수학을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게 하려면, 수학 본연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교과서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으면 될 일입니다. 일껏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왜 교과서의 내용이나 체계 대신 교수-학습 자료 같은 것이 홍보의 메인 프레임에 위치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의 한 차시를 열고 보았을 때, 그 내용 만으로도 한 차시 동안 배울 것이 일목요연하게 구성된다면, 다른 교수-학습 자료는 필요 없습니다. 교과서만 가지고도 충분히 재미나게 배울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20. 교과서는 수학에 도전하고 싶도록 만드는가?
이미 여러 학교에서 검정 교과서를 선정하였고, 앞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수학 3·4학년군 검정 교과서를 선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과서 선정에서 어린이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 듯한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교과서는 교사와 '어린이'가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매개체입니다. 교사의 시각에 아무리 만족스러워 보여도, 어린이들이 보았을 때 별로라면 교실의 배움은 반쪽짜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실의 교사가 가부장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통보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만, 그랬기 때문에 자라는 과정에서의 아쉬움이 아직도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과서는, 교실의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적어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관점이, 교과서 선정에 반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