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10. 선배님
Kim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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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20:40
스승의 날, 선생님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연락드렸다는 메시지를 한 졸업생에게 받았습니다. 중 3 때 아버지 직장 관계로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된 후, 연락이 닿지 않던 - 닿을리 없었던 - 아이였습니다.
작년에, 그 해 같은 반이었던 졸업생과 만나서 식사하다가, 아이가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오래도록 끊어져 있기도 했거니와, 먼저 연락해 볼 일은 아닌 터라 생각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또 5월을 맞이하여, 계기 삼아 오랜만에 연락을 보내온 아이에게, 부모님 안부도 묻고 그 동생 - 아직도 그 동생의 이름과 나이가 기억나는 것은 무엇? - 안부도 물으면서 잘 지내느냐는 답 메시지를 보냈더니, 곧바로 혹시 통화드려도 되냐는 메시지가 와서 - 그래도 무제한 통화 요금을 쓰는 제가 - 전화를 걸었습니다.
졸업시킨 후에도 교실에 자주 오기도 했었고 간혹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있었던 터,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오는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지 않아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 언제 들어와서 지금은 어디 사느냐는 말부터 물었습니다. 작년 6월에 들어와서 지금은 성북동에 살고 있다, 고 하길래 아하, 학교가 그 쪽인가 보다 얼핏 짐작은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고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야아, 선생님이 이런거 물어봐도 실례가 아닐지 모르겠는데, 대학 어디에 입학했는지 물어도 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웃으면서 ‘물어보셔도 돼요.’라고 하면서, ‘저 올해 고대 들어왔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오, 고대! 좋은 학교! 뭐 거기까지는 그냥 그랬는데, ‘그런데, 저, 과는 영문과에요. 선생님 다니신.’이라고 하는 말에 그만...
네. 제가 졸업시킨 아이가, 제가 다녔던 학교, 그 과에 다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졸업시킨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 중 많은 분들의 핀트가 ‘좋은 대학’에 맞춰진 것을 볼 때마다, 아이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살아갈 인생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였습니다. 굳이 내 졸업생이 어디어디 대학을 갔다는 것이 무에 중요할까,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졸업생을 맞이하는 교사의 역할이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제가 지냈던 캠퍼스 그 공간에서 제가 지내왔던 삶의 흔적 위에 자신의 흔적도 얹는 졸업생이 생겼다는 것이 굉장히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비록 졸업에 이르진 못했지만, 3년이라는 세월 동안 너무나도 많은 기억과 추억이 쌓여있는, 첫 학교. 그 곳에서 지냈던 사람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하고 바뀌었지만 그래도 가끔 학교에 갈 때마다 어디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선연하게 기억나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로 한참을 나누었습니다. 아직 전공 수업은 듣지 않고 있다고 해서, 문 교수님, 김 교수님, 이 교수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민주광장 이야기, 학관 이야기, 기숙사 이야기, 새로 올린 대강당 이야기, 추억의 교양관 이야기, 쥐 나오는 서관 이야기, 리모델링한 노천극장 이야기 등등등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과거와 현재로 뒤섞여서 나눠졌습니다. 사발식 했던 이야기, 맨날 잔디밭에서 술먹던 이야기 등등등등, 3년 간의 대학 생활에의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문득, 그런데 선생님, 유니스토어 앞에서 불현듯 선생님이 여기 우리를 데리고 오셨던 기억이 났어요, 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이 아이와 함께 몇몇 어린이들을 제가 졸업했던 학교들에 데리고 갔었는데, 그 때의 일이 기억났다고 이야기 해 준 것입니다.
곁들여, 함께 보냈던 6학년 이야기, 졸업하고 있었던 여러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등등등 얼마나 길게 통화가 이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다 잊고 있던 것들인데 어떻게 그 때의 일을 다 기억하고 계세요, 라고 묻길래, 너가 선생님에게 얼마나 특별했었는데,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니, 비단 이 아이 뿐이겠습니까. 한 해 살이 하며 만난 저희 교실 모든 어린이들이, 제게는 다들 특별한 아이들입니다.
다만, 졸업한 이후에도 교사와 더 많은 추억을 만든 아이들에게서 조금 더 특별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 아이와도 졸업 후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그 특별함을 더욱 더 강화해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한 생각은 있습니다.
너야말로 선생님에게 최고의 학생이었지, 라는 말에 아이는, 선생님도 제게 최고의 선생님이셨어요, 라고 말해주는데, 보람도 있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방학하면 오랜만에 학교에서 한 번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이야기 나누다가 한 두 번 정도, 선생님, 대신에 선배님, 하는데 그것도 참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이 선배님도 되는 것. 교직 경력 10년차에, 난생 처음 느껴보는 놀랍고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