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교육
보통 '양육'은 부모의 역할이며, '교육'은 교사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통념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따져보면 아이들의 교육은 부모의 주도로 계획·실현되고 있으며, 교사는 이의 반대편에서 국가나 제도로부터 양육의 주체로 강제되고 있지는 않나 싶기도 합니다.
부모가 주도하여 아이들의 교육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것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부분은, 부모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육의 성공이 실은 복불복일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요즘 부모는 보통 하나 혹은 둘의 자녀를 키웁니다. 이 하나 혹은 둘을 키우기 위하여 보통은 부모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가장 크게 기능합니다. 자신이 공부했던 법, 자신이 고민했던 것, 자신이 겪었던 힘들고 어려웠던 지점 등등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자녀의 교육에 있어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이 과연 하나의 방법으로 자녀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저 스스로에 대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자라고 성장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꽤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지금에서야 추억으로 반추할만한 것이지만, 당시에 느꼈던 어렵고 힘들었던 감정의 조각들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소위 말하는 나쁜 생각 하지 않고 어떻게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지 생각해보면, 무언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마 많은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성공 경험도 무언가 인과 과정을 따라 발생한 것이라기 보다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점에 와서야 그 우연의 인과 과정을 결과론적인 필연으로 형식화하여 내 자녀에게 적용시키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자녀에게 적용한 교육의 방법이 소위 성공하는 것도 결국은 우연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연에 의한 성공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성공사례로 팔리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한 편의 현실입니다. 서점에 가면 교육과 양육에 대한 많은 성공담들이 포장되고 유목화되고 슬로건화되어 많은 부모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이것을 따라해 보지만, 왜 우리 아이에게는 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만 가진채, 집에 이러한 성공담들을 모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는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잘 가공된 성공담의 모르모트가 되어 이런저런 방법에 치여가면서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녀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 자녀를 도울 수 있는 적절한 노하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아마 조금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육도 마찬가지이지만,
양육은 방법보다 철학이 우선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양육에 대한 부모의 철학이 자녀와 공유되고 자녀에게서 수정·보완되어 실체를 가질 때, 비로소 자녀가 '어른'이 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은 보통 자녀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부모님에 의해 정해지면 자녀가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방법으로 디자인됩니다. 이 때 자녀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정하는데 있어서, 자녀가 가진 아이 자신만의 성장과 발달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꽤나 많은 듯 합니다. 사회적으로 많이 쓰이는 관용어 중 하나로 '엄친아'가 있습니다. 내 자녀와 함께 지낸 시간과 그에 따른 경험, 자녀의 특성이 자녀 교육에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옆에 있는 다른 부모의 자녀를 롤모델로 삼아 교육의 목표가 결정되고 그것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현상을 빗대어 표현한 단어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녀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이루어지던 부모 교육의 실제가 대부분의 가정에서 점점 획일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는 바로 '성적'입니다. 성적의 상승이 성공과 동일시되는 도식에 대한 문제인식 공유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성적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고자 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부모님이 자녀의 성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다가, 더 나은 교육 전문가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보통 많이 찾는 경우가 바로 학원에서 일하는 분들, 학원 강사입니다. 그런데 학원 강사가 과연 교육 전문가인가 생각해 본다면, 많은 학원 강사도 교육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의 지점은 '성과 중심'입니다. 학원 강사는 학원비를 통해 성과를 강요당합니다. 이 지점에서 학원 강사는 학생의 개인차이를 고려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교육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성주의자인 피아제의 이론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달에는 개인차가 있다, 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개성이, 성과 중심의 시스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학원이라는 공간이 성과를 강요받지 않는다면 학원 강사도 교육 전문가로써 충분히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학원에서는 불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학원 강사는 교과 전문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초등 학원 강사는 그나마 교과 전문가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니, 아마 중등 학원 강사도 대부분 교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의 임상 경험이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만들어 줄 수 없듯이, 학원 강사의 강의 경험이 학원 강사를 교과 전문가로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교사도, 학원 강사도, 그 지점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무언가 특별한 노력을 요구받게 되는 셈이죠. 어쨌든.
그럼에도 학원을 통해 돋보이는 성과를 보이는 학생의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 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원 강사의 교수 방법과 학생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진 셈이죠. 그래서 성과를 거두는 학생은 다른 친구들을 학원으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클래스는 학원을 운영하는데 큰 물질적 기여를 합니다. 왜 저 집 아이는 저 학원에서 성적이 오르는데 우리 아이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가. 보통 부모님은 자녀가 노력하지 않음을 탓하지만, 자녀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2015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학부모 한 분이 상담을 오셨는데, 졸업한 자녀에 대한 상담이었습니다. 마침 그 동생도 제가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졸업한 아이 이야기만 하다 가셨습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을 준비하는데, 시험 직전에 수학 학원에서 숙제를 열 페이지, 열 다섯 페이지씩 받아오더라. 아이가 고지식해서, 다른 과목 준비도 하면서 수학 학원 숙제를 해가는데 새벽 두 시 세 시까지 잠도 못자고 공부하더라. 그렇게 공부했는데 수학 점수가 77점이 나왔다. 아이가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아이가 많이 실망하였는데, 학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글쎄 아이가 노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좋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로써 얼마나 화가 나던지... 몇 주일 동안 학원의 그 말도 안되는 숙제를 다 하면서 새벽 두 시 세 시에 잤는데, 우리 아이에게 노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학부모와 혹여 흔치 않은 학원 관련 상담을 할 때, 과제가 무가치하게 많은 학원은 되도록 피하시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원이 교과 전문가들이 집합소가 되려면, 학원생들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또는 학생 스스로가 이미 학원이 필요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저 학원에 발을 붙여놓고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학원의 성과보다는 학생의 동기부여와 스스로의 학습 실천을 통하여 성과를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학원은, 이러한 성공 케이스를 모아서 학부모에게 쫘악 진열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학원 버스에 부착된 성과 홍보 문구를 보았습니다. 어느어느학교 칠십 몇 명. 그리고는 아래 이렇게 표시되어 있더군요. 전체 학원 학생 중 입학생의 수. 전국 곳곳에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는 이 학원에서, 칠십 몇 명이라는 수는 과연 몇 퍼센트일까요? 5퍼센트? 10퍼센트? 그리고 이 학원에서 성과를 거둔 학생 중에 정말 이 학원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통해서 성장한 어린이는 얼마나 될까요?
성공 케이스만 집적해서 이를 수치화한 성과 뒤에, 흔히 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케이스는 도대체 얼마나 숨어 있을까요. 심지어 요즘은 학원도 입학 테스트를 본 후 학생의 수강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도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들만 받으면 얼마든지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육일까요?
자기 자녀는 절대로 못 가르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교육 전문가가 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자녀에 대해 객관화 - 자녀의 발달과 성장의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응원하기 - 하기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맡기지만, 과연 그것은 의미 있습니까.
그러나 몇 되지 않는, 소위 성공의 경험들이 잘 포장되어 팔리고 있으며, 그것을 사지 않으면 우리 자녀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초조함이 부모님들로 하여금 이것을 구매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녀의 노력 부족으로 쉬이 돌려버리곤 하여 자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얼마 전 보았던 뉴스에서, 강남에서 돼지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이 각광받고 있다고 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우연히 고른 방법이 우연히도 자녀의 성향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부모를 잘 따르는 자녀의 성품 덕택에 빛을 본 일이, 초중고 12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어 일어난 소위 성공 경험이 노하우로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왜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격언에 모든 분들이 동의하면서 자꾸 상품화된 왕도를 서로 구매하고 판매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최소한의 울타리를 제공하면서 자녀로 하여금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장field 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학부모 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녀 교육의 방법이 아닌, 자녀 양육의 철학
이 공유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자녀의 발달과 성장에 맞추어가며, 자녀 스스로의 동기를 통해 선택하고 이를 향유해 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 아이보다 반 발자국 정도 뒤에서 아이가 앞서 갈 수 있는 철학을 함께 공유하는 학부모 공동체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성년인 자녀에게 최소한의 울타리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공유하면서 이야기나누는 자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전 학교에서 '자기주도수업'을 위한 학부모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연 적이 있습니다. 전체 학부모 중에 5% 정도의 학부모가 참석하셔서, 자녀의 선택을 돕고 자녀의 발달과 성장에 발맞추어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 많은 학부모님께서 가장 힘들어하셨던 부분은, 과연 내가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며 서로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도울 다른 학부모와의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 참 어려운 지점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위 자녀 교육 실패담이 더 크게,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원을 이렇게 보내고, 과외를 이렇게 시키고, 이렇게 안달복달하였는데, 우리 아이는 소위 말하는 실패자가 되었다, 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잘 없습니다. 있어도, 자녀가 또다른 의미의 성공을 하였을 때에나 후일담 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야기되는 많은, 소위 성공 사례에 반하는, 더 많은, 소위 실패 사례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잘 못 보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서 언뜻언뜻 보이는 소위 성공이 모습들로 자신의 선택을 강화하고 합리화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부모가 좋아하는 것에 자녀가 동참하도록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부모의 책무성이 요구됩니다. 어찌보면 자녀를 낳는 순간, 부모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것을 포기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던 것, 즐기던 것, 누리던 것이 부모라는 것 때문에 포기되기도 하고 그 범위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성장과 발달의 과정이 다른 생물들에 비해 길고 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야말로 근 20년 정도를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부모가 좋아하던 것, 즐기던 것, 누리던 것은 일정 정도 포기될 필요도 있을 것이며, 일정 정도 자녀의 편에서 재구성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발맞추어 이런 것을 함께 누릴 때, 자연스럽게 양육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교사는, 교육을 해야합니다.
개인적으로 교사는 잘 가르치는 일, 아니 학생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과 책무성은, 부모가 오롯이 자녀의 양육에 전심전력할 수 있도록, 교육 전문가로서 학생의 발달과 성장에 맞춘 교육을 해 나가는 것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조심스럽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교의 학부모 상담에서, 교사가 학부모에게 '아이 공부가 부족하니까, 학원에 보내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교사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교육의 주체는 부모님이 될 수 밖에 없으며, 학교 현장은 학교 밖에서 학습에 시달리다가 온 학생들을 그저 용인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교사로서 가장 바라지 않는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학원 강사가 교육 전문가입니까, 학교 교사가 교육 전문가입니까. 더 나아가, 특히 초등학교 교사는 모든 교과를 가르치는 특성 상 모든 교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과교육론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교육대학교 2, 3학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교사로 복무하는 내내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사랑만 해주시라고. 교육은 교사가 하겠으니.
그러면서 교사는 학생들의 수준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던 경험과, 십수년간 사교육 종사자로 있어온 덕에,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능숙하게 가르쳤던 초임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십명의 교사를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발견한 롤-모델을 따라 자신을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저 교사는 제 한 몫을 잘 하기만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아제의 이론에 따라, 구체적 조작기에서 추상적 조작기로 넘어서는 시점의 아동들에게, 아이들이 가진 흥미와 호기심은 배제한 채, 교사의 능숙함과 전문성만 뽐내는 수업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는지 겪은 결과, 교사는 자신의 몫만으로 그치면 안 되고 결국 아이들의 몫을 찾아줄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아이들의 배움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주어질 때 가장 효과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더 두드리자면,
초등학교 교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에만 꽂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교실에서는 다양한 흥미와 호기심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가 생각할 때 너무 좋은 것이어서 이것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한 가지에 몰두하는 순간, 교사와 생각이 다른 학생은 피곤해하고 힘들어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교사는 좋아하는 많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는 하나가 어떤 아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다른 하나를 그 아이를 생각하며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 다른 하나도 아이를 북돋울 수 없다면 또 다른 하나가 준비되어 제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가 무언가 하나 때문에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조금 있으면 즐겁고 소중한 다른 하나를 보면서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아이를 힘들고 피곤하게 하는 무언가의 방법을 다양하게 바꾸어가면서 아이의 힘들고 피곤한 마음을 바꾸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다양한 임상의 경험을 이론을 바탕으로 구조화
할 때, 교육 전문가로서의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실에서의 교사는 1년 동안 학생들의 배움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도우며, 학생들과 이런저런 방법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즉, 교실은 학습생활공동체가 됩니다. 이렇게 지내는 1년 동안, 아이들은 교사에게 영향받으면서 자라지만, 교사는 또한 아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교사의 성장은 그대로 임상 경험이 되어 축적되며, 다양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실은 의사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론 공부를 하지만, 의사는 인턴과 레지던트로 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또 그만큼 오래 갖습니다. 그리고 현업에서 계속 환자들을 보면서 임상을 구조화하고 범주화하여 나름대로의 아이덴티티로 삼아가는 듯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과 생각에 대해서, 교사도 똑같이 임상 경험을 해 나갑니다. 그리고 의사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의사는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중요한 일을 하지만, 교사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준비하는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물론 교사가 의사 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 만큼이나 교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바르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책임도 있거니와, 아이가 학교에서 상처받지 않고 소외되지 않으며 무시당하지 않도록 도울 책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하면 더 잘 돕겠습니까. 결국 교사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가다듬어서 아이들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경력의 선생님께서 저학년 학생들을 맡는 것이 그래서 꽤나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야 고경력자를 홀대하는 인식이 크지만, 학교에서는 어리고 귀여운 아이들과 그만큼 육아가 아직 능숙하지 않은 초보 부모님을 도울 분들로 고경력 선생님들만큼 적절한 분들이 계실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교사의 아이들에 대한 임상 경험이, 교사의 전문성으로 자리잡기 위해서, 교사 자신의 연구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다섯 살짜리 딸 셋을 키우는 아빠로서, 저는 저희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서 그 방향과 실제를 담당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제 와이프는, 그저 집에서 아이들의 현재를 인정하고,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받아들이며, 무언가를 함께 즐기고 누리는 일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싶습니다.
교사가 교육을 하기 위하여, 교사의 교육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나가기에, 교사인 제가 학교에서 가지는 시간은 많이 부족합니다. 항상 집에서도 무언가 학교에서의 교육을 위한 일을 해나가다보니 저희 아이들에게 집중해줄 수 없는 시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 여건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글은, 에듀콜라 하계 워크샵 때 '15분 Talk'로 35분간 에듀콜라 구성원들과 공유했던 내용을, 학원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살을 대폭 붙인 후, 텍스트로 두드린 글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