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2. 자기주도를 돕다
자기주도를 돕다
9월 중순쯤, 학급의 마지막 번호였던 그 아이와의 면담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면담을 하면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과 함께 5학년 때 힘들었던 것, 좋았던 것, 새로운 담임에게 바라는 것 등을 묻곤 합니다. 그리고 다음 면담 때는 평소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면담 때는 공부에 대해 묻습니다. 평가 결과를 놓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 방법에 대해 짚어줄 필요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코멘트로 돕곤 합니다.
그 아이와도 세 번째 면담이었을 것입니다. 평가 결과를 분석해보면, 꽤 좋은 결과를 보이는데 뭔가 조금 빈틈이 보이는 그런 아이였던지라, 아마도 선행학습을 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머릿 속에 있었던 듯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앉혀놓고 물었습니다. 요즘 수학은 어디 하니? 지금 중학교 1학년 1학기 부분 하고 있어요. 누구한테 배우니? 제 질문에 선입견, 편견이 꽤나 담겨 있었습니다. 학습 결과를 보면 조금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는 도대체 누가 가르쳤길래 그런 것인지 따져묻는 그런 감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이의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혼자 인터넷 강의 보면서 공부하는데요.
아이의 말인즉슨,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집에서 혼자 EBS 같은 것 보면서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하셔서 그 때부터 스스로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맞벌이셔서 남동생과 사촌동생을 케어하면서, 부모님 오실 때까지 그렇게 스스로 학습을 해 온 것이, 6학년 2학기에 오면서 한 학기 정도의 선행학습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아이가 가지고 있는 빈틈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가장 부족한 것은, 풀이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모범 답안을 꼼꼼하게 챙겨볼 수는 없으면서 자기 스스로 아는대로 풀어가다보니 풀이 과정에 군더더기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의 빈틈이 선행학습 때문에 제진도에 소홀해서 오는 빈틈이 아니라, 혼자 하는 공부라서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빙 둘러가느라 발생하는 빈틈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오후에 바로 아이 어머니께 전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조금 공부를 신경써주어도 되겠느냐는 통화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흔쾌히, 선생님께서 아이를 봐주시면 너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풀이과정을 챙겨주고 제가 공부하던 방법을 알려주었더랬습니다. 그러잖아도, 그 전부터 방과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서 보드게임을 하다가 가던 아이라, 그 이후로는 거의 일주일에 사나흘씩 남아서 같이 놀다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해 가을, 겨울에는 항상 예닐곱명씩 학교에 남아서 해가 질때까지 놀다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 중 하나로, 학습에 대한 조언도 이 아이는 같이 받아갔던 것이죠.
중학교에 가서도 자주 와서 공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묻거나 하는 아이는 아니라서, 항상 캐물어야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서 성실하게 제 몫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교사가 자신의 학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공부 방법이 어떻든 상관 없습니다. 사실, 공부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공부 방법은 공부를 해 보면서 찾는 것인데, 무턱대고 공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무언가 따라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이 주어진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면 그런 공부 방법을 누가 알려주어야 하는가. 만약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학원에서 배우거나, 친구들에게 배우거나, 부모님에게 배우겠지요. 친구들에게 공부를 배우는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거의 없으며, 부모님께 공부를 배우는 것은 부모나 자녀나 모두 수명을 갉아먹는 행동이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학원 강사들은 아이들에게 공부 방법을 알려줄만큼의 전문가들일까요? 저도 학원 강사로, 과외 강사로 십 수년을 지냈지만,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공부 잘한 강사는 맞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강사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 저도 꽤 많은 페이를 받으면서 일했는데... 많은 학원 강사들이 아마, 자신이 학창 시절에 했던 공부 방법을 아이들에게도 아마 답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게 아이들에게 효과를 거둘지 아닐지에 대한 연구나 책임감은, 아마도 덜 할 것입니다.
물론, 아닌 강사 선생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사들을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지요. 저는, 오히려 조금 더 균일한 수준을 가지는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공부 방법을 안내해주고, 아이가 실천하도록 격려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에 대한 고민을 거쳐,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했던 공부 방법을 안내해 주었고, 아이는 아마도 그것대로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학생에게 교사가, 코치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면, 졸업생에게 교사는, 멘토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는 책을 읽은 후 있었던 에피소드 글에서, 말미에 관련 이야기를 적었던 듯 싶습니다.
동기부여된 후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으로 이끌어 줄 코치를 필요로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연습을 꾸려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항상 멘탈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아이들을 청소년이라고 부르면서, 질풍노도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이겠지요. 아이들의 멘탈을 굳건하게 잡아주면서도, 아직 세밀함이 부족한 아이들의 방법을 조언하고 안내하며 지도할 수 있는 코치는, 학교 선생님이 가장 적절합니다.
학교 교사는 학원비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충분히 고려하여 아이에게 적절한 수준의 코칭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교사의 책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자기 계발도 이 지점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며 반듯한 학생들이, 공부까지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이 아이가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며 반듯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제 2, 제 3의 안이 필요한 것이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가 졸업한 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게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처했기 때문에 사실은 더 많은 도움과 조력이 필요합니다. 만연되어있는 생각 중에 참 재미있는 것이, 초등학교 6학년 아이 정도 되면 자신이 해야할 일 정도는 스스로 해야한다는 생각들을 많은 어른들이 참 쉽게 한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도통 기억나지도 않을 뿐더러, 딱히 배우거나 익힌 것이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다 저 같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평균적인 6학년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살아온 세계의 사이즈는 작고, 겪은 경험의 양과 질도 극히 작을 뿐인데, 아이에게 우리는 쉽게 이제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어른들은 불화하기 시작합니다. 중2병이라는 단어는, 그런 상태의 어른과 아이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용어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제멋대로에 막무가내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멘토의 조언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고 있습니다. 굳이 필요한 것은 '제 조언'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신과 함께 흉금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아이들에게 화내고, 아이들은 무엇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는지 도통 감도 오지 않는데 그것을 요구하는 어른들 때문에 화내고. 악순환이죠.
아이들을 졸업시킨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에게, 그런 멘토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 동안 아이들을 보아오면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추억들을 쌓아가면서 만들어 온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겪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길잡이가 되어,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적절하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존재.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만큼 적절하고 믿을만한 존재가 누가 있겠습니까.
작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멀리 전학간 그 아이가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메시지가 왔습니다. 수학 점수가 오십 몇 점이라며... 어떻게 할까라며 메시지가 왔었습니다. 아이와 간단하게 전화 통화를 했었습니다. 지금이 학원을 다녀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학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배움이 길에 부닥칠 때에는 다른 경로를 보여줄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며, 단기적으로는 학원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고, 한 번 해 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올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자기 이과 전교 1등했다고 자랑(!)하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던 것은 다른 포스팅에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제였습니다. 마침 아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잠시 만나보고 올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조금 다른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스스로 공부할 시간을 많이 만들 것. 최상위권 아이들이 초최상위권 아이들을 보면서 가지는 열패감 - 쟤는 나보다 점수가 좋아, 쟤는 나보다 학원도 오래 다니고 더 많이 배웠어, 쟤는 수학적으로 타고난 감각이 있어 - 은 근거가 희박하며, 너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은 아마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아래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너는 더 신중하게 연습을 계획하여 실행하면 금새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 너는 중학교 때까지 스스로 자신의 학습을 계획하면서 진행해 왔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스스로를 더 잘 알테니, 그것을 강점으로 삼고 스스로에 대해 필요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실천에 옮겨볼 것.
교사는 아이가 스스로의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부모보다 많은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강사에 비해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고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이제 교사가 가져야 할 것은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관심이 아이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적절히 조언하려는 마음가짐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