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딸 이야기] 2. 스마트폰을 믿어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쯤 부터였던 듯 싶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도록 해 보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여 실행해보는 경험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교보문고에 데리고 가서 아이들을 풀어놓고, 만 원 한도에서 사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사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골라오는 책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거의 항상 학습 만화를 골라와서는, 아빠, 이거 사면 안돼?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학습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전달한다는 명목의 책에서 막상 텍스트는 귀퉁이에 박혀있고, 별 의미없는 애니메이션이 주를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빠가 왜 학습 만화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지 알아듣게 설명하고 다른 책을 골라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첫째 아이도 참 집요하였습니다. 다음 달에 또 교보문고로 가면 아이는 또 학습 만화를 골라와서는, 아빠, 이거 사면 안돼? 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슬슬 짜증이 납니다. 알아듣게 이야기했는데 왜 그러지? 그래서 정말 여러차례 굉장히 화를 내었습니다. 아빠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고를 기회를 주는지 알면, 너도 아빠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와주어야 하는 것 아니니. 스스로가 너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을 언제까지 말해야 실천할거니.아이는 펑펑 울면서 결국 아빠의 기준에 부합하면서 자신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국 그것에 실패하면서 책을 사지 못하고 온 적도 있는 기억이 납니다.
정말 불현듯, 다른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선택의 기회가, 전적으로 아이의 몫으로 허락된 것이었는가. 그런 생각은 아마, 서점으로 책을 사러 가는 발걸음이 즐겁지 않다고 느꼈던 그 감정의 어느 끝자락에서 찾아왔던 듯 싶습니다.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선택의 기회라는 명목 아래,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을 그만 하자. 아이가 무엇을 선택하든 아이의 선택을 믿고 격려하자.
그런 결정 이후에, 저희 부부는 아이가 무슨 책을 골라와도 그저 오케이 하였습니다. 학습 만화를 고르고, 만화책을 고르고,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매달 1일이 되자마자 서점으로 가서는 자기가 사고 싶은 만화책을 즐겁게 골라오고 있습니다. 언제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를 것인가 생각하다가도, 아이에게 도움되는 책이 별게 아니라 고를 때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책이며 아이는 즐겁게 고름으로써 자신을 성장시키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던지 아빠 엄마에게 말해주렴. 아빠 엄마는 언제나 오케이 할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가 약간 위험해 보이는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번만큼은 허락합니다. 대신에 아직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미성년의 시기임을 알려줍니다. 국가에서 정해주는 TV의 시청자 관람연령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해를 돕습니다. 그리고, 다음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는 아빠 엄마의 염려와 걱정도 알아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같은 선택을 또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허락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빠 엄마의 염려와 걱정을 말해줍니다. 다음의 선택에는 이 부분을 고민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염려와 걱정은 있지만, 몰래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습니다. 아이들의 생각도 듣고, 아빠 엄마의 생각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 받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고르라는 요구가, 다른 의미의 폭력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아이의 아빠인 저도, 제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구하지 않는데, 아이에게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화내고 성질내는 것이 말이죠.
얼마 전, 비슷한 일을 다시 겪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입니다.
저희 큰 아이는 5학년 올라가면서 아빠가 쓰던 스마트폰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새 핸드폰을 구매하구요. (쿨럭)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시간을 제한하였습니다. 명목은 시력. 아이를 이해시켰습니다. 아직 몸이 자라고 있는 너는, 시력도 함께 자리잡고 있단다. 아빠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 같은 것을 제한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자율에 맡기고 싶지만, 그러다가 시력이 나빠져서 불편하면 안 되지 않겠니. 부모의 역할은 미성년인 너희들의 결정 중에서 너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인 듯 싶다. 그러니,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하루에 30분만 하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면, 스마트폰 하는 시간에 특별한 통제를 가하지 않을거야. 알아서 하도록 믿을거다. 그 때 되면 몸이 다 자라서 더 이상 시력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거야.
교묘하죠. 아이들의 자율적인 결정은 인정하는 방침은 유지하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야하는 부모의 임무로 납득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느 신문 기사에선가, 아이들의 시력은 환경적인 요인이 1도 없고, 100퍼센트 유전자의 영향이다, 라는 연구 결과를 읽은 것입니다. 100퍼센트 유전이라는데... 환경적 영향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스마트폰을 하루 30분만 하라고 하는게 아이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 말이죠. 그런 생각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첫째 아이가 6학년 2학기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스마트폰을 조금 더 불편함없이 쓰고 싶다고 해서 어린이 요금제에서 청소년 요금제로 바꾸어주고, 데이터를 LTE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수학여행을 보냈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첫째 아이는 하루에 핸드폰을 근 너댓시간씩은 하는 듯 합니다.
올해 3월,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이를 불러 앉혀놓고는 일장 설교를 시작한 것이죠. 아빠가 말을 안 하니까 도대체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끼고 앉아서 뭐하는 것이냐, 학교 다녀와서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 너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서 하는 시간은 왜 갖지 않는 것이냐. 그렇게 분에 차서 말을 내뱉다가 불현듯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짜리 아이에게 '너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라는 요구는, 과연 가당한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말의 끝은 그랬습니다. 아빠도 아빠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이 뭔지 모르는데, 중학교 1학년짜리 딸에게는 더 어려운 요구가 되겠구나.
지금도 하루에 너댓시간 스마트폰을 하면서 하교 이후의 시간을 보냅니다. 대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스마트폰을 쥐기 전에는 무언가 다양하게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였는데, 스마트폰을 쥐고 나서는 오로지 스마트폰이 되어버렸다는 말을 해주면서, 지금은 새로운 무언가가 찾아오지 않아서 스마트폰을 통한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지만, 불현듯 새로운 무언가가 찾아왔을 때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 새로운 것을 향해서 도전하려는 마음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말. 그런 아빠의 바램을 한 두 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니까요. 인생의 안갯 속을 헤쳐가면서 과연 내 인생이 어떤 국면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감조차 못 잡은 채 그저 헤매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쓸데 있는 조언을 기억하고 귀기울이니까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있었던 일들, 경험하고 겪었던 것들. 그런 이야기를 일상으로 나누다보면, 아이가 새로운 것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어제 저희 첫째 아이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생활통지표를 받아왔는데, 교과발달과 행동발달특성을 읽으면서, 행간이 보이는 바람에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설명할 수 있다'나 '무난함' 같은 말보다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함'같은 표현이 더 많아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스마트폰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할 때, 온 가족이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을 때, 예의와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서 - 에 대해 이야기하면 별 거부감없이 따릅니다. 집에서 아빠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는데, 지금 정도는 잠시 스마트폰을 참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 아이가 수긍하는 것입니다.
마침, 첫째 아이가 다니는 교회 선생님이, 아이가 교회에서 내주는 과제를 안 한 것 때문에, 하루 스마트폰 사용을 두 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하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스스로 시간 어플을 사용해서 두 시간의 시간에 맞추어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고 엄마가 귀띔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결국 스마트폰이 고장 나 버렸습니다. 하도 떨어뜨렸더니 액정과 본체 사이가 벌어져서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이는 뭐 그냥 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데스크탑 앞에 붙어 앉아서 스마트폰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아빠 핸드폰 바꾸면 그 때 자기가 아빠 쓰던 것 물려 받아서 쓰지 뭐, 이러고 있습니다. 내심 스마트폰에 안달할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도 크게 안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판단해보고는 있습니다.
계속 놔두어 볼 생각입니다. 무언가, 어떤 결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아이와 행복하게 잘 지내면서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저희 부부에게도, 저희 첫째 아이에게도, 마음 편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