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個讀者, 獨立書店] 지나간 미래를 만나다
'풍요 속의 빈곤'. 너무 고루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요즘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인 듯 합니다.
독서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책들, 전업독서인으로 살 수 있다면 아마 그 책들을 모조리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건만. 그리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책들을 지나쳐보낼 뿐입니다.
혹여라도 아쉬운 이야기들이 있을까 눈이 빠져라 둘러보기도 하지만, 대형 서점의 매대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책들로 채워지기 일쑤이고, 온라인 서점의 큐레이팅은 멋진 제목과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한껏 치장한 새로운 책들을 때마다 바꾸어가며 독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다가 지나칠 수 없는 책을 딱, 하고 만나는 순간. 안타깝게도 그곳이 온라인 서점의 웹 공간이라면, 또 하나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크랩과 장바구니. 그 곳은 독서인에게는 수렁 같은 공간입니다. 대부분의 독서인은 생활인을 겸하고 있는 터, 보이는 족족 장바구니나 스크랩 같은 잉여의 공간은 지나친 채 바로구매 버튼을 힘껏 누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일단 담아둡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인가 장바구니를 마주할 때, '장바구니에 담은 책 중 삭제일까지 30일 미만으로 남은 책이 있습니다' 블라블라 같은 메시지를 대하기도 하죠.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장바구니에서 책이 비워진다는 경고를 만나는 아이러니.
현대를 살아가는 독서인에게, 겉보이는 풍요로운 신간들의 범람은 따라잡을 수 없는 변화 속에 느끼는 결핍의 착시현상일 뿐이고, 독서인은 그저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는 '나의 책'의 존재도 모른 채, 지금의 독서에 그저 만족하며 독서해 갈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 뫼비우스의 굴레를 벗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개(一介) 독서인 주제에, 거대한 흐름을 막아설 수도, 모조리 분석하고 탐색할 수도, 혹은 이를 거스를 수도 없으니 그저 이런 변화를 인정하고 그저 되는대로 독서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있는지도 몰랐을 한 권의 책을 독서인에게 전시한 제주도의 한 독립서점 - 소심한 책방 - 이, 일개(一介) 독자가 일개(一個) 독자로서 독서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사실 일개 독자가 보는 독립서점이란, 그저 도서 유통의 생태계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었을 뿐입니다. 생태계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는 독서인의 성근 생각은, 그저 독립서점의 공간을 지나치지 않도록 해 주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까지 고민하기는 어려운 의무적인 발걸음을 이어가도록 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겨울에 만난 한 권의 책은, 독서인이 독립서점을 방문하여야 할 분명한 목적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소소한 냇가에 서서 얕은 물 속을 들여다 볼 때 보이는 다양함과 풍요로움이었습니다.
독립서점의 서가는, 작습니다. 제주도 여행 중에 들르는 독립서점들은 특히, 기존의 집을 바꾸어 만들기도 하는 터라, 집의 분위기를 오롯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공간 중 일부를 서가로 구획해도 책이 차지하는 공간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 독립서점의 작은 서가는 오히려,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더 높여줍니다.
한 권, 한 권, 책의 제목을 만나 보고, 책쓴이의 이름표를 마주하며, 혹여 이 두 가지가 와 닿았을 때 책을 뽑아들고 표지를, 그리고 서문과 목차를 찬찬히 읽어봅니다. 그렇게 책을 하나 만났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2016년에 출간되어 그저 흘러가 버렸던 것을, 2019년 초에 만나게 되었음을. 그 한 권이, 비록 제 때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나간 지금이라도 만났으니 때늦은 지금부터라도 미래가 될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번 독립서점행이 성공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서점은, 너무 빠르고 많아 살필 수 없었던 지나쳐버린 가능성을, 운영자의/서점원의/사장님의 선택을 마주하며 천천히 발견해가는 공간입니다. 일개독자(一個讀者)의 독립서점행은 이제, 조금 더 큰 기대감과 함께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