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1. 교과(용 도)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이 교육 현장의 화두가 된지 서너해 가량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바뀌고 있는 인식의 변화 중 하나는 교과(용 도)서에 대한 부분입니다.
발령받은 후, 동료 선생님들께서 가끔, 교과서 진도를 다 못 나가서 큰일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표현들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만 해도, 사회 같은 교과는 아직까지 교과(용 도)서를 한 두 번 정도밖에 펼쳐 본 기억이 없습니다.
요즘 한창 열풍인 '온작품읽기'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주도적으로 수용하여, 그에 걸맞는 제재글을 교과(용 도)서 수록 여부의 고려없이 정하여, 이를 통해 성취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교수-학습 과정 운영이 바로 온작품읽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교육현장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많은 선생님들이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교과(용 도)서에 나오는 빈 칸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습니다. 굳이 채워야 할 필요가 있나? 채워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어 교과(용 도)서 6학년 2학기 3단원 적절한 근거 첫 시간은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가 적절한지 파악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채워야 할 빈 칸은,
- 근거가 (주장)과 관련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살펴본다.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근거가 주장과 관련 있으며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이 외워야 할까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것을 학습으로 접근하는 시점에서 아이들은 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은 무언가로 여기게 됩니다. 혹시 어떤 아이들은 이걸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므로 외우게 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러나 사실 지금이야 모를 수 있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학생이라면 중학생이 되어서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요즘의 학교 현장에서는 점차로 빈 칸을 메울 정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자신만의 대답을 만들어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과(용 도)서가 교수-학습 과정에서의 참고 자료 정도로 조금씩 그 위치를 바꾸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학부모님들은 그 교과(용 도)서를 문제로 만들어서 풀리는 문제집을 사다 주고는 그걸 풀리면서 저런 당연한 이야기를 외워야 할 무언가로 여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도 저런 내용들을 객관식 문항으로 만들어 단원평가로 풀리고 있는 모습이 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객관식을 풀면서, 혹은 단순한 계산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서,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는 훈련을 하고 있지만, 사실 초등학생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모든 반응은 다 답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학이 그렇잖습니까. 감상에 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답으로 향하는 사유의 탄탄한 구축이 답을 답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죠. 아이들이 탄탄한 사유를 구축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강조되어야 할 시점에서, 단어에 집착하고 정답에 천착하도록 만드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과(용 도)서에 나오는 것을 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학문적인 용어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아닌 것들입니다. 그저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경험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절차와 과정을 제공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의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그러한 모습을 존중하는 시선이 확산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2. 평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교수-학습 과정의 변화와 함께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평가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평가는 결과가 아니라,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배움-평가'의 2단계 구조가 아니라, '배움-평가-배움의 보완'의 3단계 구조로 평가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평가는 아이들의 성취 도달 여부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성취를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초등학교에서의 결과 아닌 평가는 자연스럽게 평가 국면에서의 점수와 서열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몇 점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모르는 아이를 어떻게하면 알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한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가의 결과는 배움의 끝이 아닙니다. 평가의 결과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배움을 돕기 위한 자료가 됩니다. 결국 교사는, 모든 아동의 완전학습을 위해 평가를 치루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푼 개수를 모아서 등수를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게 틀린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배움을 잘 한 것이고, 많이 틀린 아이들은 다시 안내하고 알려주어 배움을 보완해주면 되는데 말입니다.
물론, 적게 틀린 아이들에게는 심화와 확장을 위한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수준에서 심화와 배움의 확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합니다. 보통 심화라고 하면 선행학습과 등치로 여기는 생각들이 많은데, 그러나 선행학습은 어차피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밟아나갈 커리큘럼일 뿐입니다. 심화와 확장은 생각하는 방식의 균열이어야 합니다. 그동안 답습해오던 방식의 변화여야합니다. 심화와 확장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만한 문제를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학 교과 같은 경우의 심화 문제라고 소개하는 것들을 굉장히 우려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사고 방식의 균열과 변화를 추동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길기만 하고 쓸데없이 복잡하기만한 그런 문제들이 소위 심화 문제라고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과정중심평가'라는 말이 요즘 회자되는 것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과정중심평가는, 평가의 방향이 결과 중심이라기보다는 과정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기까지, 스스로의 배움과 성장을 어떻게 이루어갔느냐를 보는 평가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쉬운 문제를 푼 다음에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가를 보겠다는게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성장을 이루었으며, 그 성장을 토대로 어렵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문제 해결 과정을 되짚어보는 활동을 통해서 스스로의 배움과 성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도입니다.
이렇게 평가가 일련의 활동 과정에 주목하고 있으며, 평가 결과가 다시 배움을 보완하고 배움을 되짚어보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로 연결되고 있는데, 아직도 아이들은 '배움-평가'의 2단계 구조 속에서, 단원이 끝나면 다시 그 단원을 되돌아보지 않는 그런 절차를 반복하면서 계속 배움을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그런 습관을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입니까.
3. 배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제 단순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만을 배움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런 단순 지식을 묻는 시험들이 있었고, 그런 것을 잘 외우는 것이 공부 잘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그렇게도 외우게 시키는가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렴풋이라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무슨 사건을 외우고, 무슨 개념을 외우고, 무슨 단어를 무작정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대강의 어렴풋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이제 정확한 의미와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도구들이 주변에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평가도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어떻게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를 자꾸 묻는 것이죠.
지식에서 방법으로, 방법에서 의미로, 자꾸자꾸 묻는 수준이 변하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기 이름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고, 고기를 잡는 방법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음을 하면서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의미와 필요성을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교육이 초등학교 교실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학습 과정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배움의 주체는 학생들이 되어야 한다는, 구성주의적 교육철학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물론 알게 모르게 구성주의 교육철학을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굉장히 많지만 - 저 또한 - 그럼에도 배움이 학생 스스로에게서 일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교육 현장으로부터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배움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경험적으로 인정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한 번 돌아보십시오. 내 아이는 무엇을, 어떻게, 왜 배우고 있는가. 내 아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배움 동기로부터 배우고 있는가. 만약 단순한 앎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아마도 많은 아이들이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을 것이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언젠가 자신에게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과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로 하고자 하는 것이 부딪혀 거친 소리를 낼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냥 그렇게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인식 방식이 바뀌고 있다.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대한 인식 방식이 분명히 저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2015년에 맡았던 6학년 아이들부터 그런 생경함이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보니, 이 아이들이 2009년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던 시점부터 아이폰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겪게 된 아이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바꾸었는지, 딱 10년 전의 이맘때를 되짚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야, 스마트폰 이전과 스마트폰 이후가 있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스마트폰 이전의 경험이 없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세계의 모습을 놀랍게 바꾸어버린 스마트폰의 세상만 알고 있는 셈입니다.
어른들도 스마트폰 때문에 삶의 방식이 그렇게나 많이 바뀌어 버렸는데, 지금의 초등학생에게는 스마트폰이 삶의 방식 뿐만 아니라 사고의 방식도 새롭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의 신인류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을 마주 대하면서, 교사와 학부모는 이전 세대의 사고 방식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전 세대의 사고 방식을 아이들에게 강제하면서, 혹여 아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6학년 교실에서 알림장을 직접 수기로 쓰도록 지도하였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목적이 있었다면, 아이들에게 손으로 무언가를 쓰게하는 행위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랄까요. 그런데, 이미 제 교실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글씨를 써오고 있었습니다. 알림장이야말로 손글씨 쓰기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행위. 그런 알림장을 문제의식없이 그저 써오고 있었던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알림장 어플리케이션 같은 것으로 충분히 아이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통해 학교 생활에서의 아이들의 책임감을 고양시킬 수도 있는데.
혹시 아이들의 배움마저도, 아이들의 사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이 사고하도록 혹시 어른이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 어른들의 방식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문제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해버리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요.
과연, 초등학교에서의 배움의 모습은 어떠해야할지, 그 급격한 변화의 모습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나가 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