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 교육과정 재구성인가
왜 재구성인가
교육과정 재구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국가 수준(국정)의 표준화된 수업계획서 - 교과(용 도)서 - 에 의하지 않고,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교사 혹은 교사 집단이 개별화 된 새로운 수업계획서를 조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말이 아주 멀리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교수-학습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수학과 6학년 1학기의 교수-학습 과정을 운영하는 교사가 분수 나눗셈을 교수하던 중 분수 나눗셈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선수과정인 통분, 약분에 대해 아이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교사는 큰 한숨을 속으로 한 번 들이내쉬면서 해당 부분에 대한 교수-학습 과정을 진행한다면 그러한 것도 일련의 교육과정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체육과 교수-학습 과정을 운영하는 교사가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 활동으로 굳이 교과(용 도)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종목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들이 조금 쉽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필요한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뉴-스포츠 등의 활동을 소개하고 교수한다면 이 또한 교육과정 재구성의 한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낮은 수준의 교육과정 재구성 -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대표적 도구인 교과(용 도)서의 활동을 재구성한 것 - 이 일상적이라면, 이를 뛰어넘어 더 전면적인 교육과정 재구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학생들 모두는 조금씩 다르다
우선,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달성하는 우리 아이들이 제각각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항상 해주는 말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앉아있는 모든 아이들은 다 그 상황이 다릅니다.
당연하겠지만 우선 성장 배경이 다릅니다. 다른 부모, 다른 성장 환경, 유아기의 다른 경험, 그리고 모두 다 다른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학교 생활의 경험들. 6년 동안 6학년 담임을 하면서, 6년 내내 같은 반 이었던 페어가 딱 한 커플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중학교 가니 다른 반이 되더군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장의 수준도 다릅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가만 살펴보면 초등학교 4~5학년 수준의 아이들부터 중학교 1~2학년 수준의 아이들까지 제각각의 성장 수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동 발달은 개인차가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실감합니다.
배움의 차이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더 많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조금 덜 알고 있고 아직은 서투름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다른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이야기는 성취기준은 하나이지만 성취수준 도달 여부는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표준화된 도구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과(용 도)서는 물론 가장 잘 구조화된 교수-학습 과정의 도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다양한 차이를 폭넓게 만족시키는데에는 제약이 됩니다. 쉽게 말하여, 교과(용 도)서를 누구는 모두 다 풀고 누구는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 성취기준에 도달하는 수준의 차이가 다르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누구는 잘 하고 누구는 못 하네, 라고 생각할 것입이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교과(용 도)서를 교육과정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까닭일 수도 있습니다.
국정 교과(용 도)서의 사용이 강제된다면 이는 교사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결과가 됩니다. 상이한 차이를 드러내는 학생들이 각자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때, 교사가 이에 대응하여 학생들의 수준 차이를 제각기 만족시킬 수 있는 교수-학습 과정을 운용하고자 계획한다면, 표준하는 이러한 교사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 표준화된 도구는 교사와 학생 간에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의 수준을 최대한 균일하게 맞춤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사는 지역에 따라, 또는 담임 교사의 역량에 따라, 혹은 아이들의 다양한 발달 수준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 해 주는 장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교육과정 운영 때문에 실제 교육과정 운영과정에서 교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여지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바운더리에서 교사는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근거하여 교육과정 운영을 계획할 수 있고, 조금 더 나아가서 재구성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덕택에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그를 표준화한 교과(용 도)서의 존재는 교사를 보호하면서도 교사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둘 중에 어느 입장에서 교육 현장을 바라봐야 할까요. 아이들의 차이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변화 흐름에 맞춘다면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상의 자율성을 폭넓게 부여하는 것이 흐름에 부합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을 우리는 교육과정 재구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교사의 교육철학과 교육관
법관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의 판결에 대해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 헌법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사를 법관에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의 교실에서 아동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자율성과 책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헌법은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명시적인 조항은 있지만, 교육할 권리에 대한 조항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교육권만 명시된 헌법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 교육의 주인은 아동이기 때문에 - 어쨌든 우리 헌법에서 교사가 가질 책임에 대한 부분은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헌법 31조 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조항일 텐데요. 이에 따라 교사는 자주적이며 전문적이어야 할 책임을 가집니다. 그것이 우리 아동들이 받아야 할 교육의 권리를 뒷받침해주는 핵심적인 책무이며, 따라서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책무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사의 책무성과 자율성은 교사의 양심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제 103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교사의 교육할 책임에 대한 명확한 조문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법관의 판결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른 것이라면, 교사의 교육은 바로 교사의 양심에 의한 자율성과 책무성으로 학급에서 구현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사의 양심은 바로 교사가 가진 교육철학과 교육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철학 이후로, 공교육 바운더리에서 교사가 가져야 할 다양한 방향의 교육철학이 주창되고 확장·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관에 근거한 교육이 학교 현장과 학교 밖 현장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사 개인의 자율성과 책무성에 기반한 교육철학과 교육관이 드러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아동과 아동의 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3) 교사의 전문성이 발현되는 지점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가. 15년을 넘게 사교육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가르치는 것은 강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만해도 가르치는 강사의 역량이 뛰어나면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공교육 교사로 지내면서 이런 생각이 전면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공교육 교사가 사교육 강사에 비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은, 교육학적 지식에 기반한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방향적인 교수-학습 과정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지난 교육대학교 재학 시절의 커리큘럼 - 교육과정 - 을 생각해보면, 그 4년 간의 강의들은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아동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동 이해를 바탕으로 교과교육론을 배우고, 교과교육론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교양을 배웠습니다다. 그러나 기본은 아동과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일 것입이다.
교사의 아동과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가 구체적으로 아동에게 표현되는 수단이 바로 학급 운영과 교수-학습 과정의 운영입니다. 이것이 사교육과 공교육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성과 중심의 시스템과, 이해와 소통 중심의 시스템 차이. 그리고 점점 20세기적 사고방식으로 강조되던 효율적 사고방식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교사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아동과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양방향적인 학급 운영과 함께 아동의 끊임없는 성장 과정에 발맞추어 아동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수-학습 과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때 아동에 대한 이해는, 미성년에 대한 성년의 안내 - 와 통제 사이의 어딘가 - 가 전제되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끔, 아동에 대한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아동에의 안내 - 와 통제 사이의 어딘가 - 는 아동을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며, 이것을 아동에 대한 총체적 이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색안경과 프리즘을 통과한, 왜곡되고 지엽적인 이해이겠지요.
교사는 다양한 교육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년간의 임상을 통하여 아동과 아동의 발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체화하여 학급에서 운영하는 교육 전문가입니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로서 학부모의 자녀 양육에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한다면, 교사 임상의 수준이 학부모의 그것과는 양적 측면의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방향적인 학급 운영을 하는 것과 함께, 교사의 전문성이 또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교수-학습 과정의 운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사가 교수-학습 과정의 운영을 전문화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교육과정의 재구성, 즉 교사의 교육학적 이해와 실제 임상의 경험에 기반하여 아동과 아동의 발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교수-학습 과정을 아동에게 맞추어 구현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는 이제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전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율성과 책무성에도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개별성과 다양성에 대한 도전에도 적합치 않습니다.
교사는 아동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기반으로 아동의 성장과 발달을 끊임없이 돕고 그로부터 아동이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를 수 - 날아오를 수 - 있도록 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발전과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교사가 컨텐츠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