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수학 공부합시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17. 수학 공부합시다
솔직히, 초등교사 입장에서 아무리 초등학교 수학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늘어 놓아도, 가장 큰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많은 교사들이 학창 시절 수학을 어느 시점에선가 '접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교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런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한 때, 전체 수험생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던 문과생의 수리영역(수학) 수능 평균이 100점 만점에 20점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수능은 점점 쉬워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평균, 즉 전체 수험생의 절반 정도가 거두는 점수는 여전히 낮은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이들 중, 정말 많은 이들이 수학에 대한 실패 경험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경험에 대해 대부분은 개인의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학에 재능이 없어서, 수학에 관심이 없어서, 수학 연습이 부족해서 등등등. 개인의 역량 부족과 관심 부족이 수학 부진의 원인이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간혹, 환경적인 원인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에 대한 해결 또한 개인 차원에서, 즉 연습으로 극복하게 하려는 시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그렇게 해서 '구제'되는 학생이 가뭄에 콩나듯 나는 정도라면, 지금의 처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볼 만도 한데, 대부분은 결국 개인의 문제로 다시 돌리고 맙니다.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할만도 한데, 그러다보니 아직도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비슷한 방식의 교수-학습을 해 나갑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고, 그에 대한 문제를 한 두 문제 풀어주고, 비슷한 문제를 풀어보게 하고, 질문을 받아본 후, 나머지는 숙제. 그래서 유형별 문제집의 인기가 많습니다. 유형 문제 풀어주고, 그 아래 문제 풀어주고, 나머지는 숙제. 채점해서 못 풀었으면 그 유형만 다시 풀어주면 되니까. 관리가 쉬운 문제집이 시중에서 강력하게 선호됩니다.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수학책이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사실,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수학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 해결과 문제 풀이를 같은 수준에 놓고 여기는 한, 그저 A-B-C 스텝을 진행해가면서 실력이 향상된다고 착각하는 것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수학은, 문제 풀이를 위한 학문이자 과목이 아닙니다. 주어진 문제에 의문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적으로 사고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그 한 수준에서 우리는 특정한 문제 상황을 주고 문제 풀이를 시키지만, 그것이 마치 수학의 전부인 양 여기는 것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지금같은 방식의 수학 교수법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수학에 대한 실패 경험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가 수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은, 교사들이 관심이 항상 수학을 비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정말 많은 분야에서 교사 학습 공동체가 다채롭게 구성되고 있는데, 수학에 대한 교사 학습 공동체는 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있어도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연구의 하위 수준에서, 3R의 영역에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혹은 수학과 연계된 놀이, 게임, 소프트웨어 등등등, 어찌보면 응용수학 범주에서의 교사 학습 공동체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어린이들이 주눅들어하거나, 미적 표현이 서툴다고 움츠러들지는 않는 것을 봅니다. 어린이들이 기운없어하고 멍하게 되는 과목으로 수학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어린이들과 일대일로 면담을 해도, 자신을 수포자로 표현하는 학생은 한 해에 한 두 명 꼭 만나지만, 자신을 국포자니, 미포자니, 음포자니 표현하는 어린이는 지금까지의 교직 경력에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을 힘들게 하는 과목 중 대표적인 과목이 수학인데, 많은 교사들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피하는 것.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수학 교과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저 문제 풀이에만 골몰하는 것, 이 어린이가 수학 과목을 재미있어하는지 재미없어하는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주어진 문제를 다 풀면 매우 잘하는 학생으로 평가하고 마는 것에 그친다면, 그저 빨리 풀어버리는 것에 몰두하는 어린이로 만들 뿐입니다.
다른 과목, 다른 영역에 대해 어린이들이 이렇게 여기면, 어떻게든 재미와 흥미를 알려주려고 부단히 연구하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데, 왜 수학은 마치 문제집을 풀어야 어느 정도 수준이 완성될 것 같이 뭔가 조금 빠진 것 같은 교과용 도서를 풀리는 것만 능사인 것처럼 교과 시간을 운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주어진 문제를 다 풀게하면 교사의 할 일이 끝나는 것일까요? 혹시 그런 경험은 없으십니까? 글쓰기를 시켰더니 짜임에 맞게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를 잘 적어 냈지만, 너무 매끄러운 나머지 의구심이 들어 괜시리 어린이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든 적 같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학은, 교과용 도서 설명해 준 후 수업 나머지 시간에 나머지 교과용 도서 문제 및 익힘책을 풀리고 나서, 너무 매끄럽게 풀면 '어이구, 잘 하네. 다행이다'라면서 자유시간을 주진 않습니까?
교사의 공부가, 이미 선행학습을 통하여 교과 내용을 다 배우고 온 어린이들에게, 사교육에서 던지지 않는, 수학적 사고를 추동할 수 있는 문제 상황에 대한 고민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교과용 도서가 그런 질문을 담고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교사 수준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도, 이 곳에서의 공부가 처음인 학생들도, 모두 솔깃할 수 있게 만드는 질문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문제 풀이는 학생들이 합니다. 물론, 교사가 수학 공부를 잘 하면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교사가 하나하나 다 풀어보지 않더라도, 좋은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은 수학의 매력에 푹 빠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매 학년, 첫 수학 시간에 아브라함 발드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비행기를 보강해야 하는 곳은, 통계적으로 총알을 가장 많이 맞은 부위가 아니라, 총알을 가장 적게 맞은 부위라고. 왜냐하면 총알을 가장 적게 맞은 부위는, 비행기를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 통계에 포함되지 못한, 가장 치명적인 부위이기 때문에. 그저 주어진 수가 가진 의미를 일차원적으로 풀어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수가 의미하는 바를 탐색하여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수학적 사고라고.
지금의 것을 잘 하고 있다고 만족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수학이야말로, 지금의 것을 잘 한다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그저 문제의 글자수만 길어지고, 풀이의 복잡도만 증가하는 방식의 (심화 같지도 않은) 심화 수준의 문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의 수학적 사고를 가다듬을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학 공부를 꾸준하게 이어가야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