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교사] 6. 특별한 시행착오
초등학교 때는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소년잡지에 연재되던 '맹꽁이 서당'을 즐겁게 읽기도 했고, 윤승운 화백 그림체를 따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 나온 단재 신채호 선생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역사학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 꿈은 역사학자였습니다. 비록 중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별로 마뜩찮아 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첫째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잖아도 인생의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하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법조인이 되어서 자신의 위상을 드높여주길 바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생각이 그냥 싫었던 저는, 법조인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싫어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저의 생각은 원서를 쓰던 때 부닥치고 말았습니다. 타협으로 법학과도 사학과도 아닌 영어영문학과 원서를 썼습니다. 둘 다 서로의 것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면서, 그래도 문학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 듯 했는데, 어학은 도통 적응하기가 쉽잖았습니다. 어학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조금 더 했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학비를 해주시지 못하게 된 집안 사정 덕에, 학원은 커녕 학비와 제 생활비를 벌어대느라 이는 꿈도 꾸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처럼 공부를 빡세게 해서 장학금을 받을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저는 과외해서 번 돈으로 학비를 댈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비틀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입학 3년 만에 휴학했고, 다시 수능을 본 후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덕택에 다니던 회사를 조금 더 쉽게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도화선은 저희 팀 파트장이었던 차장님의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넌 학벌도 좋고 능력도 있잖아. 회사일과 관련없는 쓸데없는 거 좀 멀리하고, 한 5년 정도만 죽었다 생각하고 회사일에 충성하면 앞날이 평탄하지 않겠어?'
제가 회사를 들어간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인 문학 평론 쪽 공부도 좀 하면서, 아마추어로 활동하기 위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생각이 컸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후, 퇴근해서는 자기계발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는 그런 꿈. 그런데, 막상 회사는 그럴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선임들이 승진과 함께 주말에도 라운딩 다니며 인맥을 가꿔나가는 것을 보면서, 회사는 개인의 여윳시간도 이런 방식으로 야금야금 갉아먹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차장님의 한 마디는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사한지 3년 2개월이 가까와지는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하다가 간혹, 저와 연배가 비슷한 교사들의 안정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이제서야 저경력 교사를 벗어나서 학교와 교실의 돌아가는 사정에 익숙하게 된 제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서른 여덟에 첫 발령이 나서, 이제 만 8년 근무한, 동년배의 교사들보다 약 15년 정도 늦은 경력과 급여의 초등교사. 처음부터 교대에 진학해서 스물 네 살부터 교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
그러다가도, 그저 조금 돌아온 길이 단순한 시간 낭비는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잠시 돌아오면서, 직장 생활을 통해 조직이 돌아가는 모습도, 이런저런 직무에 관련된 과업들도 경험해 보았고, 어려운 사정에 이런저런 학생들을 개인지도하면서 배움에 관련된 많은 케이스를 경험하기도 하였으며, 대학을 스물 한 학기나 다니면서 강의도 다른 사람들의 두 배 반은 들었으니, 이런 것들이 다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들에 기인한 제 태도가 저희 반 어린이들에게도 투사되곤 하는 모양입니다.
작년 저희 반 어린이 하나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 말은 정말 저에게 와 닿았고 선생님에게 믿음이 생기게 한 말이에요.'
이 어린이가 이런 이야기를 제게 쓴 것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심 시간에 교실에 있는데, 저희 반 어린이들이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선생님, 지금 여자애들끼리 말다툼이 났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다른 반 선생님들이 부재중이라, 제가 내려가서 이 어린이들을 조용히 불러 내었습니다. 우리 반 어린이 하나 포함, 아홉 명의 어린이들이 다섯 대 넷으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 뉘앙스와 표정 때문에 쌓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명확한 발화점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짚어주며, 결국 친구의 말투와 행동, 표정을 잘못 '해석'한 오해가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하며, 아마도 '뭐,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지'라고 말한 듯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생님이 너희들의 해석이 팩트에 기반한 것이 아닌, 편견과 선입견에 기인한 것임을 명확하게 밝혔으니 이걸 인정하겠느냐 묻고, 다음에는 정말 확인된 말과 행동으로 싸웠으면 좋겠다고, 그게 아니라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돌려 보냈습니다.
그 후에, 사실은 약간의 찝찝함이 있었습니다. 매뉴얼대로 처리했어야 하나... 너무 이런저런 사정을 본 것은 아닌가... 그런데 이후 그 아홉 명의 어린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방과후에 함께 다니며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며, 가졌던 찝찝함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아마 제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다면 우리 어린이들에게 결코 할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여러 학부모께도.
저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 중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장 28절)'는 구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성경의 의미대로 풀자면 하 세월이 걸릴 터라 이 글의 취지에 맞지 않겠기에, 이 구절의 요만 간단하게 두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결국 도를 깨닫고 나면 이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히 달려온 모든 것과 아무 상관도 없음에 허탈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해 온 그 부질없어 보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깨달음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잘못을, 죄를,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무조건 보듬어 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넉넉하게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일도, 우리는 혹여라도 지금 이 순간의 판단과 행동 덕택에 완전히 어그러질 수 있다는 섣부르고 과도한 우려와 염려로 그저 지나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어린이들이 잘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항상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쓰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이런저런 생각과 행동을 항상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면, 어떤 순간에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는 그러지 마.'라고 슬쩍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정확하고 분명한 지적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생각하고 돌이키는 시간에 대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까지, 교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시간은 더 걸리고, 혹여라도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나쁘게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지적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맡겨 잘 해결된다고 해서, 그 어린이가 교사의 노력과 노고를 알고 고마와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교사의 믿음과 지지가 우리 어린이들의 시행착오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