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7. 따로, 바로, 직접
따로, 바로, 직접
(지금도 물론 젊지만, 더) 젊을 때,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다니던(는) 교회 안에서 그런 조언들이 오고 간 적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굴을 앞에 두고, 직접"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그것이 뒤로,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아야 관계의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조언입니다. 그 이후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조심스럽게, 직접, 면전에서 이야기하려고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스스로가 어른이다보니,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 아이들의 여러 행동, 아이들의 오만가지 생각이 드러나는 모습 속에서, 때론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버거움을 느껴 하시는 것을 학교 현장의 옆에서 보곤 합니다. 간혹 저도 그런 것을 느끼구요.
그런데 그런 버거움을 생각으로만 느끼고 멈추면 그로 인한 오해를 키우게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오해는 항상 감정의 뒤틀림을 만들죠. 내 입장에서 남의 행동과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다보니 그런 감정의 뒤틀림은 명확하게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가서 닿을 때 서로의 오해가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는 어른과 어린이가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는 공간입니다. 교육의 공간이고, 교육의 잣대로 버거움을 해석할 여지가 굉장히 큰 공간이기도 합니다. 즉, 교사의 교육철학과 교육관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규정할 가능성이 큰 공간입니다. 그런 배경 아래에서, 교사가 학생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더 심하게 뒤틀어질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 피해는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또한 학생들에게도 미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마음 속에 무언가 잡음이 들리면, 지체하지 않고 아이를 불러야합니다. 그것을 망설이면, 그 다음에 미루어 짐작하게 되고, 감정의 뒤틀림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불러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무슨 일인지, 어떤 문제인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가 아이들에게 잃지 않으려는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교실에 있을 때, 아이 중에 하나가 울면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묻습니다. 무슨 일이니? 그러면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고, 까닭이 나옵니다. 그것을 듣고 바로, 상대방 아이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다른 말 보태지 않고 묻습니다. 무슨 일이니? 그렇게 불려온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이 하나가 선생님 앞에서 울고 있고,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는 상황이라면, 대충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절대로 앞의 아이에게 들은것을 바탕으로 캐묻지 않습니다. 먼저 묻고, 불려온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판단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을 뻔 한 여러 경우를 잘 넘긴 적이 많습니다. 우는 아이의 말이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상대편 아이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나름대로의 이유와 까닭, 혹은 오해가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다가 확인할 이야기가 있으면 서로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아이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다보면 대강 접점이 나옵니다. 제가 판단할 필요도 없이, 서로 오고가는 이야기 속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윤곽이 나오고, 아이들 스스로 그것을 느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때 교사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 분명하게 상황을 정리해줍니다. 실은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다 한 것인데, 교사가 명확한 언어로 정리해주면 아이들도 명확하게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교사가 객관적일 수 없겠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집에서 실수할 때가 그런 때인 듯 싶습니다. 예컨대, 큰 아이의 말만 듣고, 작은 아이를 불러서는, 언니가 그러는데, 너 그랬대매? 그러면 되겠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미 결론이 다 내려져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채근하려고 부르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쟤가 그러는데, 너 그랬대매? 라고 시작하기 보다는, (쟤가 뭐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차근차근 확인하고 일단) 너는 무슨 일인지 말해봐, 로 시작하는 것이 아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첨언하면, 그렇게 오고가는 이야기를 모든 아이들이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간혹 수업 시간에 아이에게 직접 확인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아이를 따로, 바로, 직접 불러서 교실 바깥에서 확인합니다. 이것은 아이를 수업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즉시로 이루어지는 아이와의 일대일 대화입니다.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묻고, 아이에게 필요한 조언을 즉시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의 행위입니다. 물론 수업에 약간의 딜레이가 있지만... 수업 만큼, 아이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상태도 중요합니다.
더하여, 다른 학급의 아이들이 어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다 알 필요도 없고, 어떤 아이때문에 힘들게 된 교사의 마음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발령 첫 해, 중간 담임을 맡게 되면서 아이들과의 면담 중에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전 담임 선생님께서, 몇 아이가 잘못한 상황인데, 항상 교실에서 모든 아이들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을 앞에 두고 몇 아이들의 잘못을 오래도록 나무라신 것 때문에 그게 항상 너무 힘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전 선생님의 그런 부분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저는 아이들의 사연을 바로, 직접, 따로 들은 후에 조언하려는 마음가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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