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선하다 #8. 말대꾸 스킬은 진화중
우리 딸은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학교 가는 날 아침은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정한다.
빵이 되기도 하고, 비비X 새우볶음밥이 되기도 한다.
유부초밥도 그런 메뉴 중 하나이다.
유부초밥을 만들 수 있게만 해주고 출근할 수 있어서 나도 은근히 좋아하는 아침 식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딸아이는 손에 묻니 어쩌니 하며 유부초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대신 내가 만들어주고 가면 먹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얄밉고 화가 났지만,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아 내가 조금 부지런을 떨기로 했다.
“엄마, 나 아침 뭐 먹어?”
“유부초밥 먹는다며.”
“만들어 놨어?”
“........”
오늘 아침 메뉴가 바로 그 유부초밥이었다.
어제 저녁에 미리 합의해놓은 메뉴였다.
딸 아이는 눈 뜨자마자 자기 아침이 뭐냐고 물었다.
어제 얘기한대로 유부초밥이라고 했더니 만들어 놓았냐고 했다.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이게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지가 손에 묻히기 싫다 해서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눈 뜨자마자 그걸 해놓았냐 묻는 딸 아이가 너무 꼴 보기 싫었다.
화내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딸 아이도 엄마가 자기 아침밥을 차린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괜스레 강아지 구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순간 욱했지만 분명 지 나름의 원리로 나에게 대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조용히 화를 삭이며 유부초밥을 열심히 만들었다.
부엌에 한참 서서 일하고 있는데 아까 일어났다는 딸내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일어나.”
“일어났어.”
“그게 뭐 일어난 거야. 눈 뜨고 침대 앉아 있는 거지.”
“잠에서 깼으면 일어난 거지.”
“아, 빨리 나와서 세수하고 옷 입으라고! 말장난하지 말고!!!”
나는 나와서 세수하고 학교갈 준비하라는 말이었는데, 딸 아이는 자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딸 아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일어나라는 말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일어라나고 하는 말은 얼른 준비하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 자기는 잠에서 깼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대꾸하며 맞서는 것이다.
유부초밥 사건으로 아침부터 성질도 났겠다, 냅다 소리를 질렀다.
부엌 창문이 열려 있어 아랫집에 밍기적대는 아이가 있었다면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사자후였다.
‘하…. 그냥 좀 조용히 일어나 준비하면 안 되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고, 아마 우리 딸도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화장실로 갔을 것이다.
얼마 전, “엄마, 내가 욕 안 할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라고 묻지도 않은 고백을 한 것은 나를 향한 경고였으리라.
아침부터 자기 꼴 보기 싫은 나에게 딸 아이는 또 쭈뼛쭈뼛 와서 말을 걸었다.
이상한 털옷을 입고 나타나서 이렇게 입고 가면 되냐는 것이었다.
“니 마음대로 해. 뭘 물어봐.”
“너무 더우려나? 지금 안 추워?”
“너 벌써부터 털옷 입으면 진짜 겨울에 뭐 입으려고 그래?”
“그럼 뭐 입어?”
“저 민트색 야구 잠바 입어.”
또 그렇게 은근슬쩍 화해라는 걸 해버렸다.
유부초밥 먹는 딸을 보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아 추워. 이건 차가운 츄리닝 바지네. 따뜻한 츄리닝으로 바꿔 입고 가야겠다.”
“엄마! 벌써부터 따뜻한 바지 찾으면 겨울에 뭐 입으려고 그래?”
그렇게 딸내미는 말대꾸 스킬을 하나 더 장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