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선생님 #5. 신세대 엄마
카트라이더 게임이 다시 유행이다. 20대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게임을 이 나이에 깔아놓고 신나게 즐기는 중이다. 게임에 열중하다 보니 다소 나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물론 상스럽게 욕하는 것은 아니다.
“너넨 이제 X졌다.”
뭐 그 정도? 그때마다 옆에서 우리 딸이 말한다.
“엄마, 바른말.”
딸내미는 내 언사를 지적하고서 한 마디 덧붙인다.
“엄마, 난 엄마가 신세대라서 좋아.”
사실, 우리 딸이 지적한 나쁜 말은 옆에 아이가 있는 것도 모르고 내뱉은 말이 아니다. 딸내미 한번 웃겨 주려는 엄마의 유치하지만 작은 노력이다. 딸내미도 속으로 ‘우리 엄마 참 애쓴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예쁘게 말하라고 지적하고서 그런 엄마가 좋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딸내미는 6학년이 되더니 부쩍 엄마가 젊은 감각이라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이럴 때이다.
“방토 먹어라, 방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우리 딸은 방토가 뭐냐며 웃는다. 친구 엄마 중에 방울토마토를 방토로 줄여 말하는 분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괜히 우쭐한다. 6학년 담임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다.
4학년을 담임했을 때였다. 아이들이 참 예뻤다. 왜 황금 학년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아쉬웠다. 개그 코드가 맞지 않는달까? 나는 농담이라고 던진 얘기에 아이들이 잘 웃지 않았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말이 통한다.’ 6학년 담임이 힘들어도 매력 있는 이유이다.
품 안에서 놓칠까 무서울 정도로 작던 아가가 어느새 자라 6학년이 되었다. ‘우리 엄마 성격은 왜 저 모양일까?’ 속으로 욕도 했을 테고, 무뚝뚝하게 툭툭 내뱉는 말에 상처도 많이 받으며 컸을 것이다.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 말에 시무룩해지는 딸내미를 보며 미안했던 적도 많다. 그러면 나도 속상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그런 오해의 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제는 오히려 야단쳐도 능구렁이처럼 받아넘기는 통에 내 속이 뒤집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6학년 담임 경력 9년이 우리 딸이 6학년 되어 빛을 발한다. 문자에 ‘ㅇㅇ’이라고 답하고, 같이 게임하자며 게임 앱을 깔라고 독촉하는 엄마. 6학년 아이들과 교실에서 부대끼며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들이 나를 친근한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우리 딸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바탕 웃고 나서 또 한마디 할 것이 분명하다.
“엄마, 난 엄마가 신세대라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