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등단기 #7. 너희도 어른 돼 봐.
지난 목요일 6교시 알림장 쓰는 시간. 순간, 나는 아주 다급해졌다.
”맞다!!! 얘들아, 이번 주 수필 주제 뭘로 하지?”
“그냥 자유 주제 해요.”
“아 안 돼요. 자유 주제 하지마요.”
“어,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소개 이런 걸로 할까?”
“아니요. 그런 건 재미없어요.”
“맞아. 재미없어.”
“재미없어요”
아이들에게서 이 말이 나올 줄 몰랐다.
“그치? 재미없지? 그래 선생님도 그런 글 진짜 재미없더라.”
“맞아요. 재미없어요.”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띄엄띄엄’ 봤나 보다. 나는 아이들이 수필을 억지로 쓴다고 여겼고, 그래서 아무 주제나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억지로 쓰는 건데 주제가 무엇인들 신경이나 쓸까 싶었다. 그런 아이들 입에서 주제가 재미없다는 말이 나오다니…. 나는 그 말을 다른 재미있는 주제가 있다는 말로 들었다. 또, 어떤 주제로는 글 쓰는 게 재미있다는 말로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큰 행복이 밀려왔다.
원래는 목요일쯤에 미리 수필 주제를 써줘야 한다. 그런데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아이들에게 다음 날 쓰자고 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다.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또 허승환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1학기 때 올려주신 글쓰기 주제 중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있나 살펴보았다.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금요일 6교시에 알림장을 쓰며, 이 주제가 어떠냐고 물었다. 너도나도 이런 건 이해하기 힘들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주말 내내 아이들 수필이 올라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다른 때는 월요일 교과 시간에 검사하려고 그때그때 열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수필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하나씩 열어 대충 읽어보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월요일, 아이들을 교과실로 보내고 한 편씩 천천히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쓴 모든 글에 반성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사실 진짜 반성을 하기도 했다.
진짜로 이해 못 해!
혼날 때 이해 안 가는 말은, “아빠는 공부 잘 했어”라는 말이다. 티비 보다가 내가 “아빠는 공부 잘 했어?” 하니깐 아빠는 “못 한 적이 없지. 아빠는 잘 했지.“라고 말한다, 나는 이미 아는데, ”유행하는 노래, 춤도 아빠 알지.“ 한다. 내가 갖고 싶은 게 있는데, 꼭 다음에, 다음에 사준다고 그런다. 엄마는 요리를 하고, 나한테 억지로 맛있지? 한다. 내가 하기 싫은 것 엄마, 아빠도 싫어하는 걸 나보고 그냥 하라고 한다. 정말 하기 싫다. 이해가 안돼.
혼내는 문자가 올 때 오늘 ”너 죽었어.“하는데, 집에 가면 엄마가 OO야 ~ 상냥하게 부른다. 뭘 잘했다고 우냐고 해서 웃었는데, 뭘 잘했다고 웃냐고 말하는데, 이해가 안 간다. 엄마랑 싸우면, 엄만 항상 ”누구 닮아 가지고.“ 그런다. 엄마들이 말에 아주 그냥 못 살아 하는데 산다. 엄마가 “이제 맘대로 해.” 해서 맘대로 했더니 뭐라, 뭐라 했다.
추석 때 친척들이 다 모여있는 곳에서 엄마가 갑자기 뜬금없이 “우리 OO는 자기가 알아서 다 해요.” 그래서 내가 다 뻘줌했다. 고모가 자기 아들 자랑하는데, 갑자기 대놓고 비교를 한다. 정말 이해 안 가고 화가 난다. 갑자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을 시키는데, 춤을 친척들 앞에 춤 춰 보라고 하는데 짜증이 났다. 그러고선 너는 어쩜 그거 하나 못하냐고 그런다. 이제 집에 가는데, 고모가 용돈을 주시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이참 안 주셔도 돼요.” 그러는데, 속으로 엄청 화가 났었다.
아빠가 설거지할 때, “어휴 안 해도 돼.” 하는데, 속으로는 좋아한다.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이혼해.” 하는데, 다음 날에 보니깐 둘이 껴안고 있다. “당신 못 됐어.” 그러고선 좋아하고, 어디 가서 남편 자랑을 한다. 엄마가 화나서 나갈 때, “안 들어 올 거야.” 하고, 새벽에 꼭 들어온다. “말 안해.” 하고선 말한다.
엄마들 수다 떨 때, 시댁 뒷담 깐다. 그러고선 언제 그랬냐 싶게 모른 척 한다. 자기 애들 막 우리 애들은 머리 냄새 난다 그러곤 완전 아무도 모르게 비밀 한다. 엄마들이 애들 놀 때 지금 공부해야 나중에 좋아, 그런다. 13살 6학년 보고 “아직 애기야 애기.” 하는게 정말 이해가 진짜 안 간다. 서로 아쁘다고 그러면서 집에 와서 거울 보면서 “내가 더 이쁘네.” 그런다. 마지막 남편 뒷담을 엄청한다. 집에 와서 남편한텐 엄청 잘 해주고, 모른 척 한다.
놀러 가서 엄마가 “힘들어.” 하는데 표정은 밝아 보인다. 집 가기 싫어해 놓고, 집에 도착하면 “집이 최고야.” 그런다. 기념품 샵에서 “여행 왔을 땐 돈 써야지.” 해놓고 제일 아끼는 사람 엄마다. 눈치 보지말고 놀라면서 눈치 보이게 한다. “돈 받으면 너 가져.” 그러고, 다 가져간다.
쇼핑할 때 “쇼핑은 지르는 거야.” 하고선, 하나도 안 산다. 엄마가 내 거 살 땐 엄청 힘들어 하면서, 가자고 하면 엄마 거 볼 땐, “난 안사냐?” 그런다. 엄마가 사준 거 있는데, 이제 와서 너무 많이 샀다 그런다. 이쁘다고 사 놓고 환불한다.
흔한 말 타임. 살아보면서 꼭 한 번씩은 짝사랑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런 거 안 했다고 그런다. 내가 틴트 연한 거 바르는데 엄마가 너 그대로가 이쁘다고 그런다. 내가 사달라고 할 때, “니가 사.” 그러는데, 학교 갔다 오면 소파 위에 갖고 싶은 걸 사 놓는다. 엄마가 다른 사람 보면서 치마 짧다고 그러고선 그 사람 앞에선 착한 척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8시 10분이라면서 7시 30분이다. |
글 형식 면에서는 훌륭하지 않은 글이다.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각 문단에 중심문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문단 구분을 왜 했나 싶다. 하지만 내용은 참 재미있다. 아이들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아이들 글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모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아주 잘 찾아낸 것 같기도 하다. 관찰력도 굉장하다.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
나는 이 주제가 너무 좋다. 지금까지 나의 속을 털어놓는 수필이 될 것 같다. 우선 나는 차라리 회사 갈 바에는 학교를 간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학교에서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지루해도 공부 해야 하는 우리 마음을 절대 모른다. 나는 오히려 회사를 다니면 돈 받을 생각에 들 떠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6~8살 때 귀에 딱지 앉게 들었던 말 중 하나인데 그것은 “고집피우지 마.”이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보고 이해가 안 될 듯하다. 왜냐면 고집 피우는 것은 아주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 말고 말을 하는 부모님들이 고집 피우는 것이다. 옛날에도 아빠랑 수학 정답 가지고 싸웠다가 결국 혼났는데 아빠도 어떻게 보면 그때 아빠의 주장만 내세운 것 같다. 답이 맞든 틀리든 중요한 건 존중이니까.
세 번째는 자유시간을 주고서는 핸드폰 티브이 등등 전자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내가 자유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읽으란 책 풀라는 수학 문제까지 다 해내서 얻은 중요한 시간인데 나무한 것 같다. 자유시간까지도 쉬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도무지 납득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자유시간을 가지고 싶다. 아니면 자유시간이라고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은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하는데도 우리(어린이)를 가끔 무시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내 아들로 좀 태어나면 좋겠다. 그러면 아빠도 내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우리를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는 어른과 어린이의 개념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어른들을 따른 만큼 어른들도 우리를 조금이라도 따르거나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른들의 행동을 빼먹을 뻔했다. 그 행동은 바로 우리가 공부할 때는 나와보지도 않더니 쉬려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오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나는 이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건 그 반대가 되어야지 맞을 법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들이 제발 이런 행동을 고쳐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두 번째로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의 행동은 바로 약속이다. 물론 솔직히 우리보다 어른들이 보통 약속을 잘 지킨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 지키라고 하던 부모님이 약속을 어길 때면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다. 우리에게 그렇게 민감하고 예민한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해는 더더욱 안 되는 행동이다.
항상 나는 어른들의 이런 비겁한 행동에 대해서 매우 불만이 많다. 솔직히 13살이면 웬만한 건 내가 다 알아서 할텐데 굳이 참견해서 문제점을 어떻게 해서든 발견해내려는 어른들이 싫다. 물론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어른들이 자기 생각을 다른 어린이에게도 집어넣으려는 것이 싫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걸 간략하게 설명하면 제발 우리들의 생각도 조금 반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우리도 하게 해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닌데 왜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린 모두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 살아간다. 그런 행동은 좋은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남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제발 우리 어린이들도 생각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이 아이 수필의 첫 문단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을 보고 ‘됐다.’ 싶었다. 나는 아이들이 수필을 쓰며 한 번씩 자기 감정을 분출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번 주 수필 쓸 때 기분이 어땠냐고 말이다. 대다수가 너무 후련하다고 했다.
아이들 마음을 읽은 김에 아예 설문 조사를 해보았다. 수필에 나온 내용 중에서 32개를 골라 어른들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골라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폭풍 공감하며 설문에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를 공유하려고 한다.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
1위: 내 계획이 있는데 자꾸 잔소리 하신다.(책상 정리 후, 목욕할 건데 계속 목욕하라고 하심. 숙제 알아서 할 건데 미리미리 하라고 하심.)
2위: 야단맞아서 울면 “뭘 잘했다고 울어!”라고 야단치시고, 안 울면 “어디서 빳빳하게 고개 들고 있어!”라고 하신다.
3위: 꼭 재밌게 놀고 있을 때 숙제했냐고 물어보신다.
4위: 엄마(아빠는) 하면서 나는 못 하게 하신다,(TV 보기, 스마트폰 보기 등)
5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를 돌아보고 아이들 마음을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가 이래서 수필 쓰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재미없어요.”라고 제일 처음 말해서 나에게 큰 감동을 줬던 그 아이는 자기 집의 장단점이라는, 이번 주 주제랑 전혀 상관없는 글을 썼다. 배신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 이야기를 쓴 아이들 글에 나도 반성한다는 댓글만 쓰지 않았다. 너희도 어른 돼 보라고 악담(?) 한 마디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희도 어른 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