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등단기 #3. 창작의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는 법
아이들은 글쓰기를 대체로 싫어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글을 쓰게 하려면 마중물과 펌프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기 초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마중물로 던지는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선, 저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복습 노트 쓰는 방법을 알려주긴 하지만 억지로 걷어서 검사하지 않습니다.
숙제도 거의 없습니다.
학기 초,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이 1년 내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욕심내서 끌고 갈 건 ‘글쓰기’ 하나라는 것을요.
그리고서 수필 쓰기 지도를 시작합니다.
매해,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에 크게 감흥이 없어 보였습니다.
글 쓰는 연습을 하지 않은 어른들이 겪는 고충과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열심히 이야기해 보았지만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 선배들의 업적(?)
사실, 아이들의 수필이 아까워 책으로 만들어 본 건 재작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아 작년에는 하는 방법만 알려주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게 아쉽고 미안해 올해는 꼭 책으로 만들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다행히, 재작년에 만든 아이들 책을 제가 한 권씩 사둬서 올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뭘까요? 여러분 선배들이 자기가 쓴 수필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우와~”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아이들이 감탄했습니다.
1년 동안 쓴 글이고, 책 표지며 제목이며 전부 선배들이 직접 고른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이트에 들어가 이름을 검색하면 저자 OOO이라고 나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1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시험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지만, 수필쓰기 하며 향상된 글쓰기 실력이 수행평가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준 선배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졸업한 아이들 중에 정말 그랬다고 이야기한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2.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의 증언
http://uberin.co.kr/view.php?year=2018&no=169053
MIT 공대와 하버드대 학생들이 대학 시절 가장 도움이 된 수업으로 ‘글쓰기’를 꼽았다는 기사입니다.
저 대학에 다닌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학교라는 것은 대다수가 인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조하고, 실제로 그것이 졸업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보니 아이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사에는 두 대학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담임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아이들 마음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3. 우리의 문학 수업
대학원 시절, 대학까지 나온 어른들 리포트가 왜 이러냐고 교수님께서 역정을 내신 적이 있습니다.
아예 리포트 쓰는 법으로 1시간 강의하실 정도였습니다.
대학 때부터 서술형 평가와 리포트 작성에 익숙한 사람들이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저의 이런 경험과 글을 잘 쓰면 좋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며 1년 여정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눈은 ‘멍~’, ‘그래서 어쩌라고?’
그때 필요한 것이 선배들이 만든 책과 신문 기사여서 몇 년째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한 가지를 더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문학 수업’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부산에 있는 만덕 고등학교 문학 교사, 조향미 선생님이 쓰셨습니다.
조향미 선생님은 고등학생들에게 8천자 서평 쓰기와 소설 쓰기를 지도하시고 그 과정을 책으로 엮어내셨습니다.
그때 그 아이들의 단편소설을 모아 ‘작전명 진돗개’라는 책도 함께 만드셨습니다.
두 책은 서로 짝꿍입니다.
조향미 선생님의 문학 수업을 들여다보면 전율이 느껴집니다.
글쓰기라면 인상부터 쓰고 보는 고등학생들이 글 쓰는 것을 즐기게 만드셨습니다.
격려도 하시고, 야단도 치시면서요.
우리 반 25명 내외 글 한 편씩만 읽어도 눈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문학 수업으로 들어가는 반 아이들 글을 전부 첨삭하셨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의 당근과 채찍에 대부분 과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결국 대학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 안타깝지만, 선생님의 수업을 열심히 따라간 친구들이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만덕고가 있는 지역은 강남 8학군은커녕 부산 8학군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문학 선생님 가르침을 따라 학교생활 충실히 하며 얻어낸 소중한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그 정도 결과물을 바라기는 힘들지만, ‘우리의 문학 수업’ 속 교실이 제가 꿈꾸던 모습 중 하나라 책 속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아이들 글쓰기 시작을 위한 마중물로 ‘우리의 문학 수업’ 책까지 보태 세 가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이들이 수필을 잘 씁니다.
하지만 금요일 알림장에 ‘수필’ 두 글자만 써도 한숨 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벌써 두 달이 지났으니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꺼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끝까지 파이팅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