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선생님 #4. 생일파티
나는 요리를 못 한다. 딱히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근까지만 해도 말이다. 딸 아이가 식자재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해본다. 실제로 우리 딸은 파프리카나 당근 같은 채소를 조리하지 않은 채 먹는다.
13년 가까이 버티다 드디어 위기를 맞았다. 곧 생일을 맞는 딸 아이가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해달라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음식을 시켜줘도 되고, 아이들 좋아하는 치킨, 피자로 상을 채워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생일, 친구들 불러 축하하는 자리에서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으로 딸 아이 어깨에 힘 한번 실어주고 싶었다.
거사를 3주 앞두고 수련에 돌입했다. 인터넷 레시피만 있으면 두려운 것이 없었다. 봉골레 파스타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간단한 줄도 모르고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게 후회스러웠다. 내 생애 첫 파스타! 별로 들어간 것도 없는데 딸 아이가 맛있게 먹어 주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파스타면 되겠다 생각했다.
D-day. 취향도 성향도 다른 여자아이 셋이 우리 집에 왔다. 자주 봐서 친근한 아이들이었다. 놀러 올 때마다 햄버거나 짜장면만 주야장천 먹이던 아이들이었다. 괜히 내 요리 대접한다고 덤볐다가 6학년 어린이들의 솔직함에 마음에 상처만 입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창 크림 파스타를 완성해갈 때쯤 딸 아이가 말했다.
“얘들아, 여기 와서 봐봐. 우리 엄마 파스타 엄청 맛있어 보여.”
다른 집 딸내미 셋이 우르르 달려왔다. 주책맞은 우리 딸이 살짝 야속했다.
‘맛없으면 어쩌려고….’
다 된 음식을 큰 접시에 담아 상 가운데 놓아주었다. 배달 피자 오기 전에 적당히 덜어 먹고 있으라고 했다. 어지른 부엌을 정리하는데 들려오는 소리.
“와! 맛있다.”
“나 크림 파스타 잘 안 먹는데 맛있어.”
아 그 뿌듯함이란!
“엄마! 다음에 친구들 놀러 오면 또 해줘.”
딸 아이 말에 당연히 그런다고 대답해주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6학년 때 엄마를 졸라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 당시 우리 엄마도 지금 나랑 비슷한 수준의 요리 솜씨 보유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엄마에게 굳이 집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달라고 했다. 우리 딸은 양심적으로 딱 3명만 초대했지만 나는 우리 반 친구 절반 정도를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에게 떡볶이를 해주셨다.
엄마가 집에서 떡볶이를 해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잔뜩 기대하며 한 입 넣는 순간 나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매워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내 친구 정욱이는 맵다는 말 한마디 안 했지만, 연신 물을 찾아댔다. 기껏 초대했는데 인생의 매운맛만 보여준 것 같아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극강의 매운맛을 참아가며 우리 엄마 떡볶이를 먹어줘서 고마웠다.
미친 듯이 매운 떡볶이 때문에 당황했지만,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살아내느라 바빴던 우리 엄마가 얼마나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지 나는 알았다. 그날 우리 엄마 마음도 며칠 전 내 딸 아이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내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딸내미가 잘 알아서 한다는 이유로, 믿고 맡긴다는 말로 포장해 아이를 방임했던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생일 파티해달라는 딸 아이 첫 마디에 흔쾌히 그러자고 답하고 만 것이었다. 파티가 끝난 저녁, 딸 아이가 나에게 한 고맙다는 말이 나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 수필에서 생일 파티한 이야기를 종종 본다. 생일 주인공인 아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내가 딸 아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아이들이 내놓은 수많은 물컵을 설거지하며 문득 생각했다.
‘오늘 우리 딸 일기장엔 어떤 내용이 담길까?’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딸도 그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생일 파티를 준비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