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등단기 #6. 정해진 틀 안에서 자유롭게(주제나 글감 정해주기)
(공개하는 모든 글은 아이들 동의를 얻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유 있는 교사가 되어간다. 물론 아이들은 못 느낄 수 있다. 14년 전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점점 아이들을 덜 옥죄는 교사가 되는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빡빡한 규칙을 만들어 놓고 일일이 점검하는 게 귀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행동이 아니면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 쓸 때도 자유롭게 해주기로 했다. 일기 쓰듯 편하게 쓰되, 주말에 한 일만 주야장천 쓰지 말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쳐보라고 했다. 문단 수, 각 문단 문장 개수만 지키고, 개요만 미리 짜고, 제목만 쓰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전혀 자유가 없는 글쓰기 같은 느낌이….) 어쨌든 아이들은 뭘 쓰든 ‘자유’였다. 이렇게나 민주적일 수 있는 나한테 놀라며, 아이들도 좋아할 거라 믿었다.
“선생님 그냥 주제 정해주시면 안 돼요?”
이게 웬일인가! 아이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주제 좀 정해달라고 했다. 몇 주 자유 주제로 글을 써보니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속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한테도 아무 주제나 가지고 매주 글 한 편씩 써보라고 하면 머리가 하얘질 것 같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다. 매주 주제를 써주긴 하겠지만, 그 주제가 싫으면 다른 걸 써도 된다고 했다. 협상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마냥 자유로움을 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담임 선생님이 통제할 수 없어 마냥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반에 있다가 그렇지 않은 반에 속하게 되면 아이들은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규칙과 통제가 전혀 없는 자유가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안다. 글 쓸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대로 써보라고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주면 아이들이 더 쉽게 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은 편안하고 말랑말랑하게’
이것이 참 쉽지 않다.
글감은 다른 선생님들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올해는 허승환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내용을 많이 빌려 썼는데 아이들이 대체로 좋아했다. 허승환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공유해주신 주제는 보통 월별 이슈와 관련이 있다. 3월은 새 학기, 5월은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등이 그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쓰기의 순기능 중 하나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인데, 글쓰기를 하며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새 학기에는 아이들이 새 교실에서 느끼는 점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이 담임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3월 첫 주제는 ‘새 학기’, 5월 스승의 날 관련 주제는 ‘보스를 찬양하라.’였다. (아이들이 나를 보스라고 부른다.)
6학년 (강시현)
나는 이제 5학년을 끝내고 6학년이 되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친구들이 꽤 있었다. 얼굴이 낯익은 친구들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도 보였다. 또 연경이는 나와 3년 절친인 친구인데,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또 5학년 때 양건민과 이강타와 6학년에 같이 올라왔다. 그리고 겉모습만 봐서는 모르지만 친해지고 싶은 친구도 생겼다. 앞으로 말도 많이 걸고 많이 친해져 봐야겠다!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조금 있었는데 뭔가가 안심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 카리스마 있으시고 엄격하신 분이신 것 같았다. 그런데 잘 웃으시고 목소리도 친절하셔서 조금 반전? 이였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키가 많이 크셔서 175cm 정도인 것 같으셨는데 168cm이셨다. 그리고 단발이 잘 어울리셨다.
나는 새 학기라 걱정이 조금 있었다. 먼저 공부가 어려워져서 잘 못 따라가면 어쩌나 생각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걱정했다. 5학년 때 친구들과 싸움도 조금 있고 힘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6학년이라는 말이 어색하고 무게가 조금 있었다. 초등학생의 " 마지막 " 이여서 조금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6학년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 적응 못 하면 어쩌지? '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또 나는 반에 친구들, 선생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아직 며칠밖에 안 지났지만 그래도 우리 반은 너무 좋을 것 같다! 첫날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첫날과는 약간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도 한번 잘 지내보려 한다. 6학년 5반 파이팅!! |
우리 모두, 외계인일지 모르는 보스를 찬양합시다. (이주연)
클래스123에 접속한다. 보드판에 'N'자가 많이 눈에 띈다. 보스가 열심히 올려주시는 게시물과 댓글이 기다려져 6학년이 되고 클래스123에 접속하는 것이 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우리 보스는 클래스123을 정말 매일 꼼꼼하게 작성해 주신다. 사진도 정말 많이 찍어서 올려 주시고 각자의 글에 댓글까지 세세하게 달아주신다. 게다가 잘한 친구들에겐 으쓱, 잘못한 친구들에겐 머쓱을 꼼꼼하게 전송해 주신다.
그래서 그런지 으쓱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뭐든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아니, 꼭 으쓱이 아니어도 보스를 보면 적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보스 반이어서 다른 반은 하지 못하는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다. 지난주 다녀온 진로박람회도 그중 하나다. 보스도 주말이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늦잠도 주무시고 쉬고 싶으실 텐데, 기꺼이 우리를 위해서 주말까지 헌신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보스이다.
그뿐이 아니다. 보통 너무 성실하신 선생님은 따분하기 마련인데, 우리 보스의 수업은 심지어 재미나기도 하다. 6학년 책을 받고 첫인상이... 6학년 수업은 재미있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책 내용이 재미없긴 했지만, 보스가 준비해오는 파워포인트와 각종 자료는 재미없는 책 내용에 웃음 양념을 더 해 준다. 그래서 우리 보스의 수업은 늘 재미있다.
특히, 나는 요즘 국어 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속담을 정말 재미있게 풀이해주시는데, 친구들 하나하나의 특성을 살려 비유해 주시니 기억에 쏙쏙 남는다. 아마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도 이런 내용은 잊히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보스한테 죄송한 일이 하나 있다. 나의 지난 사회 단원평가 점수... 보스가 동영상까지 첨부해서 정말 재미있게 가르쳐주셨는데 말이다. 비록 점수는 잘못 나왔지만 보스의 수업만큼은 100점이다.
아마도 보스가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난 보스가 무척이나 젊어 보여서 처음에는 경험이 적은 선생님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 근데 이게 웬걸, 보스한테는 5학년짜리 딸이 있었다. 아마도 최강동안 우리 보스이기에 쉽사리 믿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나는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보스가 외계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3월, 나 못지않게 긴장했을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스승의 날에는 강요해서 억지로 칭찬도 받아보았다.
수필 글감을 정해주려고 임기응변을 발휘하기도 한다. 너무 다른 선생님들 노고에 숟가락을 얹는 것 같을 때나 다른 이슈가 있을 때 주로 그렇다. 언젠가 우리 반 한 아이가 내가 정해준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아이는 그 얘기를 아무도 안 쓸 것 같아서 썼다고 했다.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다음 주 수필은 ‘아무도 쓸 것 같지 않은 주제’가 글감이었다. 나에게 영감을 준 훌륭한 글이 바로 이것이다.
설사(배연경)
요즘 설사를 정말 많이 한다. 내가 설사를 하는 이유는 거의 음식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기름진 음식이다. 삼겹살 같은 고기도 기름이 많아서 웬만하면 안 먹으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는 밀가루다. 예전엔 지금 설사하는 음식들을 먹어도 아무 탈 없었는데 이 밀가루 중, 라면 때문에 내 속이 망가졌다. 예전에 라면을 아침에 먹으면 얼굴이 붓는다고 해서 아침에 먹었다. 난 뭣도 모르고 나만의 팁이 생겼다며 좋아했는데 그 나만의 팁이 내 속을 다 망가트렸다. 지금도 아주 가끔 아침에 라면을 먹곤 하는데 보통 사리곰탕 같은 안 매운 라면을 먹는다. 그리고 세 번째는 찬 음식이다. 이건 잘은 모르겠는데 재수 없는 날에는 찬 음식을 먹고 설사를 하는데 컨디션이 좋은 날은 찬 음식을 먹어도 멀쩡하다. 네 번째는 유제품이다. 이건 우유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다. 우유 알레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도 못 마신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초콜릿인데 초콜릿은 ABC 초콜릿 4개 이상은 거의 설사를 한다. 그래서 초콜릿도 끊고 있다. 내가 시현이한테 초콜릿 끊은 걸 말해주자 조금 아쉬워했다.
그리고 설사를 할 때 나는 엄청 배가 아프다. 누가 배에 전기드릴로 배 속을 쑤시는 것 같다. 그리고 설사를 하면 그래도 속에 있는 게 빠져서 배가 고프다. 나는 똥 싸고 나서 보다 설사하고 나서가 더 배고프다. 그리고 머리가 약간 띵 해지면서 무기력해진다. 나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엄청 무기력해지고 힘이 빠진다. 만약 나는 장점을 꼽자면 가끔 식욕이 떨어지는 게 장점인 것 같다. 내가 앞에서는 배고파진다고 했는데 코가 막혔을 때는 배가 고프지만, 코가 안 막혔을 때는 똥 냄새가 좀 심해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 난다. 나는 코가 자주 막혀서 자주 배고프다. 그리고 설사를 조금 많이 오래 하면 똥 냄새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다 하고 밖에 나가면 아무렇지 않았던 밖의 공기가 뽀송뽀송하고 향기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같은 똥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우선 똥보다 더 불쾌하다. 나는 똥보다 설사라는 말이 더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할 때는 엄청 많이 나와서 거의 쌓여있을 것 같은데 다 하고 보면 얼마 안 돼서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똥은 대강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배가 아파서 변기에 앉으면 처음부터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번에 우수수 나온다. 그에 비해 똥은 짤 주머니에서 나오는 크림처럼 조금 곱상하게 나온다. 그리고 나는 치즈를 먹고 설사를 하면 거의 설사 위에 이상한 거품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닌다. 그러면 코가 막혀도 배가 부른 것 같은 식욕이 억제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설사는 덩어리로 나오는 똥과 달리 정말 묽게 나와서 조금 당황스럽다. 오늘은 조금 더럽지만 자연스러운 지금까지는 아무도 안 했을 것 같은 주제로 수필을 써보았다. 이제 더 설사를 안 하길 빌어야겠다. |
정말 읽고 또 읽어봐도 더럽게(?) 잘 쓴 글이다. 우리 반 학생이지만 이 솔직함과 표현력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글 쓸만한 글감이나 주제는 주변에 아주 많다. 알림장에 쓰려고만 하면 잘 생각이 안 날 뿐이다.
9월 첫 주는 태풍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 알림장에 쓰자마자 나올 것 같았던 질문이 적중했다.
“선생님! 태풍이 안 오면 어떡해요?”
나는 태풍이 온 그날의 풍경을 쓰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태풍이 오기 전 드는 생각, 예전에 큰 태풍이 왔을 때 느꼈던 점, 태풍 피해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 이런 것들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선생님! 꼭 그 주제로 안 써도 되죠?”
올해를 보내며 매주 알림장에 써줬던 내용을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다른 선생님들, 그중에서도 허승환 선생님 도움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쓰면서 교사와는 더 많이 소통하고 함께 커나갈 수 있는 글감과 주제를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글 읽으신 분들의 좋은 의견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