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 한 2020학년도를 보내며(1) - 교실 이사를 앞두고
2020학년도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코로나와 함께, 둘째와 함께 새 학교에서
어찌 지내야 하나 고민하면서 수업 물품들을 새로 맞이했었다.
3월에 다시 꺼내겠지만, 교실 이사를 위해 정리해 본다.
3, 4학년 총 15개 반.
감염 예방을 위해 쉬는 시간 없이 40분 연속으로 이어지는 수업.
일주일 한 번 대면수업에 온라인 수업 자료 4차시를 만들어 게시했다.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온라인 수업 자료 넉넉히 만들어 놓고
수업 들어가라면 하고 온라인 하라면 하고.
아, 생각해 보니 1학기에는 개학이 연기되는 초유의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대 후반이라 2개 조로 나누어서 등교를 했다.
한 주는 같은 수업을 일곱 반 14회 대면 수업으로 진행하고, 온라인 수업 5차시를 탑재해야 했고, 다음 주는 온라인 수업으로 6차시를 했었다.
2학기 개학에는 전면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다, 1/3 등교 이후로는 한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수업하게 되어 그나마 나누어 들어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대면수업 할 때는 해당 수업과 비슷한 주제의 차시를 묶어서 2~3개 시범실험 보여 주느라 늘 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자석의 자기력선 수업을 할 때는 자석, 나침반, 물이 담긴 수조를 모두 실어서 빠르게 실물화상기로 보여주었고.
물의 순환 수업에서는 물 이용, 물 부족, 물 순환, 물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면서 칠판에 키워드, 사진 등을 붙여가며 정리했다.
지진 수업에서는 발생하는 까닭, 지진 피해 사례 검색하는 법, 발생했을 때 대피 요령, 건물 모형 만드는 법 등 서너 주제를 다루었다.
어떤 날은 3학년과 4학년 수업이 함께 있는데, 그러면 준비물이 두 배가 된다.
트롤리 달달달 끌고 3층에서 5층까지 누비는데,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과학실에서 얼음 리필하고 등등을 하다 보면 제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강의식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거리두기를 하는 가운데 학생들과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활동은 시도하려고 애썼다.
학교에 오면 일단 실험관찰부터 확인하고, 설명하는 동안 핵심 포인트는 칠판에 게시해 두어 작성할 수 있게 했다. 특히 3학년 학생들은 과학 교과를 처음 배우기 때문에 수업 방식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필기는 보조적인 것이지만, 학생들은 "빈 자리를 남겨두지 않고 정답을 써놓아야 자기가 뭘 했다, 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자리에 찾아가 학생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마이크로 나지막히 짚어 주었다.
소리의 세기를 비교하는 실험에서는 좁쌀을 뿌린 작은 북을 수레에 실어 놓고 움직이며 학생들의 연필 끝으로 두드리도록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침반으로 자기력선을 확인할 때는 동서남북 방향 찾기, 실물화상기로 방향 확인, TV 화면에 동서남북 표시를 했었다. 처음 한두 반을 할 때는 더 좋은 방법을 찾느라 고생했고, 40분 안에 준비한 활동을 마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교실마다 잘 적용할 수 있었다. 교과 교사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또, 교과 교사라 더욱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내 나름대로 방역을 위해 힘쓴 부분은 칠판 지우개, 분필, 마커, 종은 내 전용을 썼던 것이다.
처음엔 손소독제, 소독물티슈, 일회용 장갑도 들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뭐 나눠 줄 때만 내가 손소독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학습지를 비롯해 어떤 물건을 나누어 주는 일 자체를 최소화했다.
몸이 무거울 때 스피커는 짐이 되어 잘 안 들고 다니다가 최근에는 종종 썼다.
교과실에 있던 키보드, 마우스 대신 딸기우유 색 무선 키보드, 마우스를 주문해서 썼다. 마우스는 며칠 전에 건전지가 다 닳았다.
마우스가 닳을 때까지,
하루에 수십 번씩 수정했던 구글 사이트.
올해 내가 얻은 것은 단언컨대 구글 사이트를 활용한 온라인 수업 노하우였다.
며칠 전 읽은 기사에서
원격수업 1년, 유튜브 영상만 보여준다고
출첵 30분하고 끝내고 초성이나 맞추고 빙고나 하고
꾸러미 던져주고 과제는 검사도 안하고 아주 교사는 안식년이었다고
그렇게나 비판하는 기사에 달린 그렇게나 욕하는 댓글들을 하나 하나 읽고 나서는 스몰 트라우마가 생겼다.
내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려서 여기에 기사 본문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처진 기운이 영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런 교사도 있지만 안 그런 교사도 있어요~ 물어 뜯기며 수세에 몰려 방어하는 모습은 늘 슬프다.
필요한 영상이 유튜브에 있었을 뿐.
개별적으로 촬영하지 말고 기존 영상 활용하라는 지침도 있어
구글 드라이브에 올리거나
나름대로 노쿠키 프로그램으로 광고, 자동재생으로 안 이어지게 해보기도 했다.
초성퀴즈는 적절히 활용했고
퀴즈, 설문지로 형성평가도 했다.
학교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그 시간 안에 조작활동을 하기 어려워 활동 방법을 알려준 후 가정으로 보냈고,
가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검사할 때, 장갑 끼고 일일히 도장 찍어주신 교과 선생님도 계셨다.
꾸러미를 보내면 집에서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준비하셨다는 말도 들었다.
학교에 나올 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 재촉하며 꾸역꾸역 마쳤다.
단원정리, 그 중에서도 마인드맵은 꼭 해주면서 다시 설명했다.
실험관찰은 비어 있고, 설명하면 처음 들은 것처럼 어리둥절해 하는 3, 4학년 아이들 모습 보는 것이 나라고 좋지는 않았다.
학습의 공백, 학력의 격차.
학생의 잘못도 아니고
가정의 보호자 잘못도 아니고
교사 잘못도 절대 아니다.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일뿐.
이미 존재했던 문제가 심화되었을 때, 없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 힘들었던 사람, 더 미치도록 애쓰고 노력한 사람이 있었음은 인정하지만
이전에 없던 상황, 전쟁같은 상황에서 누구든 안간힘을 쓰지 않았을까.
실시간 수업을 바라는 이유는 알겠지만
화면에 계속 집중하기도 어렵고
흘러가 버리면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은데.
쌍방향을 하면 아이들이 자리에서 집중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 화상 수업은 본격적으로 해보지 못했지만,
가장 바라는 것은 코로나 상황에도 학생들과 선생님이 직접 만나 함께 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작년부터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집과 직장, 가끔 식료품만 사는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도, 우리 지역의 방역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3월부터 우리 학교는 담임은 물론이고 교과도 화상수업을 할 예정이고, 학사일정은 코로나 상황과 무관하게 단축 없이 올해처럼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30명 가량의 아이들과 함께 보낼 내년은 어떨까.
아마 한동안 교과는 안 맡게 되겠지.
교과전담으로 느꼈던 미묘함은 잠시 덮어두기로 하자.
그나마 나는 올해의 경험이 있는데.
올해 담임을 맡으셨던 분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학년 말을 마무리하고 계실까.
짐을 쌀 때가 되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든다.
다음 주에 학년 발표 나면 그 때는 또 힘을 내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