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이 뛴다] #3. 그런데 아프면 쉴 수 있나요?
코로나로 인한 뉴 노멀.
제 1원칙. 아프면 쉽니다.
그런데, 정말로, 아프면 쉴 수 있나요?
온종일 마스크를 썼던 나의 체온은 38도
2월 초, 우리 학교는 봄방학 전, 2주 정도 수업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가 중국에서 유행을 하고 있는데, 확산세가 심상치 않고 치료약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방학 중에 중국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학생이 있는지 조사하고, 교사와 학생 모두 수업 중 마스크를 쓰도록 안내했었다. 며칠이 지나자 학교에서는 학생들 모두에게 마스크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고, 여분의 덴탈 마스크도 몇 장 주어 교실에 두게 했다. 집에 황사 마스크 여분이 있던 난 식사할 때 외에는 마스크를 벗지 않고 수업을 했다. 손잡이에 알콜 뿌리기, 손씻기, 음식 나누어 먹지 않기 등을 실천하고 환기도 자주 시켰다. 3학년 아이들은 나름대로 조심도 하고, 잊어버리고 놀다가 아차 싶기도 했었다. 비염이 있던 A는 코를 풀다가 마스크를 책상 위에 벗어놓기 일쑤였고, 매일 새 마스크를 가져오던 B는 두어 시간 잘 쓰고 있다가 마스크가 꼭 바닥에서 발견되곤 했다. C는 귀가 아프다며 아침부터 쓰고 온 마스크를 귀 한쪽에만 걸어 놓았고, 덴탈 마스크라도 쓰라고 주면 잠잠했다가 다음 날이면 또 귀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라고 하면 얼른 고쳐 쓰곤 했는데, D는 마스크 나눠 준 날, 벗어서 휘휘 돌리더니만 다음 날도 가져오지 않고, 여분 마스크를 주고 꼭 쓰라고 하면 조금 지나서 귀찮다는 듯이 다시 벗어버리곤 했다. 할 수 없지. 본인과 주변의 안전을 위해 꼭 쓰라고 말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임신을 하면 기초체온이 올라간다. 보통 체온이 36.5℃라 치면, 사람마다 주기적으로 0.5~1℃ 정도의 차이를 두고 변화하는 것은 정상이다. 활동을 하면 높아지고, 수면을 취하면 낮아지는 것 또한 일반적이다. 여성의 경우 배란 후 2주 정도 체온이 1~1.5℃정도 상승하고, 임신이 되면 체온이 오른 채로 유지된다고 한다.(출처 : 다음백과 기초체온법) 임신을 확인하고 난 후, 내 체온은 보통 37.5℃였다.
모든 아이들의 체온을 재고, 나 역시 체온을 재어야 했다. 다행히 메르스 때 학급당 1개씩 귀접촉 체온계를 구비를 했었고, 그 때도 며칠 체온을 재 주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당시 우리 학교는 4일간 휴업을 했었다.) 내 체온은 조금씩 높았다. 37. 8℃, 37.4℃... 왼쪽 오른쪽 다 재보고 여러 번 재 보았다. 잴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보건실에 갔었다. 보건 선생님은 귀를 잡아당겨 고막이 펴지게 해야 정확할 것이라며 다시 재 주셨다.
방학 3일 전. 갑자기 학사일정을 2일 축소하고 쉬는 시간 없이 수업하여 귀가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부랴부랴 neis에 접속해 창체, 출석일수 등을 수정하고 다시 출력해야 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에는 친목회의 송별회 행사도 예정되어 있어 교실 이사도 준비할 겸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리 교실은 돌봄겸용 교실이라 아이들이 남아 있다. 어차피 먼지도 나니 마스크를 계속 쓰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서류 정리도 했다가, 유리창도 닦으라고 해서 왔다갔다하느라 눈이 뜨끈뜨끈해졌다. 체온을 재 보니 38도가 넘는다. 나,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반에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학생이 있었는데, 혹시??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결국 송별회 참석을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학년부장님이 걱정되는 얼굴로 이마를 짚어 보셨는데, 그 손길이 따뜻하면서도 혹시나 전염이라도 되면 어쩌나 싶어 죄송스러웠다. 집에 가서 쉬고 나니 금방 괜찮아졌다.
병지참을 쓰고 급히 폴립을 제거한 날, 오후로 바꾸어 수업하는 것을 선택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4월쯤이었던가. 갑자기 39도가 넘는 고열이 났다. 24시간 하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택시를 타고 다른 구까지 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보았는데 임산부라서 약을 쓰기가 조심스럽다고, 산모께서 선택하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심란했었다. 그래도 다음 날, 출근을 했다.
며칠 수업을 하는데 원래 목이 약하긴 했지만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갑자기 팍 잠겼다. 그날 새벽 출혈이 있었다. 불안하고 걱정되어 처음으로 교감선생님께 아침 일찍 전화를 드리고 산부인과 진료를 보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날 수업은 4개. 잠긴 목소리 덕인지 일단 "몸이 많이 아픈가 보네. 병원 잘 다녀와요."라는 답을 들었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보고 의사선생님께서 아기는 잘 있다고 말해 주셔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음파를 보다 "어? 이게 왜..." 하셔서 식겁했다. 아기는 잘 놀고 있는데, 지난 달에는 없던 폴립이 꽤 크다며 일단 제거를 하고 양성인지 아닌지 조직검사를 할 것이라고 하셨다. 금방 끝나기는 했지만 어리벙벙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 울면 무너져 버릴 것 같아 안 될 것 같은 기분. 진료가 끝나니 10시 반. 교감선생님께 진료 마쳤다고 전화를 드렸다. 내가 출근을 하겠다고 했는지 학교로 오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는 오늘 쉬겠다는 말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교감선생님은 "오늘 수업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물으셨다. 일단 학교로 갔다.
사실 산부인과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 조건은 학교 가까운 곳이었다.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해 하루 10시간은 머무는 장소. 혹시 모를 임신 중 돌발상황에 빨리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은 아침에 진료를 받고도 출근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였으므로, 출근했다.
당시 나는 3, 4학년 과학 교과와 동아리 1시간, 23시간을 맡고 있었다(원래 배정된 자리는 3개 학년, 각기 다른 3개 과목이었다. 2개 학년이나마 과학으로 통일해서 담당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우여곡절이 있지만). 하루 4시간의 수업. 교감선생님께 갔더니, 오전 수업 2시간 있었지? 일단 담임이 했어. 보결로 넣을까? 물으셨다. 내 수업에 보결을 넣는다... 나는 일단 학교에 왔는데. "아... 아닙니다. 제가 오후에 맡아서 할게요." 담임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병원에 다녀와서요. 몸에 이상이 있대요. 결과는 나중에 나온대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예 학교에 안 갔어도 됐을 텐데. 기왕 병지참 쓴 것 알아서 하시라고 할 텐데. 내가 담임이라면 분명 괜찮다고, 괜찮냐고 할텐데.
2년차의 나는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었고, 내 상황을 전하기가 어려웠고, 내 주위에는 걱정말라고 몸부터 챙기라고 말해줄 동료가 과연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프면 정말 쉴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로 인해, 나와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TV에서는 반복하여 알려 준다. 손씻기, 기침예절, 마스크 착용법. 요즘 내가 볼 때마다 의아한 문구는 바로, <아프면 쉽니다>라는 수칙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 제1수칙 “아프면 3~4일 쉽니다”(Newbc)
☞병가도 연차도 힘든데 ‘아프면 쉬라고'? [정지혜의 빨간약](세계일보)
☞"격리하라는데".. 독감 걸린 초등교사 출근 강요한 교장(MBN)
정말로, 아프면 쉴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 30대 이상은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고, 나약한 소리 말고 버티라는 말을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를 내면화한 상태에서. 입원할 정도도 아닌데, 증상이 확실한 것도 아닌데, 아파서 쉬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프다구요? 증상이 있다구요? 걱정되네요. 일단 집에서 쉬면서 경과를 보고, 다시 연락 주세요." 라는 말이 먼저일까, 아니면 '아이들은 와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안 나온다고요?' 혹은 '아이들이 오는데, 선생님이 대체 뭘 했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픈 내색을 하거나 선제적으로 "의심스러워서" 병가 신청을 낼 교사, 보육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눈칫밥까지 먹느니, 그냥 나가고 만다는 마음을 먹게 될 것이다.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공연히 쉬었다가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고, 경기도 안 좋은데 아예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러 집을 돌아다녀야 하는 배달노동자, 방문케어서비스 종사자는 예약을 옮기기도, 본인을 대체할 사람을 당장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아프면 쉰다"는 수칙은 시스템으로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구호에 그칠 뿐, "쉼"은 생업을 유지하고, 직업경력에 있어 위협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염병이기에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것은 본인만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확진자로 밝혀지는 순간, 왜 돌아다녔느냐고, 왜 집에서 쉬지 않았느냐고 공격받는 상상을 하면서. 나 때문에 가족, 지인, 동료들이 신체적, 사회적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개인이 선택을 하게 만든다.
아프면 쉬었으면 좋겠다.
5년 전만 해도, 고열과 기침이 있어도 학생들은 학교에 나왔다. 감기에 걸렸는데 독감과 증상이 비슷해 걱정이 되어도 나와야 했다. 우리 반은 한 명으로 시작해 옆 사람, 옆옆 사람 줄줄이 독감이었다.
지금은 독감 의심증상만 있어도 쉴 수 있고, 전염력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어야 등교할 수 있다. 전만큼 독감이 확산되지 않는다.
학교가 그렇게 바뀌어 왔다. 지금 십대들은 아프면 쉬어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되물을 것이다.
세대가 바뀌기를 기다리기 전에, 아프면 쉬는 것이 원칙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프면 쉬는 것은 건강을 위한 권리이자, 노동 환경의 개선이 필요함을 알리는 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