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살림] #5. 4학년 2학기, 껍질 한 겹 생기는 시즌.
달라진 아이들, 관찰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분명 내가 알던 아이들인데, 내게 연결되어 있던 아이들인데 갑자기 멀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름 방학을 지나고 다시 학교 생활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이 되었는데 대체 이 거리감은 뭘까.
아침이 되면 선생님! 하고 달려들고, 선생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조잘조잘 말하던 아이들인데,
쉬는 시간에는 어디로들 갔는지 교실이 비어 보이고, 띄엄띄엄 떨어져 각기 다른 주제에 몰두해 있고, 아주 시끄럽거나 아주 조용해진 우리 반.
특별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아 일단 관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4학년 2학기, 과연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1. 밥을 많이 먹습니다.
우리 반은 원래 밥을 적게 먹던 편이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편인 아이들이 많고, 대부분 체중이 평균 이하를 차지하고 입이 짧은 편입니다. 급식이 나오면 밥이 보통은 절반, 어떤 날은 2/3이 남습니다. 반찬을 탐하는 아이들도 있으나 한 번 더 덜어 먹는 정도지 식판을 가득 채워 먹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반은 자율배식이라 알아서 담아 먹고, 담임인 제가 가끔 골고루 먹으라거나 조금 더 먹으라고 권유를 하기는 합니다. 급식 당번은 밥차를 옮기고, 모자라면 더 받아오는 역할을 하는데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인 반찬을 받으러 갈 때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우리 반 급식은 반 정도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학 이후로 밥이 확확 줄어듭니다. 밥은 1/4정도 남고, 밥이나 국을 더 받으러 간 적도 두 번이나 있습니다. 고작 한 달 사이에 밥의 양이 두 배로 늘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학을 지나고 키가 실제로 5cm, 3cm 이렇게 훌쩍 커서 온 친구들이 있는데, 그래서 허기가 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며칠 동안 학교 밥이 맛있었던 걸까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2. 모여 노는 친구들이 정착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반 아이들 중에 적게 밥을 먹는 아이들은 대부분 밥을 조금 먹고, 그래서 아주 빨리 먹어 치우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입니다. 모둠 참여 점수를 모아서 식사 순서를 빠르게 정해 져야 얼른 먹고 얼른 나가서 놀 수 있기 때문에 참여 점수에 아주 민감하죠. 긍정적인 면이라고 보자면, 발표도 많이 하고 수업 태도도 좋게 유지하려고 합니다.
1학기에는 교실에서 보드게임을 함께 하거나, 친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거나, 나가서 놀기도 하다가 특별한 패턴은 없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다양한 친구들과 놀았고, 같이 노는 친구들이 바뀌기도 하고, 서로 끼워주기도 하고, 그냥 옆에 앉아 있기도 하고 그랬었지요.
그런데 2학기 들어서는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활동적인 친구들이 정해지게 됩니다. 1학기에는 "선생님 저희 운동장에 나가도 돼요?" 묻고 어디로 가자, 뭘 하자, 기다려 줘, 나도 갈래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 틈에 눈빛만으로도 우리, 거기, 그거, 알지? 이런 소통이 됩니다. 따라서 누구를 기다리고 말고 하지 않고 먹을 만큼 먹고 나가는 것이지요. 보드게임, 공기는 중간놀이 시간에. 5교시 5분 전, 알림장을 쓰기로 약속한 시간도 잊고 땀에 흠뻑 젖어 놀고 옵니다.
3. 연예인 이야기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럼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화제로 연예인이 등장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우리 반에 배우가 꿈인 ㄱㅎ이 말고는 연예계에 그리 큰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ㅇㅈ와 ㅈㅇ가 박보검이 좋냐 백현이 더 좋냐 앙케이트를 했었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혼자 끙끙~"오빠야 노래를 여럿이 부르는 정도였지요. 2학기에는 워너원의 누구, 누구에 대해 자꾸 설명해 주려 합니다. 개학식날부터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수업시간에도 춤동작을 따라하기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이나 부채 같은 굿즈를 가져오는 아이들도 있구요. 오늘은 대여섯 명이 점심시간에 최신가요 메들리를 아주 큰 소리로 부르기에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 "그럼 저기 교실 뒤쪽에 가서 부르자~" 하면서 멀어져 갑니다.
너도 누구 좋아해? 너도 누구 좋아해라~ 이렇게 취향을 맞추고 싶어합니다. 이럴 때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경우는 공유할 수 있는 대화 화제가 줄어들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를 가지고, 활동으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지만, 수업이 아닌 경우에는 옆에 모여앉아있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집니다.
4. 친한 친구 사이의 갈등이 늘었습니다.
1학기에는 '친한 친구'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고 '노는 게 좋다'가 더 컸다면, 이제 '나의 친구', '계속 같이 놀았으면', '쟤보다 나랑 친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체험학습에 누구와 앉아서 가느냐, 놀이공원에서 누구와 모둠이 되느냐를 가지고 너무너무 궁금해하고, 선생님을 떠보려 합니다. 1학기에는 번호대로 앉았고, 돌아올 때는 반대로 내림차순으로 앉았는데 특별한 불만이 있지는 않았지요. 2학기에는 체험학습이 끝나자 바로 모여서 집에서, 놀이터에서 놀기로 약속들을 합니다. 친구가 다른 아이와의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면 1대 다수의 구도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전학 온 ㅅㅎ이가 외로움을 타서, ㅈㅇ이에게"ㅎㅂ이는 좀 이상해. 나에게 왜 그럴까? ㅎㅂ이랑 잘 지내고 싶어. 그런데 ㄱㅎ이가 나랑 놀지 말라고 한 거니?"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ㅈㅇ이는 그게 다른 친구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공개적으로 말해버리는 바람에 여러 여자 아이들이 ㅅㅎ이에게 한꺼번에 불만을 쏟아놓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 사이의 갈등이 매우 늘어납니다. "쟤가 다른 친구들에게 저랑 놀지 말라고 그랬어요.", "쟤가 우리랑 놀기로 했는데 다른 애들이랑 놀 거라고 가버렸어요.", "저보고 빠지래요. 저는 원래 놀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도 얘네들이랑 놀고 싶은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1학기 때는 상대방의 문제 행동에 대해 고자질하거나 겉으로 보이는 갈등이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은 거의 매일 친구 관계로 상담을 요청하거나 중재를 요청하러 오는 아이들이 늘었습니다.
반면 친구가 거의 없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습니다.
5. 갈등이 복잡해지고 선생님을 통한 문제 해결 시도가 줄어듭니다.
저는 상담을 하면서 충분히 이야기를 듣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시간은 길어지더라도 마음 속의 이야기를 꺼내고, 정리하면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친구 관계를 깊이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느는 만큼 소통 능력이나 대화 기술은 아직 미숙하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아이들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아주 복잡해지고, 자신들도 문제가 생겼던 지점이 어디인지 발견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선생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거나, 선생님을 통해도 바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1학기만 해도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정리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고 서로 잘 지내자고 약속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은 복잡한 마음이 쉽게 풀리지가 않고, "모르겠어요." 라는 말이 늡니다. 남자 아이들은 목소리가 막 커지고 갈등이 생겼을 때 선생님이 대화를 하자고 하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오라고 하면 "아 그냥 정해진 대로 할게요. 상담은 싫어요." 하면서 부담을 표현하기도 하구요.
6.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가 질적으로 변화됩니다.
남학생과 여학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자"와 "여자"의 사이를 확실히 구분지으려 합니다.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맘 맞는)여자들끼리만 놀자고 한다거나 남녀가 두 개의 원을 그리며 마주 서서 상대 집단을 향해 "너네는~" 말하며 놀기도 하죠.
동시에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가 더 가까워진 아이들이 생깁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호감을 주는 아이들은 이성들 사이에 있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놀리기도 했다가, 화기애애하기도 했다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다가. 조금씩 감정이 싹트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7. 수업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더불어, 수업의 진행이 어려워집니다. 활동을 소개하고 시간을 제시하면 하기는 하는데, 짝 혹은 모둠 아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경청하지 않는 빈도와 시간이 늘어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들어야 한다는 당위는 줄고,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인정욕구는 친구에게로 옮겨가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활동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친구들이랑 얘기하는 게 너무너무너무 흥미있다!처럼 관심이 온통 친구, 친구와 하는 놀이에 쏠려있는 아이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결론 : 이게 다 관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이렇게 관찰한 바를 쓰고 나니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밤톨이들이 껍질을 한 겹 만들어 냈구나.
그렇게 성장을 하고 있구나.
친구와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 친구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내 친구가 아닌' 관계에서 철수하고 싶은 욕구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바람에
사랑하던 우리 선생님에서
친구와 지내고 싶은데 공부하고 집중하라고 강제하는 선생님,
친구와 갈등을 풀고 싶은데 큰 도움이 안 되는 선생님,
별로인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요구하는 선생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