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편지] 07 물 맛 좋다!
# 어렸을 적 장면
계룡산 자락까지
차 트렁크에 큰 물통을 싣고 약숫물을 뜨러 오시던 어른들이 떠오른다...
브리타라는 정수기가 달린 물통을 들고 기숙사 이곳저곳 맛있는 물을 찾아 떠나는 나를 보며.
왜 어른들이 약수터에 가는 지 조금 이해했다.
나의 약숫통!을 들고 물 뜨러 총총총(1)
처음엔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
한국 수돗물처럼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개의치 않았다.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드디어 브리타(정수물통)를 구매했다.
하루는 학교 식당에서 물을 마시는데, 물이 너무 맛있었다.
약간 달착치근하니, 부드럽고, 풍부한 것이
물에 맛이 있구나-맛나다고 하기도 전 맛이 존재한다 아니다에서 맛이 있다-를 느꼈던 날!
물통을 들고 매일 아침 학교 식당 정수기까지 약숫물 뜨러가듯 마실을 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기숙사 로비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 같은 정수기가 있음을 발견!
심봤다! 여기다!
식당까지 안 가도 로비까지만 내려오면 맛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브리타를 들고 졸린 눈으로 잠옷만 좀 갈아입은 채 아침마다 물 뜨러 가는 일상이 시작됐고,
나는 물 맛에 행복했더랬다.
그러던 하루는 기숙사 10층에서 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오던 중 ! 학교식당과 로비에 있는 것과 꼭 같은 바로바로 그 정수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오예! 앗싸!
여기로 물을 뜨러오면 잠옷도 안 갈아입어도 되고
로비에서 기숙사로 다시 들어올 때 학생증을 찍어야할 필요도 없고
멀끔하게 차려입고 학교에 가는 다른 학생들을 혹여나 로비에서 마주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렇게 10층에서 물을 떠왔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음. 같은 정수긴데 무언가 달랐다.
내가 이렇게 물 맛을 감별하는 사람이 됐나? 내가?
그리고 그 달측지근하지 않은 물 맛에 난 조금 실망했더랬다.
아니, 물 맛 하나로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고 아닐 수도 있다니!?
맛있는 물을 위해 잠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나가는 수고를 할 것인가...
적당히 10층 물을 마실 것인가... 오호... 그것이 문제로다...
하며 난 마치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이 걸린 중대한 문제인냥 고민했다.
그리곤
담대히!
부시시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마주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잠옷을 갈아입는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기숙사 로비로 물 뜨러 가기로 작정했다.
브리타에 가득 담긴 물을 들고 올라오는 길, 행복 한 통을 들고오는 것 같았다.
컵에 한 잔 따라
꿀꺽꿀꺽 마시니
행복이 충전되는 것만 같다. 크큭
캬~ 물 맛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