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편지] 05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이름과 저작권. 비판적 사고-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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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11:03
안녕하세요?
한국 학교는 한창 학기 초라 분주할 때이군요!
여기는 어느새 봄학기를 시작한 지 두달 째. 봄방학을 맞이해 잠시 쉬고 있습니다. 휴~
지난학기에는 망망대해에 던져져 해메느라 연락이 통 없었죠!
"왜 그게 하고 싶은데?"하는 질문에 스스로를 설득지도 못 해 정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이번학기에는 그래도 조금은 제 스스로를 다잡고 한 발짝을 떼어 보려는 중 입니다.
후후 그럼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카페로 먼저 가볼까요?
The Hungarian Pastry Shop
1030 Amsterdam Ave, New York, NY 10025
작가 Nathan Englander는 92년부터 이 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카페 구석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 번 가면 멈출 수 없는 곳.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name matters!
카페에 가면 제게 이름을 물어요. 주문한 음료를 전해주기 위해서죠.
서연. 잘 못 알아 들어도 굴하지 않고 저는 제 이름을 말 해요
S.E.O.Y.E.O.N. 또박 또박 미소와 함께 이름을 말하죠.
주문한 음료를 갖다줄 때면 그 종업원이 아닌 다른 종업원이 오곤 해요.
그는 처음보는 스펠링을 받아들곤
씨-욘-(서연)하고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날 찾곤 하지만, 그래도 전 다음에도 제 이름을 말해요.
상대방이 못 알아 듣는다 하여 이름을 타협하는 건 뭔가 정체성을 타협하는 것만 같거든요.
아무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에요. :)
논문은 쓴 사람의 이름으로
대학원에 오니 정말 많이 읽어야 해요. 강의실에 모였을 때 읽은 논문을 바탕으로 토의하니까요.
개강 첫주에 놀랐던 것은, 논문을 언급하던 방식이었어요.
연구자의 이름으로 논문을 언급하더라니까요.
"Sarah의 글에서 보면...", "Walker가 말한 것 처럼..." 등등 말이에요.
저는 논문을 기억할 때 제목의 일부로 기억했었어요.
난민 교사 논문, 칠레 논문 등등...
다른 석사생들이 저자 이름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전 Sarah가 쓴 논문이 이게 맞나? 하고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난 논문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들, 사람을 두고 이야기를 하네?
흠- 저자의 이름이 가장 명확하게 논문을 지칭하는 단어이자, 나중엔 저자 이름만 들어도 어떤 분야의 논문일 지 알게된다지만서도,
이들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논문을 쓴 그 '사람'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단어를 두개 이상 똑같이 나열하면 표.절. 입니다. 고객님^^
사람이 중요한 만큼, 그 사람의 지적재산권도 너무나 중요해요.
표절금지교육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받았지요.
직접 인용도 지양해요.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나의 언어로 풀어서 인용해야 인정!
조금이라도 인용한 부분이 있다면 누구의 글이었는지 분.명.히 밝혀야하구요.
뭐 당연한 연구자의 윤리인가요?
인용한 것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너어어언~~ 지옥에서 불탈거야아아아아~~ 하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도 할만큼 아주 아주 아주 강조하는 부분이에요.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그 방대한 지식과 발견들 사이로 절대 절대 표절이 아닌, 나의 주장을 세우고 탄탄히 뒷받침하려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필수적이에요.
대학원 과정은 0부터 100까지 다- 비판적 사고하기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하. 제가 질문을 안 하던 사람은 아닌데, 그런데도 이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디다.
저는 가만보니 이해가 되는 것, 제가 공감하는 것, 도덕적으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질문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웬만해선 저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많죠. 허허허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고충을 겪으며...
제일 부러웠던 친구는, "난 대학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던 게 제일 좋았어."라고 말하던 친구였어요.
아니 대학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단 말이야? 정말???!!??
난 대학에서 이런 훈련을 받았는가...!!??!!
후... 여기엔 생각해 볼 거리가 아주 많아요...!
각설하고, 그래도 이 사고과정은 훈련!이라는 것이에요.
네, 많은 분들이 비판적 사고는 훈련을 받았는가의 문제이지, 누구가는 타고나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런 저를 그 누구보다 빡세게 훈련시켜 주는 것은 바로 바로 라이팅 센터 선배들이에요.
제가 너무나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꼬옥 찾아가는 곳 입니다.
교수님 저리 가라 할 만큼 신랄하게 제 글의 허점들을 까발려주는 라이팅 센터 언니들!
직속 선배가 제일 무섭다는 말마따나... 박사생인 선배들은 봐주는 것이 없습디다...
오기가 생길만큼...! 끝없이 why? how? what?을 묻는 선배들.
여기서 한 가지, why? how? what? 이라는 질문은 엄청나게 중요하면서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적이 드물었기에, 나도 why how what에 관련된 질문을 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그러면 그 질문들을 어떻게 깊게 다각도로 던지는 지에 대해서는 또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어렵고요! 후아!
어려워요 어려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맛깔나게 쓰는 뉴욕타임즈 크리스토프 아저씨의 2017년 연말 사설이 인상 깊었어요.
글 말미에 아저씨는 '내가 기자로서 이 세상 온통 잘못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쓰느라 매일 머리를 쥐어 뜯지만,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이 세상 좋은 것들을 전하고 싶다오...' 하며 평소 철저한 비평가 이미지 사이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저씨의 세상을 향한 희망을 드러내는데요. (링크: 왜 2017년이 인간 역사상 최고의 해였는가 (영어기사!))
저도 매일 날아오는 각종 비판들에 쓰러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까고 까이는 대학원 생활을 반복하겠지만 잠깐씩 찾아오는 지적 희열이나 열정, 꿈을 바라보며 또 일어나야겠죠. 허허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히계세요!
저는 20000...
2018. 3. 16.
서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