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해 한 승진제도의 모든 것(1): 승진을 위한 '기본점수'
2009년 첫 발령을 받았으니, 내년이면 교단에 선지 딱 10년이 된다.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구는 연구학교를 갔다더라, 누구는 벽지학교만 돌고 있다더라, 누구는 장학사 준비를 벌써 한다더라 등등.
누구나 한 번쯤은 "나도 승진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승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교사도 '점수'를 채우지 않으면 승진을 하기 쉽지 않다.
2014년, 학교를 옮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던 때였다.
그러던 찰나 복도에서 마주친 교장 선생님께서 나를 은밀히 교장실로 부르셨다.
“김선생, 빨리 떠나. 이 학교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오래 있어봤자 네 손해야.”
평소 나를 좋게 봐주시던 교장 선생님의 걱정스런 눈빛과 진심어린 조언.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서 얻을 수 없다는 건 단연 ‘승진 점수’였다.
하지만, 난 그 때 학교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있을 때였다.
좋은 선생님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생동감 넘치는 교육활동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난 결국 교장 선생님의 조언과 달리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 해 말, 교장 선생님은 퇴직하셨고 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셨다.
“으이구, 저 바보. 내년엔 꼭 나가라.”
나는 지금도 그 학교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점수라고는 쥐뿔도 없는 학교였다.
게다가 충북형 혁신학교로 첫 발을 내딛어 죽도록 고생만 했다.
2017년, 만기로도 모자라 유예 1년까지 꽉꽉 쓰고 나올 때까지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수업을 이 학교에서 다 해봤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들, 배우고 싶은 동료교사들을 이 학교에서 다 만났다.
내가 예뻐하는 제자들을 이 학교에서 모두 졸업시켰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교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성장과 관계없이 승진과는 더 멀어졌다.
이미 동기들은 농진, 벽지, 연구학교를 돌아다니며 점수를 쌓고 있었다.
승진대열에서 3~4년은 또래들보다 뒤쳐진 것이다.
학교를 떠날 쯤 되니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주변에서 하도 승진, 승진 해대니 나도 더 이상 승진을 미루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생전 처음 승진규정이란 걸 찾아서 봤다. 큰 틀로 보면 어려울 것도 없는 내용이다.
우선 승진을 하려면 기본적인 점수들을 어느 정도 꽉꽉 채워야 한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아래 내용은 아마 거의 다 비슷할 것이다.
첫째는 경력 평정이다. 이건 20년 기준으로 70점이 만점이다.
교육 경력 20년이 되면 70점은 자동으로 채워지는 시스템이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으도 타는 점수니, 나도 꼬박꼬박 받은 점수다.
두 번째는 근무성적평정, 줄여서 ‘근평’이라고 하는 점수다.
총 100점짜리 점수인데 30점은 평정자가, 40점은 확인자가, 30점은 다면평가자가 주게 되어있다.
여기서 평정자는 교감, 확인자는 교장, 다면평가는 동료교사들이다.
명목상 다면평가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교감, 교장의 점수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수다.
이 근평점수는 승진 시점을 기준으로 10년에 걸친 점수를 반영한다.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가 교감, 교장에게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년이라도 근평이 ‘나가리’ 되면, 스텝이 완전히 꼬여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수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연수성적평정이다.
연수성적평정은 총 30점짜리인데, 이 점수도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이 중 27점은 연수교육성적인데 직무연수성적과 자격연수성적으로 나눌 수 있다.
직무연수성적은 승진 시점을 기준으로 10년 이내 60학점 연수 3개 중 한 개 성적만 95점을 초과하면 100점을 받는다.
공부만 하면 되는 점수이니 비교적 따기 쉽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자격연수성적이다. 흔히들 말하는 1정 연수 성적이 바로 이것!
1정 연수 성적에 연구학교 점수 하나가 걸려있다고 할 정도로 생각보다 비중이 있다.
최근에는 비중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긴 하는데 아직까지도 1정 연수를 대하는 교사들의 표정은 비장하다.
0.001점이라도 더 따야 남보다 앞서나갈 수 있으니까.
마지막 3점은 연구실적이다. 이 점수가 생각보다 따기 쉽지 않다.
각종 연구대회에서 입상할 경우 점수를 받게 되는데 전국 1등급을 받으면 1.5점이다.
즉, 전국 1등급을 두 번은 받아야 만점인데 1등급이 아니라면 더 많이, 자주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박사 학위를 따도 된다. 그러면 연구실적은 만점!
석사 학위를 땄다면 2점을 채우기 때문에, 남은 1점은 어쩔 수 없이 연구대회를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연구대회가 승진을 위한 교사들의 전쟁터처럼 비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하면, 총 200점 만점의 승진점수 구조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기본 점수’다. 나도 하지만, 남들도 다 하는 ‘기본’.
진짜 싸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승진 가산점’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점수들이다.
글이 길어져서 이 점수들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고자 한다.
글을 쓰다보니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아, 승진하기 더럽게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