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주신 예쁜 선물상자
‘스승의 날’ 하면 떠오르는 선생님 한 분이 있다.
20년 전, 중학교 때 나를 참 많이 귀여워 해주셨던 한문 선생님이다. 담임도 아니셨지만 복도를 지나가는 날 보시면 간식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셨고, 내가 하는 시시콜콜한 농담을 언제나 명랑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던 분. 언젠가 그 분이 지나가는 말로 “성규, 너는 글씨 잘 쓰니까 선생님 하면 되겠다” 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 때,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뒤에 한 번도 선생님을 뵙지 못하다가 문득 올해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 수소문 끝에 근무하시는 곳을 알아냈다.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면 당황스러우실 것 같아 내 연락처를 남긴 쪽지와 함께 꽃 배달 선물을 먼저 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선생님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다.
“저기...꽃 배달을 받아서 전화드려요...” 하시는 선생님 목소리가 어찌나 똑같던지!
많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선생님은 나를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기억날 때 빨리 연락하지! 왜 지금 했어!” 타박하시는 목소리는 눈물 날 만큼 정겨웠다. 애 둘 딸린 다 큰 어른에게 반말을 쓰는 게 어색하다며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시는 모습엔 웃음이 절로 났다.
선생님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20년 전 선생님이 주신 말과 사랑으로 이만큼 컸다. 당시 우리 집은 IMF의 여파로 풍비박산이 나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선생님이 될 거야” 라고 하셨던 그 말 한 마디가 나를 꿈꾸게 했다. 그 때 이 후로, 내 꿈은 언제나 선생님과 같은 길에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수백 개의 선물상자를 미리 가져다주는 일과 같다. 내가 더 이상 곁에 없어도 오랫동안 아이들은 계속해서 선물상자를 풀어볼 것이고 결국 우리가 선사한 영향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끔 불손하게 굴며 우리 마음에 상처를 입힐지라도, 상상 이상의 나쁜 말을 건넬지라도 우리 가슴 깊은 곳의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진심 속에는 우리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론 클라크>
론 클라크의 말처럼 선생님은 알게 모르게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닳지 않는 예쁜 선물상자를 넣어 주셨고, 나는 그 선물 상자를 품에 안고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가 됐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예쁜 선물 상자 하나씩을 선물해 줘야 할 때다. 지난 10년간, 나는 과연 그런 선생이었나?
스승의 날을 맞아, 문득 부끄러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