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내 수업'을 사랑했다.
익숙했던 교실을 떠나 충북단재교육연수원 북부센터에서 근무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간다. 어느새 수업보다는 연수 기획과 강사섭외, 공문처리 등이 더욱 '내 일'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현장을 떠나보니 이제서야 객관적으로 지난 내 모습을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몇 년간 나는 '자뻑'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최근 2~3년간 우리 반 아이들은 흠 잡을 데 없이 착하고 순종적이었으며, 나는 교실에서 이른바 '왕'처럼 군림했다. 종소리 하나, 손가락 하나로 아이들을 간단히 통제했고,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내 감시 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줬고(정확히는 싫어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자뻑이 심해졌다.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나는 유별났다. 1년 내내 다른 선생님들이 뜨악할 정도로 '화려한 수업'을 했고, 나는 그 기대치에 걸맞은 '화려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아이들을 쉼 없이 다그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프로젝트 수업 속에서 아이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강조하면서도 나만의 높은 기준과 잣대를 엄격히 들이밀었다.
처음 나간 연구대회에서 덜컥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이래, 아이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각종 공모전에도 미친듯이 나갔다. 2년 연속 교육부장관상을 받았고 교육감상, 교육장상, 교총회장상, 국립특수교육원장상, 학생문화교육원장상, 월드비전 회장상, 라이온스 클럽 회장 상 등등 한 해에만 6~7개의 상을 쓸어왔다. 상을 탈 때마다 자랑스럽게 칠판에 붙여 놓으며 항상 이런 이야기를 덧 붙였다.
"너희는 나처럼 능력있는 선생님 만나서 좋겠다."
수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몇 년간 "난 정말 괜찮은 교사야"라고 항상 생각했다. '내가 준비한 수업'에 아이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하는 걸 보는 것이 가장 기뻤고, '내가 끌고 나간 공모전'을 통해서 아이들이 상을 받아 오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 땐 그게 정말 잘하는 건 줄 알았다.
이렇게 브레이크 없이 몇 년을 달려오다가 올해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얻어 단재교육연수원 파견교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공간, 내 수업이 없는 시간을 맞이하며 도리어 '내가 만들었던 공간'과 '내 수업'을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갖게 됐다. 연수 기획과 연수원 공간 구성을 위해 찾아갔던 몽실학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미래교실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다.
'학교 밖 학교'인 이 세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끊임없는 토론과 탐구의 시간을 자발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들의 '표정'이었다. 수업에 임하는 그들의 표정. 학교 안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표정들이 바로 그 곳에 존재했다. 망치로 쾅!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답사를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찬란하다고 굳게 믿었던, 지난 날의 내 영광들이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게 아니라, 내 수업을 사랑했었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 기뻤던 것이 아니라, 열심히 준비한 내 수업의 성공이 기뻤던 것이다. 무대의 주인공은 오롯이 나였고, 아이들은 나의 영광과 성공을 위한 들러리였다.
문득 이은진 선생님의 페이스북에서 본 <꿈의 학교 론 클라크 아카데미>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자신이 가르치는 교육내용에 대해 열정을 품고 있는 교사는 많다. 아이들을 가르쳐서 즐거운게 아니라 가르친다는 자체가 즐거운 사람도 있다. 그들의 교실은 말끔하고 수업계획도 또렷하지만 아이들을 완벽한 풍경을 망치는 골칫거리로 취급한다.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게 아니라 본인이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 더 집중한다."
비참하게도 이게 나였다.
수업에서는 자율성과 자발성을 강조했지만 교실 안에서는 순종과 복종을 강요했다. 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고 토론과 이견을 단호히 거부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집착했고 결과물이 내 기준에 부합하도록 다그치고 또 다그쳤다. 나는 자타공인 능력있는 교사였으나 훌륭한 스승은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세 학교에서 교사는 지원자였다. 기다리는 자였다. 결과물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을 공유하는 자였다. 학생들은 무대의 주인공이었고, 교사는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스탭이었다. 공간은 오롯이 학생들의 것이었고, 교사는 그 공간의 일원일 뿐이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래 만든 카드뉴스는 답사 이 후, 나의 고민을 담아 만든 것이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 부끄러운 반성문을 쓰는 이유는 현장에 돌아갔을 때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와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는 몇몇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급 브레이크'가 걸린 듯한 지금, 그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고민들을 하나 둘 씩 해보게 된다.
"학교 안의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