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알아보는 광주학생항일운동
한눈에 알아보는 광주학생항일운동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던 3.1운동. 3.1운동 이후 1920년대 민족운동에서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사건들 중 대표적인 것이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있습니다.
1926년 6월 10일이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식 날이었습니다. 그 날을 기해서 조선 공산당, 천도교 측의 독립 운동가들이 제 2의 3.1운동을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지도부가 먼저 검거 되면서 계획이 사전이 발각되어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천 명의 학생들이 순종의 장례식에서 격문을 뿌리고 예정대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사실 이 6.10만세운동이라고 하는 이 사건이 몇 달 뒤에 민족 유일당 운동이 불거지고 ‘신간회’탄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발생했다. 당시 나주역에서 광주역으로 가는 기차에 탄 조선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중학교(당시 일본인들이 다니던 학교)에 다니는 일본학생들이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후쿠다라는 일본인 학생이 있었고, 희롱당하는 박기옥과 이광춘이라는 조선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박기옥의 사촌 동생이었던 박준채가 후쿠다 등의 일본인 학생들을 나주역에서 불렀습니다. 박준채는 “아까 우리 누이에게 무리하게 했는데, 우리 누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해라.” 그랬더니 후쿠다가 조센진들 하면서 민족 비하적인 욕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박준채가 후쿠다를 때리고 조선인들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서 10명이 서로 크게 싸우게 됩니다. 나중에 광주 경찰에서는 조선 학생들만 구타하고 편파적으로 이 싸움을 해산시켰습니다. 여기에서 민족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전남 일대에서 학생 비밀 단체인 성진회, 독서회 등이 주도하는 대규모 항일 시위가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달력을 보면 11월 3일이 학생의 날입니다. 바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1929년 11월에 시작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30년 봄까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서울, 대구 전국 곳곳에서 여기에 동조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나고 학생들의 동맹 휴학 시위 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3.1운동 이후에 가장 규모가 큰 민족 운동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검거된 우리 조선학생들이 수천 명이 넘었고, 퇴학당하거나 각종 징계를 받은 조선 학생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 시대에 꼭 기억해야할 학생 운동이 광주학생항일운동입니다.
<플로우맵으로 살펴본 광주학생항일운동>
다음 편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