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제국 운영법] 5. 극기훈련
[진영제국 운영법] 5. 극기훈련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학급을 운영한다. 진영제국 운영법은 본인의 학급운영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학급운영법은 본 교실에서는 효과가 있던 것들이다. |
#prologue
교사가 된 이후 학생에 대한 두가지 대립되는 명제를 생각해왔다.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어>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이 두가지는 모두 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글은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클 거 같기도 하다.)
벌은 효과가 없다고 한다.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밝혀낸 결과다. 하지만 효율적인 학생들의 통제를 위해서 벌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벌의 이상적인 개념은 그 벌을 수행하며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벌은 체벌(신체적인 폭력을 동반하는 벌)이 동반한다. 체벌은 경험상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
보는 아이들 : "쟤는 맞을 만해. 저렇게 혼나야지."
맞는 아이 : '아. xx 두고봐라. 너는 진짜. 아주 그냥 xx 해버릴거야'
결코 교육적이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기는 어렵다. .
하지만 벌의 또다른 효과는 행동의 한계선을 그어준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법도 그렇고 해서는 안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 벌을 제공한다. 분명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것은 행동의 한계를 명확히 시켜주는 일종의 선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걸 보고 웃곤 했다. 다 자기들과 관련된 경험 때문에... 현재는 다른 세상이다..)
#1. 참교사이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 발령을 받으며 생각하는 교사상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말로 잘 설득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말로 감화를 시키는 그런 교사 말이다.
발령난 동기가 이런 말을 했었다.(벌써 12년 전이다..)
"발령 첫달은 정장 입고 매일 수업준비하고 다녔어. 두번째 달은 업무할 것만 가지고 다녔지. 셋째달은 추리닝에 매 하나 들고 다녔지."
발령을 받지 않았던 터라 그 말이 그렇게 와닿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다 귀찮아 지는 내가 보였다.
#2. 내가 지쳤던 이유는.
사람마다야 다르겠지만 내가 지쳤던 이유 중 하나는 내 능력과 한계를 몰랐다는 것이지 싶다.
내가 보는 나 : 잘하고 있고 모든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나
학생들이 봤을 나 : 시키는게 많은 사람.
시키는 게 많았다. 모든 것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들은 다 필요했다. 그래서 더욱 강조하고 많이 시켰다. 나름 응원도 많이 했다 생각했지만 말이다.
#3. 점점 강해지는 나
학생들이 내가 투입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그 당시는 그게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지만.) 점점 조급해지며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너 자꾸 이거 안하면 때릴거야."
"오늘 남아서 다 하고가. 이렇게 책임감이 부족해서 어디다 쓸래? "
"적당히 좀 하지 너?"
그러면서 내가 원하지 않던 모습들을 어느 순간 나는 하고 있었다. 설득은 없었고 강요만 있었으며 점점 폭력과 체벌을 사용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없으면 더욱 좋은 존재다. 하지만 벌을 아예 없애버리면 아이들을 폭력과 강요로 통제하고 있을 내가 싫었다. (수업시간 떠드는 아이를 혼낸다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또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라도 꼭 지키게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즉 두가지의 필요성이 생겼다. 첫째. 내가 (신체적으로)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나랑 있으면서 꼭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벌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름 규칙이 생겼다.
1. 자주 줘서는 안된다.(학생 한명에게나 반 전체나 동일하게)
(임팩트가 떨어지게 된다.)
2. 효과적일 것.
(한번 하고 나서 학생이 같은 사유로 되도록이면 또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요악이 필요했다.
#5.극기훈련
그래서 만든 벌이 극기훈련이란 것이다. 이름을 들으면 기합등의 체벌일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내용은 내가 주는 문장을 100번쓰는 것이다 .내용은 여러가지다. 일기를 안써왔을 경우 <일기는 내야 하는 날 내지 않으면 안되겠지?> 이런 식의 문장을 주고 100번을 쓰게 한다. 명심보감의 변형이라 생각하면 맞을 수도 있겠다.
이 벌의 계기는 내가 초등학교때 받았던 벌과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 때 우리반 벌은 숫자를 쓰는 것이었다. 숫자를 쓰는데 그 다음번에 쓰게 될 때는 200번 정도씩 늘어났는데 이게 참 고통스러웠다. 최대한 벌칙을 안받으려고 숙제고 뭐고 안받을 만큼은 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규칙을 만들면서 벌에 몇가지 문제점들이 생겼다.
첫번째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두번째는 피해를 받는 학생들도 있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다.
첫번째에 대한 내 기준은 성적에는 적용시키지 않고 행동에만 적용을 하는 것이었다. 지각, 숙제를 해오지 않은 것.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지적당할 때 적용을 하려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공부는 잘한 편이었지만) 평균 점수로 실기점수를 다르게 준다던가 편애하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잘 주고 하는 선생님들이나 점수에 따라서 자리나 대우에 이득을 주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은 보기 싫었다. 또한 시험을 잘보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지 그것이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그날 교실에서 있던 일에 대해서만 적용을 하고 싶었다. 교실에서 일어난 일은 교실에서 해결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자기자리 정리를 안하고 가는 것은 예외...- 비서들이 하는 활동 중 개개인 자리를 검사한 후 낙서나 쓰레기, 책상속이 정리가 안되어 있을 경우 체크가 되는데 이게 극기훈련과 연계됨)
두번째는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인데 이건 한번 걸렸다고 바로 극기훈련을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교사가 잘못 볼 수도 있고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기회를 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지각이라던가 숙제를 안해오는 것은 바로 극기훈련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문장을 쓸 때는 앞에 번호를 붙이게 하는데 다 쓰고 나면 그 번호와 문장을 매칭시키며 100번인지 확인한다. 100번이 안되면 안된만큼 다시 쓰게 된다. 꾸준히 쓰면 30분 정도 걸린다.
#6.효과
우선 내가 화를 덜 낼 수 있었다.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체크하고 극기훈련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남아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한두번 해본 학생들은 다음부터는 안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도입 초창기에 지각을 밥먹듯이 한 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학교를 오고 싶은 때 오던 학생이었는데 극기훈련을 두어번 한 이후로는 지각이란게 사라졌다.
학생들 전부에게는 명확한 규정이 생겼다.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떤 벌을 받는다라는 규정 말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벌이라서 방과후 학생들의 시간이 줄어들기에 안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7.한계
어쨌든 벌이다. 벌은 많이 제공하면 좋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때문에 적절히 조절하는 게 필요한데 이렇게 되면 교사가 정한 규칙이라던가 학생들이 함께 정한 규칙이 무의미 해질 수 있다. 어느 상황에서는 벌을 적용하고 어느 상황에서는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준의 문제가 생긴다.
어느 정도의 게으름은 줄일 수 있으나 상습적으로 까먹는 학생에게는 무의미한 벌이다.
마지막으로는 민원의 발생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이 학원을 가야 한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이 벌을 받게 되거나 할 때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들 때문에 적절히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원래는 오늘 극기훈련을 해야 하지만 너의 상황을 보아하니 다음 번에 걸리면 두배라고 하던지 말이다. 나름의 팁이라면 학기초에는 소개만 하고 2~3주 정도 엄포만 둔다. 그 후 엄청 깐깐히 적용을 하다가 어느 정도 틀이 잡힌다 싶으면 규정을 느슨히 적용한다. (거듭 적지만 이 것은 현재의 교육흐름으로는 좋은 방식은 아닐 수 있고 논란의 여지도 분명히 있다.) 벌의 적용에 있어서 반드시 엄격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8. 이런 경우 고려해볼만 하다
학기초 학생들과 이런저런 규칙들을 정한다.(학생들의 참여정도는 전부 다르겠지만.) 그 후 학급운영에서 자신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혼내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 교사가 감정적으로 제공하는 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벌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감정적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게 될 경우 표출하면서 더욱 강화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아직 감정적으로 완전하지 않거나 시스템을 이용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다면 고려해볼만 하다.
#Epilogue
올해 우리반 아이들은 무던히도 극기훈련을 한다. 처음부터 강하게 적용시키지 않기도 했지만 가끔 교사를 속이는 학생이 생기기도 해서 한번 극기훈련을 하게 하면 열심히 확인한다. 2학기 들어서는 지각이나 숙제 등에 대해 거의 극기훈련을 시킬 일이 없다. 이걸 가지고 너희들은 1년동안 진영제국의 백성으로서 발전했다는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점점 벌이란 건 좋지 않다고 생각이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교사로서의 내 인격적인 수양이 부족하여 나를 위한(폭력교사가 되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만들어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