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잡설 #4. 첫날 첫 수업
거위는 처음 태어났을 때 눈앞에 있는 동물을 부모로 여긴다 했다.
이른바 각인효과다. 조금 다르지만 교사들도 마찬가지인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첫날 첫 수업. 잊지 못할 이야기.
04년도 2월 다른 친구들은 다 구하는 기간제를 나는 구하지 못해서 소침해져있을 때였다.
2월 28일 전날 기간제 한달짜리인데 하겠냐는 전화가 왔고
나는 2월 28일에 기간제를 계약하러 갔다.
3월 1일 부푼 꿈을 앉고 집에서 아이들과의 첫만남을 준비했다.
3월 2일이 되었고 아이들과 즐겁게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담임이 여자로 알고 있었는데 남자라는 걸 알고는 참 좋아라 했다.
아이들의 첫 인상은 꽤 좋았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는 3월 3일 수업을 잘 하기 위해서 저녁 여섯시 반까지 남아서 수업준비를 했다. 첫날 첫 수업을 잘 해야 아이들을 꽉 잡는다는 소리가 실습내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에듀넷에서 우수수업ppt를 다운 받았는데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거랑 안맞아서 못하는 컴퓨터 실력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정을 했다.
수정도 하고 연습도 조금 해보고 자신했다.
'이렇게 수업을 준비했으니 애들은 내일 다 빠져들거야'
다음날이 되었다.
1교시에 누구나 열심히 발표를 한다. 특히 앞에 앉아있던 유진(가명)이는 정말 열심히 참여했다.
'조아쓰~~'
2교시가 되니 아이들이 조금 반응이 줄었다. 그래도 열심이다.
유진이는 슬슬 자기에게 발표기회가 줄어들자 힘이 빠지는 모양이다
3교시가 되었다. 앞에 앉아있던 유진이는 잠바를 뒤집어 쓰고 있다.
"유진이 뭐하니~~" 라고 말하며 잠바를 들춰봤다.
코를 파고 있다....
살포시 덮어주었다.
4교시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되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즐거운 활동을 준비도 했다. 이젠 즐거울거다. 다시 너희들은 내 마력에 빠질거다.
라고 생각한 순간 유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든다. 그 코를 파던 유진이가!!
"어 그래 유진아. 말해봐"
라고 하자
유진이는 갑자기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거다.
순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직장인들이 이래서 로또를 하는구나!!!'
정말 정신이 없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일단 아이를 침착하게 앉힌 후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거의 한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한 듯 하다.
많이 고민했다.
'이대로 교감선생님에게 가서 사표를 쓸까?'
'수업 첫날 아이가 이렇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 건 내 수업이 재미없다는 거고 재미없다는 건 내가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거 아닌가?'
'아... 나 뭐 해먹고 살지?'
'로또나 열심히 할 걸;;;'
그러다 다시 생각했다.
첫날 그만두는 건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니 하루만 더 열심히 준비해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7시까지 남아서 정말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우드락을 잘라서 교구도 만들고 정말 열심히 했다.
"내일은 내 교사인생을 건 수업이야!" 라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3월 4일이 되었고
1교시는 정말 환상적으로 지나갔다. 유진이도 발표를 잘 한다.(어제만큼은 아니지만)
2교시에는 평범했다.
3교시에 유진이는 또 엎어졌다. 이번에는 잠바를 뒤집어 쓴 건 아니지만 지우개를 가지고 논다.
4교시가 되었다. 제일 식은땀 나는 시간이었다.
유진이가 또 어제처럼 해맑게 손을 든다.
"어 유진아 무슨 일이야?"
"선생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
라고 외친다.
아... 아~~~ 아... 이제 몸의 기운이 풀린다.
나는 교감선생님에게 갈 것이다.
사직서 서식은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저 뒤에서 아이 한명이
"선생님 쟤 1학년때도 그랬어요~" 라고 한다.
마치 그 소리는 천사의 외침과도 같았다.
정말 순간적으로 그 아이의 모습에 후광이 비치는 걸 느꼈다.
그 후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도 찾아가고 2주 뒤 어머니와 상담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랑 상담한 후 어머니는 아이를 전문적인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한참 미안하기도 했다.
고작 2주 된 교사의 이야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 문제가 있는지 병원에 데리고 갔다는 걸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결론을 모르기에 더 미안하다. (나는 한달만 하고 끝났거든..)
이게 내 첫 수업에 대한 기억이다.
여러분의 첫날은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