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잡설. #1. 가방
나는 백팩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양손이 편하다.
두번째는 등쪽이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는 가방을 메고 다니면 묵직한 느낌이 좋다.
세번째는 들어가는 게 많으면 든든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백팩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백팩을 가지고 다니다 보니 내가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좋아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듯 하다.
저 사진의 백팩은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발령받고 복직 후 부모님을 뵈러 미국에 갔다가 아웃렛에서 산 가방으로 기억한다. 대충 10년이 넘거나 혹은 살짝 모자르거나 할 것이다.
저 백팩을 고를 당시 기준은 크고 주머니가 많은 것이었다. (당시엔 사지도 않았지만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크기면 더 좋고.)
백팩을 가지고 참 많은 곳들 다녔다.
연수를 가도 저 백팩이었고
여행을 가도 저 백팩이었고
친구네 집에 가도 더 백팩이었고
학교를 가도 저 백팩이었고
놀러 가도 저 백팩이었고
소개팅을 가도 저 백팩이었고.(물론 만남의 장소에는 가지고 가지 않았을거다..)
연애를 해도 저 백팩이었고
미국을 가도 저 백팩이었다.
지금은 기저귀 가방으로도 쓰기도 한다.
고작 가방 하나 인데 그 용도가 참 다양하다.
물론 기본적인 용도는 무언가를 넣고 다니는 것이기는 하지만
넣는 것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나에게 있어 재미있는 것은
상황에 따라 가방에 대해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출장가서 저 가방을 꺼내면 너무 크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기 기저귀를 꺼내면 저기서 저런 걸 꺼내다니 라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집에는 여러 가방이 있지만 나는 저 가방이 제일 편하다.
그래서 자주 들고 다니는데
최근 사람들 눈에는 저 가방이 헤진 것이 보이는가 보다.
벌써 저 백팩을 들고 다니면서 선물 받은 가방이 3개 정도가 된다.
(나에게 가방을 선물해준 사람들에게는 참 고맙다.)
그분들이 공통으로 한 이야기는
"가방이 너무 낡아보여서" 였다.
가방이 너무 낡아서 새로 사주고 싶었던다.
내가 보기엔 이전 것과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이 보기엔 많이 낡아보였나보다.
어느 순간 문득 내 것들이 보인다.
10여년 넘게 쓴 물건들은 손때가 타있다.
그 손때는 나와 함께 한 것들이다.
내 백팩의 매쉬부분은 지금 보니 까져서 보풀이 일어나 있다.
백팩 끈 오른쪽에는 mp3p나 핸드폰을 넣어둘 수 있는 주머니가 있었는데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맨 앞주머니에는
'나중에 좋은 CdP나 mp3p를 사면 좋은 이어폰 사서 가방에 넣고 들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보기만 했던 플레이어 주머니와 이어폰 구멍도 있다.
이미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중화된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는 거다.
백팩 중간주머니를 열면 빨간색 플러스펜이 새서 빨간색이 염색되어 있다.
백팩 메인주머니의 등받이 부분은 오래되서 천이 울고 있다.
백팩의 여기저기에는 이른바 생활기스들이란게 잔뜩 있다.
오래되긴 참 오래된 가방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방을 들여다보니 그동안 못봤던 것들이 보인다.
등산가방이라 그런지
백팩의 가방 끈들을 이어주는 가슴끈에는 호루라기가 달려있다.
1,2년 전에 처음 알고는 신기해서 불어보니
정말 소리가 난다.
가방 맨 하단에는 주머니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그 밑에 비닐이나 이런 것을 종종 넣어 다닌다.
이렇게 조금씩 내 백팩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가방의 몰랐던 점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 때문에
나는 과연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정말 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학생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 아이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다.
가능성을 본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가능성만 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최근 옛날 제자들이 생각나서 가끔 이불킥을 할 때가 있다.
'나는 과연 잘했나?'
아마도 나는 열심히 보긴 했지만 모든 면을 다 보지는 못했을 거다.
그당시는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답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이심전심'
'눈빛만 봐도 안다'
라는 말들이 있다.
그래서 이 말들도 참 위험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 편함. 나에게는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님을 꼭 생각해봐야겠다.
ps. 지금 가방은 이제 버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